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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쫌!!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진다

by 사적인 유디


"병X같이 니가 하는 게 그렇지 뭐"

카드를 잃어버렸다는 엄마에게 아빠가 내뱉은 말이다.


아빠는 이전에도 여러 번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엄마가 그릇을 깨트렸을 때나 요리 중 음식을 태웠을 때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잘 못하거나 실패했을 때도 아빠는 "니가 그렇지 뭐"라는 말을 쉽게 뱉었다.


오랜 시간 이 말을 듣다 보니 자존감은 더더욱 낮아졌고, 어느 순간 이 말이 나의 발작 버튼이 되었다.


오빠가 장난으로 던진 "니가 그렇지 뭐"

아빠의 비꼬움이 담긴 "니가 그렇지 뭐"

이 말을 듣는 순간 불같이 화를 냈다.


'왜 저렇게 말을 할까?'

'왜 예쁘게 말하지 못할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저런 말을 내뱉는 아빠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얼마 전 아빠는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어느 순간 서랍을 보니 반지가 없어져있었다.


그때의 엄마는 아빠에게 어떤 말을 내뱉었을까?

아빠처럼 "병X같이 니가 하는 게 그렇지 뭐"라는 말을 뱉었을까?


아니다.


엄마는 같이 침대를 들추고, 서랍을 뒤지고, 책상을 치워가며 반지를 찾으려고 애썼다. 엄마는 아빠에게 비아냥 거리지도 않았고, 굳이 상심한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가 전당포에 금반지를 마음대로 맡겼을 때도, 술집에 반지를 맡겨놓고 외상을 달아놓았을 때도 엄마는 묵묵히 돈을 들고 그곳에 찾아가 반지를 되찾아 들고 왔다.


물론, 화를 내기는 했지만 아빠처럼 사람 자존감을 갉아먹는 막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본인이 들으면 싫어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내뱉었다. 아빠처럼 말을 저렇게 못되게 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가?


백범 김구는 이렇게 말했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에는 내가 아빠를 미워하기 때문에 지옥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막말을 듣고 있으니 지옥은 나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아빠가 나를 지옥으로 끌고 왔음을 깨달았다.


아빠 스스로 미움을 자초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미워했다. 그렇게 우리의 지옥이 완성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술을 안 먹었을 때에는 다 큰 어른이지만 등에 업히기도 하고, 손도 잡고, 아빠한테 안기기도 하고, 단 둘이서 여행을 가고, 얼굴 맞대고 밥 먹는 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이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다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방 문을 허락 없이 여는 것부터 시작해서 같은 물 컵을 쓰는 것, 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조차 부담되고 싫어졌다.


말이라도 예쁘게 했더라면, 이보다 미워하는 감정이 더해지지는 않을 텐데. 아빠는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상처가 되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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