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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대 부부, 그렇게 실업자가 되다.

나이 오십, 나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1)

by 정현미

50을 맞이한 어느 시점, 우리 부부는 각자의 생업을 정리하고 자진해서 실업자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당시 갓 군대를 전역해 대학 2학년에 복학한 큰아들과 서울에서의 재수를 선택한 둘째, 이렇게 왕성한 부모의 지원을 기다리는 아들 둘을 둔 상태였다.

물론 살아생전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를 마주한 상황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루아침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매일 꿈꾸지만 실행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기를 여러 해, 마침내 2022년을 필두로 하나씩 그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동안 하고 많은 우여곡절이 왜 없었겠는가?

2년 전, 나름 10여 년 이상을 먹고살만할 정도로 이어오던 자영업을 단계적으로 접고 소일거리를 하던 나는 내가 편한 시점을 잡아 일을 접으면 그만이었지만 당시 중소기업을 다니던 남편은 올초 회사에 사표 의사를 밝혔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딜레이 되면서 남편이 다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기까지 몇 달을 질질 끌었다.


그러나 더 큰 고비는 그다음에 나타났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대한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거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둘째가 슬그머니 재수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애초에 재수는 없다고 아이들에게 늘 상기시켜 왔지만 막상 자신의 꿈을 걸고 애원하는 자식 앞에 이길 부모는 없는 건지...

계획에 없던 거액의 지출에 직면하자 자칫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순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그러기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우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내친김에 과감히 저질러 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2022년 새해 벽두부터, 남편은 6월부터 본격적인 실업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는 이와 같은 어이없는 상황을 스스로 자초한 우리 부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배부른 중년의 한량 생활에 대한 자랑질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사회 전체가 만들어 놓은 획일적이고 경쟁적인 기존의 삶의 방식에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본인 성격 탓이 크겠지만 지금까지의 방식으론 소위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은커녕, 돈 버는 기계에 다름 아닐 뿐 인간다운 삶과 병행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와 더불어 나이와 반비례로 줄어드는 체력 소모 또한 이 맹랑한 결단에 한 몫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한 번뿐인 내 인생이 속절없이 사라질 것만 같은 중년의 위기 또한 이 시대의 일반이 아닌 이반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었다.

나무의 위치에선 결코 숲을 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서 출발해 비록 숲으로 대변되는 사회에서 지금 뿌리 뽑히는 아픔을 겪더라도 그곳에서 떨어져 나와 그 본모습을 보고 싶었다. 최소한 나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 사이, 뽑힌 뿌리조차 메마르거나 잘려나가 다시는 그 숲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그에서 벗어나 좀 더 본질적인 나를 찾고 싶었다.

나 혼자 살자고 남을 찍어 누르는 삶이 아닌, 우리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을... 하물며 그러한 삶의 가능성이라도 발견하고 싶었다.

언뜻 보기엔 거창한 듯싶지만 건질 알맹이 하나 없는 우리의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막연하게, 어이없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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