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만 이루어진 관계는 약하다
몇 년 전, 아빠가 한창 사람 만나고,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아직 초저녁도 되기 전부터 잔뜩 취해 있던 아빠는 집으로 들어오라는 우리의 전화를 다른 일행에게 넘겼다.
한 아줌마가 전화를 받았고, 그 여자는 본인이 영어 학원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지금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니, 아빠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에 더 화가 난 친오빠와 나는 그게 무슨 사회생활이냐 따져 물었고, 그냥 아빠를 더 잡아두지 말고 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아빠의 전화를 대신 받은 아줌마와 말을 주고받을수록 오빠는 언성이 높아졌고, 그 아줌마는 “Calm down.”만 외쳐댔다.
“Calm down, calm down, 대학 갔으니 무슨 의미인지 알죠? Calm down, 진정하세요.”
술에 취해 꼬부라지는 혀로 아줌마는 calm down을 연신 외쳤다.
이에 더 열받은 오빠는 씩씩대며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던 나 역시도 어이가 없었다.
같은 회사 사람과 회식하는 것도 아니고, 거래처 사람에게 접대하는 것도 아니면서 ‘사회생활’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를 씌우는 게 웃겼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사회생활’을 가장한 술자리는 돈이 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 술자리에서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꼭 필요한 자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사회생활‘이 목적이 된 술자리일 경우이고.
아빠의 상황처럼 ‘술을 마시기 위해’ 하는 사회생활은 핑계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