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국현 Nov 21. 2022

인생길에서 넘어졌을 때, 니체가 필요할 때 (상)

인생길을 걷다 보면 가끔 넘어질 때가 있다. 넘어지면 그냥 일어나 다시 걸으면 되겠지만 어떤 때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다.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지 아닌지 의심이 되고, 이 길을 굳이 꼭 가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다시 일어나 걷는 게 매우 힘들다. 대부분의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다. 어느 날 눈 떠보니 이미 정해진 길이 있었다. 태어날 때 성별, 국적, 외모, 능력 등은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다. 집안의 경제력, 사회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 등의 대부분의 사회적 상수값들도 이미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내가 가야 하는 길도 운명처럼 대부분 정해지게 된다. 이렇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운명의 여신이 정해준 길을 가게 된다. 내가 정한 길도 아니고 게다가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면 그냥 시작부터 단념하고 싶을 때도 있다. (사르트르는 이런 상황을 “세상에 던져졌다”라고 말했다)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는 레옹에게 묻는다.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이래요?” 이 질문에 레옹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한다. “언제나 힘들지”. 레옹의 무미건조한 대답처럼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계속 넘어지고 까진데 또 까지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 넘어진 채로 그저 울고만 싶을 때 이럴 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어. 그것은 선현들의 지혜를 찾아보는 것이야. 그 이유는 인생의 길에서 넘어져 울었던 사람이 내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넘어졌으며 그 길에서 일어나 완주한 사람들이 남긴 지혜가 고전이다. 그리스 시대 사람이나 현대 사람이나 입고, 들고 다니는 것들은 많이 변했지만 사는 방식은 별로 바뀐 게 없어. 사랑하고, 미움받고, 때로는 희망에 가득 찼다가 나중에는 세상에 속아 끝없는 절망에 빠지는 건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고전이 아직까지도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지. 


오늘은 그 많은 선현 중에 독일의 철학자 니체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에게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자 해.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19세기 독일에서 활동했던 철학자야. 그가 주장한 주요 철학적 사상에는 ‘신은 죽었다’, ‘힘에의 의지’, ‘위버멘시’, ‘영원 회귀’, ‘운명을 사랑하라’ 등이 있어. (몇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말들이다) 그의 대부분의 저작은 압축적인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져 있어 해석하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어. 니체의 특이하고 급진적인 사상은 후에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고, 현대 대륙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지. 마르크스,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와 더불어 현대 철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기도 해.


지난 시간에 알베르 카뮈의 저서 <시지프 신화>의 첫 구절을 잠깐 소개했어.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인생에서 자살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카뮈는 말한다. “자살하지 말고 반항하라, 행복한 시지프스처럼” 니체도 말한다. “자살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반복되니까”


니체는 자신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꽃 피어난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흘러간다. 모든 것은 꺾이고, 모든 것은 새로이 이어진다. 존재의 동일한 집이 영원히 세워진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다. 영원회귀는 모든 것이 영원히 생성 소멸의 과정을 반복한다는 뜻이야. 마치 한 편의 영화가 무한 재생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30여 년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잠깐 소개해 볼게. 주인공 필은 능력은 있지만 매우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기상캐스트이다. 필은 그라운드호그 데이 취재를 위해 동료들과 함께 펑서토니로 떠나게 된다. 축제 현장으로 들뜬 시민들과는 달리 필은 매년 방문한 행사였기에 모든 것이 지겨웠다. 시종일관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며 대충 일을 끝내고 서둘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폭설 때문에 도로가 봉쇄되어 어쩔 수 없이 다시 펑서토니로 돌아가게 된다. 


다음날 라디오 방송과 함께 침대에서 눈을 뜬 필 왠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출근하러 나가는 길에 어제와 똑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 아침에 마주친 호텔 직원은 어제와 똑같은 질문을 하고 취재 현장으로 가다가 어제 만났던 고교 동창을 똑같은 상황으로 다시 만나게 되고 물웅덩이에 발이 빠지는 것도 똑같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 꿈인 것 같아 동료 리타에게 뺨을 때려 달라고 말한다. (뺨만 맞고 꿈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현장을 뛰쳐나와 숙소로 가버렸고 다음날 다시 눈을 뜨게 되지만 역시 똑같이 어제를 겪게 된다. 


