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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포르투갈 역사

by 정현미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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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선 30여 년을 변함없는 루틴으로 살아가던 한 고전문헌학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책 한 권이 등장한다.


스위스 베른의 한 김나지움에서 학생들에게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던 그레고리우스가 그 주인공이고, 그를 낯선 도시 리스본으로 이끌었던 건 포르투갈의 한 의사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액자식 구성으로 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란 책 속의 책은 소설의 또 다른 축을 이루며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아마데우 드 프라도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프라도가 살았던 시기는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40년의  장기 독재가 극에 달했던 암울한 시기다. 개인의 삶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법, 프라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포르투갈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았다.




15세기, 포르투갈은 당시 오스만 제국이 장악하고 있던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눈을 돌렸다. 일찍이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로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확보한 포르투갈은 이를 통해 엄청난 부를 쌓음으로써 명실상부 대제국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영화는  여기까지였다.

 해외무역과 잦은 식민지 전쟁을 감당하기에 포르투갈의 그릇은 그리 크지 못했다. 해외무역에만 치중한 나머지 내수사업을 등한시했고, 식민지를 통해 벌어들인 부는 내실 있는 재투자로 이어지지 못한 채, 권력층의 부정과 축재, 부패에 악용되었다.

성살가상으로 17세기에 들어서자 강성해진 영국과 네덜란드가 해외 식민지 전쟁에 가세함으로써 포르투갈은 세계의 강자 자리에서 내려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포르투갈의 부침의 역사는 계속되었,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간신히 독립하자 1975년, 대규모의 지진과 쓰나미로 리스본이 초토화되는 시련을 겪었다. 가까스로 복구에 성공했으나 이어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갑자기 들이닥쳤고, 이에 국왕은 고국을 버리고 당시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도망치고 만다.

 왕이었던 주왕 6세는 나폴레옹이 실각했음에도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했고, 본토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이자 어쩔 수 없이 귀국했다. 포르투갈은 곧바로 입헌정치체제를 선언했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앙 6세가 본국인 포르투갈로 돌아가자마자 브라질은 기다렸다는 듯이  독립을 선언했고, 당시 가장 큰 식민지였던 브라질을 잃음으로써 포르투갈의 국제적 위상급격히 떨어지고 만다.




 포르투갈의 현대사는 왕당파와 자유주의자들의  끊임없는 대립으로 점철되었다.

1차 세계대전을 앞둔 1910년에 일어난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극단으로 분열된 정치세력 간의 반목과 1차 대전의 참전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파산상태에 이르자, 1926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난다.

정치적, 경제적 혼란 속에 성공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군부는

1933년  경제학 교수 신인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를 총리로 내세운 제2공화국을 수립한다.

군인이 아닌 경제학자에 의한  40년간의 독재라는 전대미문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전쟁의 사후처리 실패로 매년 적자를 기록하던 포르투갈의 경제가, 살라자르 정권 이후 흑자로 돌아서자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드높았다. 이후 권력의 맛을 본 살라자르는 장기집권을 위해 악랄정책을 펼치시작했는데, 우민화 정책으로 국민들의 문맹률을 높였고, 산업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했다. 또한 비밀경찰을 양성해

국민들을 감시하고 탄압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소설 속 책인 <언어연금술사>의 저자 프라도가 살던 시기가 이 즈음이었다. 그는 비범한 두뇌의 소유자로 유복한 집에서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의 개인사는 겉보기와는 달리 그리 순탄치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강한 자의식과 감수성을 지난 그였지만 자신의 뜻이 아닌 부모가

바라는 대로 의사의 삶을 살아야 했고, 살라자르 정권하에서 복무했던 판사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아버지가 자살한 후 그에겐 뼈아픈 회한으로 남았다.

 

 포르투갈의 파란만장한 역사 또한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독재 정권의 하수인으로 국민들을 감시하고, 고문하며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비밀경찰의 우두머리, 밴드스가 생명의 촉각을 다투며 병원으로 실려온 날, 의사의 본분으로 그를 살려낸 프라두는

예기치 않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사람들의 거센 비난으로 힘겨워하던 프라도는 속죄하듯 반란군의 비밀모임에 가담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를 또 다른 인생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운명의 여인 에스테파니아를 만나게 된 것이다.


1974년, 4월 25일, 마침내 독재정권은 무너졌다.

40년간 지속된 살라자르 독재정권과, 계속되는 식민지 전쟁에 대한 반발로 좌파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혁명의 결과였다.  일명 카네이션 혁명 또는 리스본의 봄이라 일컫는 무혈쿠데타로, 혁명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지지의 표시로 혁명군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는 데서 비롯된 명칭인데 독재종식은 이를 통해서 얻은 값비싼 성과였다.


 끝을 알 수없었던, 기나 긴 독재정권은 종식되었지만 프라도는 혁명의 단 열매를 맛보지 못했다. 혁명이 일어나기 얼마 전, 줄곧 그를 괴롭혀왔던 뇌동맥질환으로 사망하고  것이다.




 그는 죽었고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살아남은 소설 속 주변인물들 속에서 옛 역사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비밀조직속 투사였던 주앙 에사는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었고, 비밀조직에서 만난 에스테파니아를 두고 프라두와 연적이 되었던 절친 조르주는 여전히 잃어버린 연인과 친구 때문에 괴로워했다. 프라두를 신처럼 받들고 살았던 여동생 아드리아네 또한 과거 속 오빠의 시간에서 박제된 채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지만 현재의 우리라고 결코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과거의 사건 하나하나,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의 삶은 미래 세대의 역사이다.

미래 세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알기에 오늘날의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또한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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