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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Nov 13. 2022

브레인 오케스트라 (하)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검프가 전투 중 부상을 당한 댄 테일러 중위를 업고 뛰다가 엉덩이에 총상을 당한다. 그때 검프는 이렇게 소리친다. “이 망할 놈의 벌 같으니!!!” 검프는 엉덩이에 총을 맞았지만 벌에 쏘인 것 같은 따끔함만 느낀 것이다. 아드레날린이 진통 작용이 있지만 총상과 같은 극심한 통증을 억제할 정도는 아니다. 총알을 벌침으로 느끼게 해 준 것은 바로 ‘엔도르핀’ 덕분이었다. 그 덕에 검프는 총상을 입고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전우들을 구할 수 있었다.


엔도르핀은 모르핀과 같은 진통효과를 가지는 뇌 내 신경전달물질이야. 모르핀보다 백배 이상 강한 효과가 있다고 해.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모르핀을 투여했을 때와 동일하게 행복감과 황홀감을 느낄 수 있어. 그래서 엔도르핀은 ‘뇌 내 마약’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지. 이 물질을 뇌 속에 있는 내인성 모르핀(endogenous morphine)이라는 의미로 줄여서 엔도르핀(endorphine)이라 부르게 되었어. 엔도르핀은 극한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지만 검프와 같이 총상을 당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경험할 수 있다.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라는 달리기 용어가 있어. 러너스 하이란, 마라톤 같은 오래 달리기를 할 때 느끼는 도취 상태를 말해. 마라톤은 무척 힘든 운동인데,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 고통스럽던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그리고 기분이 고양되면서 강렬한 행복감에 빠지게 되지. 이 상태가 바로 ‘러너스 하이’이다.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의식 상태나 행복감과 비슷하다고 해. 이때에는 더 달려도 지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인류는 달리기를 통해 멀고도 험한 진화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았어. 치타같이 빠르지고 않고 사자같이 힘이 세거나 날카로운 이빨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치열한 먹이 사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흔히 활, 화살, 창과 같은 도구의 사용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무기가 발명되기 훨씬 오래전부터 인 기원전 2백만 년 전부터 인간은 고기를 먹기 시작했어.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뛰어난 피지컬이나 무기도 없이 사냥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우리의 몸에 털이 없는 점에서 찾을 수 있어. 인류는 털이 없는 대신에 수많은 땀구멍들을 가지고 있어. 이는 피부를 보호하거나 보온이 필요할 때는 불리하지만 체온을 조절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인간은 땀으로 체온을 조절하는 뛰어난 열 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인간은 체온이 상승하면 몸에서 땀이 나고 이 땀을 증발되면서 체온이 낮아진단다. 반면 다른 털을 가진 동물들은 땀 대신 숨을 헐떡이면서 체온을 조절하지. (우리 집 동동이가 더울 때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동물들은 폐로 열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으로 뱉는 숨보다 많은 열이 몸에 계속 쌓이게 되면 동물들은 고체온증으로 죽게 된다.


아주 먼 어느 옛날 배고픈 호모 에렉투스 몇 명이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나선다. 사냥감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사냥감도 곧 다가오는 호모 에렉투스의 무리를 알아채고 유유히 도망간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도 묵묵히 그 사냥감을 쫓아간다. 사냥감은 계속 도망치지만 호모 에렉투스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계속 도망가는 사냥감은 체온이 계속 올라 거친 숨을 내쉰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는 열심히 땀을 흘리며 계속 쫓아온다. 사냥감은 쉬면서 열을 낮춰야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는 그런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결국 사냥감은 고온으로 올라간 체온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호모 에렉투스는 쓰러진 사냥감에 다가가 돌로 내리쳐 사냥을 마무리하고 일용할 양식을 얻는 데 성공하게 된다.


인간은 달리는 데 최적화된 몸으로 진화했어. 인간의 발은 가로로 둥근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세로로 둥근 형태이다. 발가락 길이가 짧고 그 가운데는 움푹 파였어. 인간의 발바닥은 오랫동안 달리기에 적합하도록 변화되었지. 아킬레스건이 중심을 잡고,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발산하기 위해 둥그런 발바닥이 스프링처럼 작용한다. 어깨는 머리에서 몸 쪽으로 내려와 머리 부분 근육과 점점 분리돼 목은 길어졌어. 달릴 때 흔들거리는 긴 팔은 짧아졌으며, 발가락은 짧고 곧게 펴졌고 다리는 점점 길어졌어. 이로써 인간은 유인원들 중 유일하게 나무를 잘 타지 못하지만, 땅에서는 가장 잘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오래 달리기를 하자 뇌도 그에 맞춰 변화를 일으켰어. 오래 달리면 죽을 것 같은 임계점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이 단계를 참고 견디면 뇌에서 특별한 화학 물질이 분비된다. 그 화학 성분이 바로 ‘엔도르핀’이야. 이런 현상이 앞서 말한 ‘러너스 하이’이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오래 달리기를 자신의 생존 전략으로 선택했고, 오래 달리기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하도록 진화한 거지. 인류의 몸에서 점점 털이 사라졌고, 오랜 시간 달려도 괴롭지 않도록 뇌가 변화되었어. 이렇듯 오래 달릴 수 있는 있는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고 그에 따른 뇌의 작용인 ‘러너스 하이’는 오랜 진화적 산물인 것이지. 끈질긴 추격자인 인간은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러너스 하이는 신체적인 특성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도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어. 이탈리아 태생의 미국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는 몰입(flow)을 강조하였어. 몰입 flow란 어떤 행위에 깊이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이동, 더 나아가 자기 자신조차 잊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해.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심취한 무아지경의 상태라고 할 수 있지. 몰입은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을 차단하고 자신이 원하는 어느 한 곳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야. 칙센트미하이는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했어. 일단 몰입을 하면 몇 시간이 한순간처럼 짧게 느껴지는 시간 개념의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자신이 몰입하는 대상이 더 자세하고 뚜렷하게 보이게 되지. 그리고 몰입 대상과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을 가지며 자아에 대한 의식이 사라진다. 


