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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Sep 21. 2023

[오스트리아 빈]불*소스 대 참사

어부지리는 비엔**님


 아*나 호텔에서 누* 아파트로 숙소를 바꾸는 날, 내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오는 사이에 봄과 여름은 쌤1호(우리가 가져간 26인치 여행 가방)와 씨름하고 있었다. 분명히 가지고 온 짐을 다시 넣었을 뿐인데 가방이 닫히지 않아서 고생했다고 했다. 둘이서 억지로 가방을 눌러서 지퍼를 잠갔단다. 체크아웃을 하고서 행 가방을 고 다음 숙소로 이동했다.


 두번째 숙소 누* 아파트는 첫번째 숙소 아*나 호텔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일단 가격이 더 싸고, 방이 하나 더 있고, 부엌도 더 넓고, 냉장고도 크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따로 있었다. 나쁜 점? 캡슐 커피가 맛이 없고, 왓츠앱(유럽판 카톡)으로 의사소통해야 하는데 기계적인 답이 와서 정이 없고, 세탁기가 방 안이 아니라 지하실에 있다는 정도?


우리가 숙소에 체크인한 시각은 다섯시 사십분, 이 동네 마트는 토요일 저녁 여섯 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아예 장사를 하지 않으니 장보기가 급했다. 내가 마트에 다녀오는 동안 봄과 여름은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재빠르게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주워 담았다. 점원은 마지막 손님인 내 손에 영수증을 주자마자 "Have a nice weekend!(해브 어 나이스 위크엔드-주말 잘 보내라)" 라고 인사를 한 뒤 앞치마를 후다닥 벗었다.


이틀을 보낼 음식을 마련했으니 숙소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벼웠으나, 아파트 안에서는 난리가 나 있었다. 봄과 여름은 한국에서 가져 온 키친타월 한 통을 다 쓰고 쌤1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닐봉투에 넣지 않은 불*소스 뚜껑이 열렸는지 쌤1호의 안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한국 양념 왜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요?
다 버려요!
안 돼! 필요할 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양념 내가 챙긴 거 아니야.
나는 봄이 사라고 하는 거 다 샀을 뿐인데.
그런다고 그걸 통째로 다 가져와요?
작은 병에 담기 몰라요?
밥솥도 버려요!
쌤1호도 버려요!
밑반찬은 뭘 또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여름은 다 버리자며 씩씩거렸다. 쌤1호가 없으면 이 많은 물건(잊지 말자 우린 여행 가방 두 개 가득 쇼핑을 했다)을 어떻게 가지고 다니냐며 여름을 설득했다.



짐 때문에 쌤1호는 살아남았고, 다음 여행에 필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당*마켓에서 산 밥솥도 생명을 부지했다. 단 한국 양념모조리 처치하기로 타협했다. 유*까페에 뜯지도 않은 한국 양념 세 병과 반만 남은 불*소스와 여름의 눈총을 받은 마른 반찬과 장아찌까지 나눔하겠다고 글을 올렸더니 단번에 댓글이 달렸다.


운도 좋다. 9월 초에 빈으로 교환학생 왔다는 그 청년!

우리가 멜크로 떠나는 날,  서역에서 얌전하게 생긴 한국 청년을 만나 양념과 반찬을 넘겨주었다. 한발 늦게 댓글을 달아 나눔을 놓쳐서 한국 장아찌가 그립다던 00님, 그대에게도 행운이 있기를!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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