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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은 아빠, 물같은 엄마

딸은 아빠를 닮고 아들은 엄마를 닮고

by 사적인 유디

아빠는 양은냄비 같은 성격을 지녔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표출해 냈고,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표출해 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화를 내거나 기분을 나빠했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다 표출한 탓일까. 그 감정이 오래가지도 않았다. 막 화를 내다가도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장난을 쳐오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엄마는 아빠를 보고 양은냄비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아빠 모습을 내가 참 많이 닮아 있다고 했다.


나 역시도 아빠처럼 양은냄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고, 쉽게 화를 내며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아빠처럼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기분이 나쁘면 나쁜 대로 다 표출했다.


웃긴 건 가족 앞에서만 그랬다는 것이다. 친구 또는 사회에 있을 때는 상황이 악화될까 봐 최대한 티 내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예의 없이 굴었다.


반면에 우리 엄마와 오빠는 무덤덤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쉽게 감정이 상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내도 되는 상황에서 침착한 모습을 보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엄마와 오빠 덕분에 나는 화를 내다가도 ‘별 거 아니잖아’라는 오빠의 말에 ‘그런가?’싶어 금세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감정에 공감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되레 화를 내기도 했었다.


나 조차도 컨트롤하기 힘든 내 감정을 오빠는 다 받아주었다. 묵묵히 말을 들어주거나, 때로는 나보다 더 날뛰어주고, 때로는 그 정도로 화낼만한 상황이 아니라며 나를 진정시키기도 했다.


아빠와 엄마의 상황도 똑같았다.

아빠가 화가 나서 막 얘기를 하면 엄마는 오빠처럼 침착하게 반응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의 반응에 빠르게 진정할 수 있었다.


물 같은 엄마와 오빠가 있기 때문에 아빠와 나의 불이 더 확산되지 않고 꺼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빠와 내가 붙었을 때는 너무 불같아져서 엄마와 오빠가 달래느라 애쓰지만…


감정기복이 심한 우리에게는 오히려 상대가 똑같이 반응을 해주는 것보다 때때로 차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더 진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나의 불을 서서히 꺼트려주고, 진정제 역할을 해주는 엄마와 오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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