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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명이는 좋겠다

관식이가 아빠라서

by 사적인 유디

최근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몰아봤다. 개인적으로 눈물이 많고, 슬픈 내용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SNS에서 난리가 났길래 무슨 내용인가 싶어 보게 되었다. 잔잔하고, 슬픈 내용들이 내 취향에 맞지는 않았지만 내가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던 건 관식이의 사랑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드라마 속에서 금명이의 아빠이자 애순이의 남편인 관식이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엄청난 사랑꾼이었다.


애순이는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하자 관식이는 영부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애순이를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모습이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오죽하면 관식이를 검색하면 ‘관식이 같은 남자’가 연관 검색어로 뜨겠나 ㅎㅎ


내 남자친구는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해서 드라마를 안 본 남자친구에게 대뜸 전화를 걸어 물었다.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자기는 뭐할래?”라고 물으니 “자기가 대통령을 한다고? 그러면 First husband”라고 대답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관식이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항상 나를 지지해 주고, 아껴주는 모습이 남자친구와 많이 닮아 있었다.


하지만, 관식이 같은 아빠를 두지 못한 까닭일까.

관식이를 남편으로 둔 애순이보다 관식이를 아빠로 둔 금명이가 부러웠다. (남편도 아빠도 관식이 이기를 바라는 건 너무 욕심쟁이인가?)


“수 틀리면 빠꾸!” 라는 말을 외치며 관식이는 금명이가 처음 김치를 먹을 때도, 학교에 갈 때도, 달리기를 할 때도, 수능을 볼 때도, 결혼을 할 때도 한결같이 뒤에서 든든하게 지지해 줬다.


“내가 외줄을 탈 때마다 아빠는 그물을 펼치고 서 있었다” 라는 대사가 딸 금명이에 대한 관식이의 사랑이 한 문장으로 표현됐다.


항상 할 수 있다고,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못해도 돼, 안 되면 다시 돌아와. 돌아오면 아빠가 언제나 여기 있어‘ 라는 든든함을 주었다.


관식이는 가난했을지라도 딸에게 주는 사랑과 아내에게 주는 사랑은 그 누구보다 풍족했다. 그 덕분에 금명이가 모나지 않고, 잘 자란 게 아닐까? 가난으로부터 허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부모의 사랑은 그 어떤 부자보다도 컸으리라 생각한다.


남과 비교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런 관식이의 모습을 보니 참 우리 아빠랑 많이 비교가 됐다.


“니가 그렇지 뭐”

“니가 뭘 해”

“안 되면 알아서 해라”

“하던 거나 잘해라”

라며 나의 시도를 가로막고, 잘 못했을 때는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비아냥이 돌아왔다. 나는 아빠에게 큰걸 바라지는 않았다. 관식이처럼 응원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나를 지지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마음처럼 결과가 안 나왔을 때 아무 말도 안 했으면 했다. 내가 성장하는데에 하나도 도움 안 되는 비아냥을 하지 말았으면 했다. 아빠의 말을 들을 때면 나의 속상함은 더 커져만 갔고, 무기력해졌다.


피어나는 꽃에 몰아 닥치는 비바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꽃이 피어나지 못한 이유는 누군가의 짓밟음때문이었다.


비수처럼 꽂힌 말들은 나의 자존감을 바닥 치게 만들었고,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시도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머무르는 것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만약, 관식이 같은 아빠가 내 아빠였더라면 나도 금명이처럼 될 수 있었을까? 꼬이지 않고, 당당하고, 똑부러지면서 자존감이 높은 금명이처럼 될 수 있었을까.


금명이의 허기는 가난이었지만, 나의 허기는 아빠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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