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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Nov 08. 2022

브레인 오케스트라 (중)

국사무쌍, 전쟁의 신이라 불리던 한나라 대장군 한신은 BC 205년에 위나라를 정벌하고 곧이어 조나라를 제압하기 위해 연 이은 원정을 떠난다. 그런데 이때 유방은 항우를 막기 위해 한신의 정예병을 차출해 가고 한신은 새로 개편한 오합지졸 2~3만을 끌고 정형에서 조나라 20만 대군과 대치하게 된다. 조나라 모사 이거좌는 한신의 기세가 대단하니 우선 방어적으로 대처하면서 한신의 보급로를 끊는 전략을 제안했지만 조나라 재상 진여는 한신의 군대가 지치고 수적으로도 열세이니 전면전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한신과 싸우지 않고 피하면 추후에 다른 제후들이 조나라를 깔보고 함부로 쳐들어올 수 있다고 하면서 이거좌의 제안을 거절하고 전면전을 선택한다.


한신은 조나라 군대가 전면전을 선택했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병사들은 지쳐있고 수적으로도 열세인 한신은 장고 끝에 ‘전쟁의 신’ 다운 새로운 전술을 고안한다. 기병 2,000명을 측면에 몰래 매복시키고, 나머지는 면만수를 모두 건넌 후 강을 등진 ‘배수진’을 친다. 한신은 오합지졸 중에서도 약한 병사들을 따로 차출한 뒤 조나라에게 도발한다. 오합지졸들이 강을 등지면서 도발하는 모습에 자신만만한 조나라 군대는 성문을 열고 공격에 나섰다. 한신은 패퇴하는 척 본진이 있는 강 앞까지 도망쳤고 조나라는 이때가 기회라 생각하고 전군을 이끌고 한신을 추격한다. 


면만수를 등지고 한나라군과 조나라 군의 양보할 수 없는 육탄전이 벌어졌다. 한나라군은 비록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퇴로가 없으니 죽고 살기로 싸웠다. 조나라 군대는 한나라군의 예상외의 저항에 몹시 당황했다. 오합지졸이라 생각하고 그냥 뛰쳐나가면 승리할 줄 알았는데 막상 죽자 사자 덤벼드니 오히려 사기가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철수하려고 하려고 했지만 성을 비우고 전군을 이끌고 나온 사이 매복했던 한나라 2천의 기병들이 성을 점령해 버렸고 성벽 위에는 온통 한나라 깃발들이 꼽혀 있었다. 성벽 위에 꽂혀 있는 수많은 한나라 깃발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힌 조나라 군대는 싸울 의지를 잃고 와해되었고 앞뒤로 한나라의 협공을 받아 결국 궤멸되고 만다. < '사기 회음후열전' 중에서 >


한신은 어떻게 모든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한신의 전술은 병사들의 ‘아드레날린’을 극대화한 것이었어. '배수의 진'은 아드레날린을 극대화시킨 전술인 것이지. 한신은 ‘아드레날린’이라는 용어를 몰랐겠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라는 지혜는 알았던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신체 기능과 집중력이 향상되어 평소 실력 이상의 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드레날린은 ‘승부사 기질’이 있는 호르몬이야. 위기에 처했을 때나 승부를 가르는 국면에서는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낼 수 있지. 한신이 정형 전투에서 모든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아드레날린의 힘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 


올림픽에서 육상이나 수영에서 신기록을 세운 선수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어. “평소 연습 때에는 신기록에 근접도 못했는데 시합 당일 날 집중력이 높아져서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었어요.” 이 기록을 세울 수 있게 하는 힘도 바로 ‘아드레날린’에서 나온다. 아드레날린은 공포나 불안을 느낄 때 부신수질에서 분비되는 ‘투쟁’과 ‘도피’를 돕는 호르몬이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심박수와 혈압이 올라가면서 근육에 혈액이 빠르게 공급된다. 아드레날린은 신체 기능과 근력을 일시적으로 높이고 집중력과 판단력을 동시에 높이면서 우리의 신체를 ‘전투 상태’로 만들지. 운동선수들이 경기 중에 크게 소리 지르는 이유는 성격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이 ‘전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이야. 야구선수가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투수가 던진 공의 실밥이 보인다고 해. 아드레날린의 영향으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 또 아드레날린이 충만해진 권투 선수는 상대의 주먹이 너무 느리다고 느껴지기도 한다고 해.

