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4.8평에서 12평으로 넓어진 집은, 처음엔 굉장히 널찍했으나 금세 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고양이에게 더 많은 공간을 양보한 이유도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할 만큼 나를 누르는 무기력함이 집을 어지럽힌 주범이었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시절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에서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가 수십 개의 상자에 양껏 짐을 담아 이사를 하고는 정작 몇 개 상자만 열어서 꽤 오랜 기간을 살았다는.
그 경험을 읽는 순간 나 역시도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모았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집의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사람에게도 때론 그런 불꽃같은 이상한 추진력이 있다.
근처 마트에서 커다란 50리터짜리 봉투를 사 와 버리기 시작했다.
채우기 어려울 줄 알았던 그 큰 봉투는 금방 꽉 찼다. 진이 빠져서 며칠 뒤에 또 봉투를 사서 버리고, 또 봉투를 사서 버렸다.
처음에는 정말로 버려야 할 것(썩어가는 것들,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을 버렸고, 이후에는 놔둬도 전혀 쓰지 않을 것들을 버렸고, 종국에는 쓸 수도 있겠지만 버리고 싶은 것들을 버렸다.
짐을 한껏 비워내고 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짐이 있던 그곳에 새로운 공간이라는 것이 창출된 것이다.
예전에는 좁은 집안에서 물건 때문에 돌아가야 하는 공간이 있었다면 이제는 바로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집안 구석구석을 뒤적여 버릴 것을 찾다 보니 이 집에 어떤 물건이 얼마나 있는지 간파할 수 있었다.
집에는 있는 줄 모르고 사모았던 물티슈나 많은 줄 모르고 모아 왔던 일회용품 따위가 즐비했다.
그리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모으다 보니 물건을 찾는 데 필요한 시간이 훨씬 줄었다.
엄청난 개운함은 덤이다.
버리면서 깨우친 나의 신조가 있다.
물건이 많은 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음이 갑갑할 때는 물건을 버리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버림을 실천하게 된 이후 내 근처에 물건이 많아지면 불안해지는 성정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회는 물건 늘어나기가 너무너무 쉽다. 모두가 '이거 좀 사봐'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집에서 쓰레기를 내놓는 월, 수, 금이면 이곳저곳 열어보며 버릴 것이 없는지 의식적으로 찾곤 한다. (신기하게 매번 나온다.)
회사에서도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책상과 서랍에 필요 없는 서류나 물건들을 버리는 시간을 갖는다.
사실 그 심연에는 정리하기 귀찮다는 마인드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리할 물건이 없으면 정리를 안 해도 되니까 말이다.
요즘 책 코너를 보니 관계도, 일도, 일정도 다 버려버리는 내용이 많던데,
거기까지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나중엔 다른 것들도 척척 비워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튼 내일도 또 버릴 물건이 없는지 뒤적거릴 것이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과는 말을 못 한다. 버리는 건 정말 최고다. (츄라이 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