방공호

by JiEuN

방공호

포격, 공습을 피할 수 있는 군사시설(벙커)

전쟁을 포함한 재난 사태에 대비한 대피소


작년 12월 경력을 살려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은 브랜드에서 퇴사한 눈내리던 시린 날이었다.

의류 브랜드 일을 이어 하면서 꽤 안정적인 월급으로 다시 소속되어 근무를 이어갔지만

회사에 대한 이상을 접게 된 계기가 되버렸던 기회였다.


3개월 남짓 가졌던 소속감은 책임과 원망으로 날아와 비수처럼 꽂혔다.

이성을 잃고 매니저인 내게 폭언을 쏟아내던 대표님의 얼굴은 면접때 봤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허울뿐인 직급으로는 능력을 아무짝이 쓸모없게 만들어 버렸다.

진지한 대화로 나누고자 마련한 자리에서도 대표는 무능력함으로 나를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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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 스탭으로 먼저 시작했던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절도 있었다.

차곡차곡 쌓은 이력을 모아 공채에 지원하여 정규직 전환도 된다는 달콤한 유혹에 속기 전까지는

나도 꽤나 회사 일에 열심히였다. 꽤 쓸모있는 인재라고 스스로 여기며 승진도 직급도 만족하며

까만색 명찰이 아닌 공채 사원증을 언젠가 목에 걸 수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자기소개서를 수도 없이 고치고

이력사항을 추가 하면서 입증하기 급급했다.

그렇게 5년동안 상.하반기 공채 공고가 올라올때마다 지원을 했다.

10번의 서류전형 낙방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 회사가 원망스러웠다.

본사 신상품 기획 회의도 가고 진열관리 교육도 받고 싶었지만 협력사 직원들 중 하나뿐이였던 걸까.


"퇴사 하겠습니다."

'미쳤어요? 내가 매니저님 퇴사 시키게?'

공채 기회도 더 이상 회사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심각한 상황에 담당자는 퇴사가 불가능하다고 전해왔다

"공채 전환 기회가 없고, 기회를 준다 하더라도 더 이상 미련이 없습니다"

'매니저님 만한 사람을 어디서 찾으라고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인센티브는 커녕 매달 쏟아지는 행사관리 매출관리 직원관리 어느것하나 공채보다 나은 처우도 없었다.

최저시급이 8,500원 가까지 올랐을 무렵 주어진 업무만 하고 제 시간에 퇴근하는 알바가 더 낫지 않을까..


조금만 버텨달라던 담당자는 끝내 퇴사얘기를 없던일로 해버렸고, 쓰나미 같은 코로나가 터졌다.

백화점에 고객은 눈에 띄게 줄었고, 그 만큼 매출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해 여름, 담당자는 내게 커피한잔 하자며 찾아왔다.

"여기에 서명 하시면 되요 매니저님"


그가 내민 서류한장 해.고.통.보.예.정.서

한달 뒤에는 출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회사에서 가진 A4용지에 얇은 종이가 가진 묵직한 권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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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친구와 들려서 먹던 베트남 쌀국수 구인광고가 야채마켓에 올라왔다.

채용 확정이 되었던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방공호가 생긴 기분이들었다.

경력을 살려 마트 옷가게라도 들어가야 월급이 세다는 사람, 홀서빙 아르바이트 이야기에 그림작업을 같이 하자고 시험보는 사람, 힘든 업종인데 왜 식당이냐며 안타깝게 보는 시선들로 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도 업무가 있고, 정당한 일을 하고 대우를 받는 직업이다.

전에 일했던 곳과 같이 10시간 근무조건이지만 오전 11시 출근 2시간은 브레이크 타임이라 자유롭다.

독서를 하든 콘텐츠를 만들던 내가 할 일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평일 낮시간 주고객은 근처 회사원들이다. 목에 파란색 사원증을 메고 함께 팀을 이뤄

점심을 먹으러 오는 중요한 분들이다. 가끔 회사 상사와 마주치고 같은 부서 직원 테이블 까지 함께

계산하는 훈훈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지금은 그냥 내가 만들어가는 내 시간, 내 급여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이런 방공호를 만나 아주 보통의 평온한 하루로 삶을 채워나가는 게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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