  

노르아드레날린도 소개해 볼게. 노르아드레날린은 아드레날린과 이름도 비슷하고 하는 역할도 비슷해. 노르아드레날린도 ‘투쟁’과 ‘도피’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호르몬’이야. 옛날에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을 때 싸울지 도망칠지 판단하는 호르몬이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계를 자극해 지방을 에너지로 전환하고 근육의 긴장감을 높인다. 필요한 순간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는 터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 노르아드레날린과 아드레날린의 차이점은 노르아드레날린은 주로 뇌와 신경계를 중심으로 작용하고, 아드레날린은 뇌 이외의 심장과 근육 같은 신체 장기 중심으로 영향을 미치는 차이점이 있어.


노르아드레날린은 단시간의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어. 시험 전 날 벼락치기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이 호르몬에서 나오는 것이지. 노르아드레날린은 진통 효과도 있어. 권투 선수가 경기 중에 심하게 맞아 코피가 나고 멍이 들어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아. 노르아드레날린이 위급한 상황에서 진통 작용을 한 것이지. 이렇듯 노르아드레날린은 위급한 상황에서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진통 작용을 한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평소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 이런 아드레날린의 매력에 빠지면 항상 아드레날린의 힘을 빌리고 싶어 지지.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아드레날린의 효과가 30분을 넘지 못하는 점이야. 노르아드레날린도 마찬가지로 지속 기간이 짧아. 노르아드레날린의 효능은 6개월 이상 지속할 수 없어.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는 것은 길어야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 이상 계속되면 효율이 떨어지고 피로가 누적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된다.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세로토닌이 바닥나면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 이 찾아온다. 말 그대로 다 타버리고 소진된 상태를 말해. 증상이 심해지면 우울증 등의 신경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직장인의 90%가 이런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다고 해. 이렇게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이때 필요한 것이 ‘퀘렌시아’이다. 


퀘렌시아 Querencis는 피난처, 안식처라는 스페인 말이야. 원래 뜻은 스페인 투우에서 소가 싸우다가 지치면 숨을 고르고 힘을 모으는 장소를 말한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가 지치면 쉬면서 힘을 추스를 장소를 찾는다고 해. 적당한 장소를 정하면 그곳에서 숨을 고르고 힘을 다시 회복해서 투우사와 다시 맞서 싸우는 거지. 투우를 좋아했던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투우사는 소의 퀘렌시아를 파악하여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이길 수 있어. 퀘렌시아는 단순한 휴식 장소가 아니라 승부를 넘어 생존을 가름하는 장소인 것이지. 사람마다 자기만의 퀘렌시아가 있어. 그것은 장소일 수도 있고 어떤 행위일 수도 있지. 좋아하는 공간, 가슴 설레는 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등 각자만의 퀘렌시아가 있다. 여행, 명상, 음악, 독서, 운동 등 무엇이 되었든 내 안의 평화를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찾아야 해. (아빠의 퀘렌시아는 우리 가족이다) 


노르아드레날린이 많이 소진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만의 퀘렌시아로 가라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이다. 인생은 백 미터 달리기가 아니야. 기나긴 마라톤과 같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해. 자신만의 퀘렌시아가 있는 사람만이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어. 


퀘렌시아를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호르몬’을 얻기 위한 일련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어. 이 호르몬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하고 이번에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처럼 우리 주변에는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피트니스 클럽으로 가려는 찰나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친구에게서 치맥을 하자는 연락이 온다. 그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우선 도파민들이 들썩인다. “친구와 치맥을 먹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야. 생각해 봐. 지난주에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잖아. 카르페 디엠!! 인생 뭐 있어? 오늘도 달려보자고~”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도파민들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그러나 전두엽에서 경고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여러분, 다이어트를 결심한 다짐을 벌써 잊었습니까? 치맥은 안됩니다. 오늘은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운동해야 합니다.” 운동을 할 것인가? 치맥을 먹을 것인가? 이렇게 갈팡 질팡하는 동안 이를 스트레스로 인지한 노르아드레날린 군인들이 출동한다. “무슨 일이야? 호랑이라도 나타났어?” (다이어트에게 치킨은 호랑이같이 무서운 존재이다.) 노르아드레날린이 늘어나면서 동공이 확장되고 근육이 긴장되고 심장박동수와 혈압이 증가한다. 이런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이 호르몬이 등장한다. 바로 ‘세로토닌’이다. “여러분, 모두 흥분을 멈추고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도파민 여러분, 친구와 치맥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너무 자주 잦은 음주는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이어트하겠다고 오늘 결심했는데 그래도 첫날은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친구와의 치맥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운동하러 갑시다.” 그리고 노르아드레날린에게도 얘기한다. “군인 여러분, 경고등이 오작동한 것 같습니다. 별 일 아니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십시오”. 이렇게 세로토닌은 흥분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토닥이며 안정을 되찾는 역할을 한다.