수술을 집행하는 외과 의사들이 이런 몰입하는 상황을 자주 겪는다고 한다. “수술할 때 손의 움직임만 느껴집니다. 삶의 문제가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서 있다는 느낌이 느껴지지도 않고, 제 자신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는 일과 자신이 조화를 이루고 의무로 하지 않으며 그 일의 일부라는 내면의 느낌입니다.” 엔도르핀이 분비된 상태와 몰입 상태가 비슷해. ‘몰입’에 관한 이론을 제창한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러너스 하이도 일종의 몰입이라고 말했어. 성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몰입에 해당하는 일을 하는 그 과정이 행복이라는 것이지.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는 신들을 속인 죄로 커다랗고 무거운 바위를 뾰족한 산꼭대기까지 올려놓아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커다란 바위를 뾰족한 산꼭대기에 세우는 순간 바위는 그 무게로 인해 다시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그 바위를 다시 산 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또다시 굴러 떨어지고,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 떨어지고… 이렇게 시지프스는 무한 반복되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알베르 카뮈의 저서 <시지프 신화>의 첫 문장은 강렬하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하지만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를 향해 다시 내려오는 그 순간이야말로 시지프스가 자신과 운명을 이기는 승리의 순간이라고 말해. 슬픔과 절망에 빠지지 않고 신들이 정해준 운명에 굴복하지 않으며 산 밑으로 웃으면서 내려오는 인간 시지프스는 보란 듯이 그 바위를 다시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린다. 카뮈가 무의미하고 지루하며 영원한 형벌을 묵묵히 수행하는 시지프스를 승리자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부조리한 인생에 자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최선이기 때문이지. 그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몰입’이야.


시지프스도 이 지겨운 형벌을 이겨내기 위해 ‘몰입’을 깨우쳤을 것이다. “어차피 해야 되는 거 이왕이면 즐겁게 하자!! 어떻게 하면 바위를 재미있게 올릴 수 있을까? 이번에는 지난번의 기록을 깨어 볼까? 어제는 앞으로 밀었는데 오늘은 뒤로 밀어볼까? 바위 밀어 올리기는 참 좋은 운동 같아.” 이렇게 몰입하여 무아지경에 빠지는 순간 형벌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게 된다. 무의미한 '무거운 바위 올리기'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재미있는 놀이로 변화시킨 시지프스를 보고 있는 제우스는 더 약이 올라 미칠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몰입'은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행복한 반항인 것이다. 시지프스는 산 밑으로 내려올 때 고은의 시도 낭송했을 것 같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렇게 시지프스는 형벌이 아닌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바위 올리기를 통해 엔도르핀, 도파민 그리고 세로토닌까지 얻는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뇌에서 알파파가 나온다. 알파파가 나올 때 엔도르핀도 같이 분비된다고 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뿐 아니라 긴장을 푼 상태에서도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것이지. 명상을 하면 우리 뇌에서 알파파가 나온다. (명상은 참으로 장점이 많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3년 틱광득 스님은 사이공 시내에서 정부의 불교 탄압에 맞서 가부좌를 튼 채로 몸에 불을 붙였다. 소신공양으로 베트남 불교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스님은 소신공양을 하기 전날 동료 승려들을 모아 놓고 “내가 만약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그때는 모두들 희망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가라. 그러나 뒤로 쓰러진다면 결국 우리가 승리해 평화를 맞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스님이 소신공양을 할 것이라는 소식에 많은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왔다. 잠시 뒤 틱광득 스님은 도로 중앙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머리 위로 휘발유가 부어졌고, 동료 스님이 틱광득 스님에게 절을 한 번 한 뒤 성냥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틱광득 스님 온몸에 불길이 휩싸였다. 뜨거운 화마가 스님의 온몸 전체로 번져 나갔지만 스님은 꼼짝하지 않았다. 스님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허리를 곧추세워 가부좌를 풀지 않았고, 약 10분 뒤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틱광득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반정부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틱광득 스님의 뒤를 이어 시민과 학생, 공무원들도 반정부 시위에 가세해 디엠 독재정권을 압박했다. 여기에 디엠 정권을 보호하던 미국도 틱광득 스님의 소신공양에 충격을 받고, 반미감정의 확산을 우려해 지지를 철회하였고 디엠 정권은 결국 붕괴됐다.