자신에게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고 확신을 한 필은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을 즐기기로 하고 욕망에 충실한다. 건강을 위해 참아왔던 폭식, 폭음을 하고 미모의 여성에게 다가가 정보를 캐내어 다음날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도 한다. 심지어는 현금 수송 차량을 터는 범죄행위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계속되는 일탈이 지루해져 버릴 때쯤 그는 동료 리타를 유혹하기로 결심한다. 반복되는 하루를 이용해 그녀의 모든 것을 알아내고 환심을 사려고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매번 퇴짜 맞기 일쑤였고 결국에는 그녀를 포기하고 만다. 아침에 울리는 시계를 부수어도 같은 날은 매일 반복되었다. 지칠 대로 지친 필 더 이상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이 모든 재앙을 그라운드호그 데이 주인공이었던 마못 탓이라 생각하게 되고 마못을 납치하여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다음 날이 되면 여지없이 침실에서 깨어나게 된다.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필은 감전사, 차량 사고, 투신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2월 2일 아침 6시에 다시 눈을 뜨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필은 죽지도 못하고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어떤 심경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필은 취재 현장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노숙인에게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준다. 아침마다 지겹게 만났던 고교 동창과도 반갑게 맞이한다. 과거 이기적이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기 시작한다. 또한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자기 계발을 한다. 이로 인해 얻게 된 다재다능한 능력을 선행을 베푸는 데 사용한다. 그날 사망할 노숙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등 환대를 베풀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필의 모습에 리타는 호감을 느낀다. 사고를 당할 사람을 미리 찾아 구해주는 등 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을 주민들을 돕는 데 사용하며 선행을 이어나간다. 리타는 우연히 파티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필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때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마을에서 영웅시되는 그의 미담을 연이어 듣게 되면서 리타는 비로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함께 하루를 보낸다. 다음 날 영원히 반복될 것 같았던 하루는 마침내 끝이 나게 되고 그 둘은 눈이 내린 거리를 같이 걸어 나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는 같은 하루가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떤 하루를 선택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서는 매일 아침에 동일한 순간이 반복되고 나머지 시간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니체의 영원회귀는 내가 결정하고 행동한 순간은 다시 번복할 수 없고 영원한 반복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절망에 빠졌을 때 영원히 죽을 것인가, 영원히 다시 일어설 것인가? 니체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할지 그만의 아포리즘을 통해 묻는다.


‘영원 회귀 Ewige Wiederkehr des Gleichen’는 동일한 것이 동일한 모습으로 영원히 반복해서 되돌아온다는 뜻이야. 다시 태어난다면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드라마 재방송처럼 모든 것이 동일한 삶이 반복된다고 하지. 또한 이 삶이 한 번이 아니라 무한히 반복해서 산다고 해. 왜 니체는 왜 이러한 극단적이고 허무한 형태의 영원 회귀의 삶을 우리에게 요구했을까?


니체의 메시지는 현재의 자신의 삶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야.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처럼 자신의 삶을 긍정하라는 것이지. 영원한 현재를 살아라. 지금의 삶을 다시 한번 똑같이 살게 되어도 전혀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이지. 직업을 선택할 때 돈은 많이 벌지만 내가 하기 싫은 일과 돈은 많이 못 벌지만 내가 진정하고 싶을 일 사이에 갈등을 하고 있다면 니체의 조언은 아주 유용하다. 지금의 선택의 결과가 영원히 반복된다는 사실이 저주가 될지 축복이 될지는 지금 이 순간의 결정에 달려있다. 


혹자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해. 현대 과학에서 우주의 생성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가설 중에 빅크런치 Big Crunch이론이 있어. 우주의 시작인 빅뱅 Big Bang과 반대로 온 우주가 블랙홀의 특이점과 같이 한 점으로 축소된다는 가설이야. 빅뱅 이후 계속 팽창하는 우주는 일정 수준까지 팽창한 뒤 그 자신이 가진 중력에 의해 수축하게 된다는 이론이지. 수많은 은하들도 서서히 합쳐질 것이고, 공간은 점점 작아져 마침내 빅뱅 초기 상태로 변할 것이다. 초기 우주에서 일어난 입자들의 상호작용 과정이 거꾸로 일어날 것이며, 우주는 계속 수축하여 결국 하나의 특이점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다시 빅뱅이 시작되고 우주는 다시 팽창하며 새로운 우주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빅뱅, 빅크런치의 사이클이 무한반복된다는 가설이야. 


만약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가정해 볼 수 있어. 우주가 다시 시작되면서 우주의 모습을 결정하는 모든 상수의 값들이 달라져 이전과 다른 우주가 시작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니체의 말처럼 동일한 상수가 주어지면서 동일한 우주가 영원히 반복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가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우주’에서 살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17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파스칼 Blaise Pascal은 대담하게도 ‘신의 존재’를 걸고 내기를 제안했어. 이것이 그 유명한 ‘파스칼의 내기’다. 파스칼은 자신의 저서 <팡세 Pensées>에서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확률의 기댓값을 이용하여 설명하였어.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을 때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천국에 감으로써 무한한 이득을 얻게 되므로 그 기댓값은 양의 무한대가 된다.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을 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댓값은 0이 된다. 이번에는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인간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데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지옥에 가게 되므로 기댓값은 음의 무한대가 된다.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댓값은 역시 0이 된다. 이 네 가지 경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의 기댓값이 더 크다.” 이 유명한 변증론을 통해 결국 파스칼이 하고 싶었던 말은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아무리 낮아도 신을 믿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다는 것이야. 파스칼의 논리대로라면 니체의 영원회귀를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나는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영원회귀는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파티’의 사상으로 이어진다. 나의 선택의 결과가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의 운명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모르파티와 니체의 다른 사상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에 이어서 이야기할게. 


엄마는 드라마 ‘도깨비’를 아직도 무한 시청하고 있다. 다음 생에는 아마 공유랑 살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니체는 말한다. “꿈 깨시오. 다음 생애도, 아니 영원히 지금의 남편과 살아야 하오.” 


사랑하는 나의 딸, 오늘 너의 하루, 무한 시청해도 질리지 않는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 오늘 혹시 너의 인생길에서 넘어졌다면 영원히 다시 일어서기를, 아빠도 영원히 응원하겠다. 


이전 09화 브레인 오케스트라 (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