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 등이 흥분시키는 호르몬이라면, 세로토닌은 이들의 과도한 분비를 억제하여 균형을 잡는 ‘조절 호르몬’이야. 세로토닌이 분비되면 마음이 진정되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어. 세로토닌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치유 물질이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하지. 세로토닌도 행복의 호르몬이야. 도파민은 성취감 같은 강렬한 느낌을 준다면 세로토닌은 평온함, 온화함의 행복감을 주지. 행복의 감정은 마음이 안정된 상태로 마무리된다. 마치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가 경기를 마무리하듯 행복은 세로토닌으로 마무리되는 것이지. 퀘렌시아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세로토닌’을 얻기 위함이야.


세로토닌의 균형이 깨지면 우리의 뇌는 아수라장이 된다. 흥분된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들이 마구 날뛰면서 우리는 불안, 초조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지. 이럴 때 세로토닌을 부르는 구조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 “기분이 좋지 않으면 산책을 가라. 그래도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으면 다시 산책을 가라.” 그 이유는 산책할 때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기 때문이지. 히포크라테스도 세로토닌이라는 말을 몰랐겠지만 경험으로 그 효능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걷기가 창조적 사고력을 60% 이상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길에서 나온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영감을 얻고 싶을 때마다 산책을 나섰다고 해.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와 15년간 거의 매일 함께 산책했고, 그 길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산책 교감’을 통해 신제품 아이디어를 공유했다고 한다. 테이블 회의보다 ‘산책 회의’를 더 선호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애플의 혁신 제품들이 그런 산책 회의에서 결정되고 탄생했다고 볼 수 있지.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의 회의 방식은 걷는 것’이라고 말했어. 


햇볕을 쬐는 것도 무척 좋은 방법이야. 식물이 햇볕을 쬐면 광합성을 하고 인간이 햇볕을 쬐면 세로토닌을 얻는다. 낮 동안에 분비된 세로토닌은 해가 지면 멜라토닌으로 다시 합성된다. 멜라토닌은 뇌와 신체 리듬의 각성을 떨어뜨려 자연스럽게 수면을 유도하지. 온몸의 장기를 휴식모드로 전환하는 것이야. 이런 점에서 멜라토닌은 ‘수면 호르몬’이라고 불리지. 세로토닌이 결핍되면 멜라토닌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는 수면 생체 리듬에 악영향을 미친다. 수면이 부족하면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각종 질병이 증가하고 기억력 저하 등 사고력이 저하되지. 수면 부족이 누적되면 우울증으로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어. 마음이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가 물어보는 필수 질문 중에 하나가 “잠은 잘 자나요?”이다. 그만큼 수면이 정신 의학적으로 중요해. “잠은 너무 잘 자는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요.”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면 스트레스 때문에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징조라 볼 수 있어.


운동, 명상도 세로토닌 분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운동, 명상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내용이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다시 할게. 산책, 명상, 운동은 나의 퀘렌시아가 멀리 있을 경우 손쉽게 세로토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야. (오늘도 엄마랑 같이 산책을 하자꾸나.)


내 머릿속에서 불협화음이 난다면 지휘자가 사라졌다는 신호야. 히포크라테스의 조언처럼 바로 일어나 걷자. 그러면 세로토닌이 나타나 우리의 뇌를 다시 아름다운 앙상블로 바꿔줄 테니까.


오늘도 이야기가 길어졌구나. 엔도르핀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이어서 할게. 오늘도 세로토닌이 충만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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