더욱 놀라운 점은 온몸이 불타는 동안 틱광득 스님의 표정은 일그러지거나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평온해 보였다는 것이야. 그건 아마 평소 명상과 수련으로 단련된 충만한 엔도르핀 때문일 것이다. 한 스님의 엔도르핀 수련이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남에게 감사할 때에도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감사하거나 감사의 말을 들을 때 사람은 행복해진다. 남에게 감사하고 감사를 받고 사회 공동체에 공헌할 때에도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성공을 부른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셈이지. 실패했을 때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엔도르핀이 분비되었을 때 일어난 일은 시간이 지나도 똑똑히 기억된다. 그래서 실패가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어 경험으로 축적되는 것이야. 또한 엔도르핀의 작용으로 뇌가 새로운 동기를 얻고 다음 목표를 향해 시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지.


성공한 사람은 대부분 긍정적 사고를 한다. 실패할 때 절망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성공하지. 긍정적 사고는 ‘엔도르핀 사고’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실패에도 감사할 정도로 긍정적 사고를 한다면 성공의 확률은 더욱더 높아지게 된다. 실패해도 감사해 하자.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엔도르핀도 얻을 수 있다. 영화 <밀정>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린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엔도르핀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전진하게 해주는 것이다.


네가 태어날 때 처음 접한 호르몬도 엔도르핀이었어. 분만할 때에 산모와 태아가 받는 고통과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산모의 뇌에서 엔도르핀이 최고조로 분비되어 산모와 태아가 받는 고통을 덜어주게 된다. 엔도르핀의 힘으로 엄마는 너를 무통 분만으로 출산했어. 그리고 세상에 나온 너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단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해. 사랑하는 가족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더 많이 분비되겠지. 많은 사람들의 SNS에 장식하는 이미지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이다. 오늘도 엄마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엔도르핀을 만들어 보자.

 

엔도르핀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사는 게 힘들 때 그 순간을 견디기 위한 뇌가 발명한 진화적 산물이지 않을까? 우린 서로가 서로의 엔도르핀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보다 행복한 가족, 행복한 사회가 될 테니까.


‘아이디타로드 Iditarod’라는 알래스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경주가 있어. 사람과 썰매개들이 한 팀을 이루어 썰매를 끌며 1,688km를 달리는 경주이다. 알래스카 인디언 말로 '먼 거리'라는 뜻이야. 경주는 앵커리지에서 시작해 내륙을 지나 베링해 근처인 놈(Nome)까지 가는 대장정이다. 아이디타로드 대회는 놈 Nome의 주민들을 구한 용감한 썰매꾼들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해. 1925년 놈에 악성 디프테리아가 유행해 사람들이 죽어 갔지만 앵커리지까지 들어온 혈청을 놈까지 나를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다. 이때 용감한 개 썰매꾼 10명이 자원을 하였고 1,600km나 되는 길을 헤쳐 가면서 혈청을 무사히 운반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였다. 이들이 헤쳐 온 길은 '아이디타로드'라고 불리게 되었다.


알래스카의 혹한과 악천후 속에서 개최되는 개썰매 경주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면서 시속 100km의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와 영하 70도의 추위를 견디며 열흘 동안 개썰매를 타고 달리는 극한의 조건을 이겨내야 하는 경기야. 이 경주의 승패는 썰매개들의 협력과 균형에 달려 있어. 한 마리의 뛰어난 개가 있더라도 그 한 마리가 자기 마음대로 가면 줄이 꼬여 사고가 발생한다. 썰매개들이 협력하지 않고 서로 싸우면 경기를 완주할 수 없게 되지.


인생도 멀고 먼 아이디타로드 경주이다. 멀고 먼 목적지까지 도달하려면 도파민이 필요해. 위기의 순간에 봉착했을 때 돌파해 나갈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도 필요하지. 그리고 지치고 힘들 때  세로토닌의 안정과 평화가 필요하다. 썰매가 넘어져 뒤집어졌을 때는 다시 세우고 새로 출발할 엔도르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밖에도 멜라토닌, 아세틸콜린, 코리티솔 등 수많은 호르몬들의 조화가 필요하지. 아무리 도파민과 엔도르핀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이들만 독주하면 우리는 오히려 중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 협력과 조화를 이루어야 무사히 인생 경기를 완주할 수 있다.


사랑하는 나의 딸, 지금은 너의 인생 아이디타로드 경주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네 안에 있는 호르몬들을 잘 훈련시키고 조화를 이루어서 멋진 인생 경주를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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