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친오빠일세
한 살 위 친오빠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술주정을 피해 오빠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단둘이 여행을 떠나곤 했다. 주위에서는 이런 우리 남매를 보고는 ‘보기 드물다’, ‘둘 다 착하다’라는 말을 하며 놀라곤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남매가 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오빠가 착하고 순하기 때문에 우리 남매가 이렇게 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의 나는 사춘기라는 핑계로 오빠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많이 주기도 했고, 싸우기도 살벌하게 싸워댔지만 20대 중반이 되면서 내 잘못을 깨닫고, 오빠와 온순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오빠는 때때로 나의 생각에 대해 따박따박 반박을 하거나, 장난인 척 일부러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정말 지쳐있고 힘들 때에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주었다. 나의 모든 불평을 다 들어주고, 내 편을 들어주고, 별 거 아닌 일이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알아채고는 옆에서 애교 많은 강아지마냥 나를 살살 달래주었다. 항상 내 기분과 생각을 꿰뚫어 보듯이 했고, 그런 오빠 옆에 있을 때 진정으로 내 편인 소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고작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오빠는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엄마와 아빠보다 나를 더 챙겨주고, 보살펴 주었다. 내 손을 놓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오빠는 내 손을 꽉 붙들었고, 그 손 마저 뿌리치고 내가 달아났을 때는 울면서 엄마를 얌전히 기다렸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노는 날이면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온천천을 달리기도 했다. 초등학교 3-4학년밖에 되지 않은 오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햄을 굽고, 도시락 통에 밥을 챙겨 우리만의 소풍을 떠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항상 나의 밥을 챙겨주었고, 나이 30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 버릇이 나빠진다 하면서도 내가 요구하는 건 못 이기는 척 다 들어주었다.
착하디 착한, 순하디 순한, 우리 오빠.
아빠의 술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끈끈한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의지할 데라곤 서로밖에 없었던 우리 어린 날의 공포가 우리 사이를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일까. 아무리 미운 아빠이지만 이런 오빠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나의 소중한 베스트 프렌드.
오빠가 있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혼자 허우적댈 때 그나마 빛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다만, 이 마음을 우리 오빠는 영영 모르겠지?
아무리 친한 우리지만, 애정 표현은 무뚝뚝한 경상도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