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가죽 부츠

“낡은 가죽 부츠, 내 삶의 거울”

by 차라리

Chararri story #1

낡은 가죽 부츠


저는 신발이 몇 켤레 없습니다

갈색 가죽 부츠, 검은색 단화, 편하게 신는 스니커즈 두어 켤레. 그게 전부입니다


옷을 좋아해서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했고, (물론 졸업은 못 했지만) 이후 몇 년간 옷을 다루는 일을 해왔는데 그런 것치곤 옷장에 옷도, 신발도 많은 편은 아닙니다


물론 예전에는 월급날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옷들을 하나둘 들이고, 옷장이 터지도록 채웠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무더기씩 옷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다 보니 옷을 덜 사게 됐고, 어쩌면 지금쯤 모였어야 할 돈이 모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흘러가듯 지내는 사이, 옷장은 조금씩 가벼워졌고, 그 안에 남은 옷들은 나름의 이야기가 담긴 옷들뿐이게 되었습니다

몇 달 동안 마음을 돈으로 모아 산 선뜻 사기엔 부담됐던 옷들 , 이름 모를 빈티지 샵에서 우연히 건진 셔츠나 친한 친구에게서 받은 외투 같은 것들.


그중에 한 켤레, 갈색 가죽 부츠가 있습니다.

돌체 앤 가바나나 요지 야마모토처럼 근사한 브랜드는 아니고, 국내 수제화 브랜드의 신발인데 당시의 저에게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었고, 살까 말까 몇 달을 고민하다가 결국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샀던 신발이면서도 지금까지도 제가 가장 많이 신은 신발입니다

날렵한 쉐입과 중후한 멋이 있지만, 올드하진 않은 디자인 어떤 옷을 입든 중심을 잡아주는 묵직한 친구입니다


그런 만큼 그 신발을 신고 만든 기억도 많습니다

광안리 민락동 지하의 어느 LP 바에서 열린 파티나

일본으로 떠난 여행의 골목 어귀,

오늘은 멋 좀 부려볼까 하는 날엔 늘 그 부츠를 신었습니다.


신발을 조심히 신는 성격이 아니라 가죽은 해지고 밑창은 많이 닳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오래 신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잘 버텨줬으면 좋겠네요


여러분은 어떤 옷에 추억을 담고 계신가요?

글을 쓰다 보니 예전 어른들이 좋은 신발을 신어야지 좋은 곳으로 데려가준다는 말을 해주시던 게 기억나는데 오늘 집에 들어가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이라도 해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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