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막바지에서 30대로 넘어갈 때만 해도 대부분의 우리 세대가 그러하듯 유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먹이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청춘에 심리적으로 많이 동요했었다.
20대가 저물 무렵, 막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난생처음 접해보는 육아에 아이못지않게 생경스러워하며, 덩달아 어쩔 줄 몰라 아이를 얼싸안고 울어가면서 육체를 혹사하지 않았다면 20대를 영원히 잃었다는 정신적인 공허함이 꽤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 당시엔 무일푼이다시피 결혼해 자연의 순리인 듯 남들처럼 애 둘을 낳고 키우느라정신이 없었다. 처음으로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형성된 가족을, 오롯이 우리의 책임하에 지켜내기 위해 생존이라는 개념에만 치중할수밖에 없었던나날이었다.
입 언저리를 맴돌던 실존이란 말은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도 없는, 내겐 너무 사치스러운 단어였다.
그렇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틈도 없이 3,40대를 맞았고 또한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리고 돌아서 한숨 돌리며 정신을 차렸을 땐, 난 이미 오십 줄에 접어든 중년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못 되었지만 내가 경험한만큼 세상을 인식한 탓인지 왠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나는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 같은 심각한 자가당착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대책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실컷 비웃곤 하던 내가 그 짝이었다니...
산으로 사냥을 갔다가 낯선 노인들의 술을 훔쳐마시고 잠들었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소설 속 립 밴 윙클처럼 난 그저 아이들과 한바탕 소동을 겪었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50대로 돌변한, 마치 내 생에서 20년을 도난당한 듯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해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엔 심한 자기부정의 징후 중 하나인 우울감을 나 또한 겪어야 했다. 하지만 늘어나는 주름과 처지는 피부를 거울을 통해 확인하는 것까진 애써 눈감으며 부정한다 하더라도 숫자로 드러나는 진실까지 어쩌진 못했다. 그것마저 조작이라 우기며 사회에서 겪리 당하는 꼴을 감당하기엔 난 너무 사회 지향적인 성격이었다.
오십을 넘기자 확연히 드러나는 신체적인 변화 못지않게 정신적인 변화 또한 두드러졌다.
결코 10여 년 전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고집불통에다 일 중독자였던 내가 달라져 있었다. 그것도 180도로...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을 가끔씩 떠올릴 정도로 50대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물론 스크루지처럼 혹독한 하룻밤 꿈의대가로 딴 사람이 될 정도의 급격한 변화는 아니기에 죽음에 대한 걱정은 괜한 설레발이지만, 하나의 바위에 구멍이 뚫리기까지 수많은 물방울들의 인고의 세월이 있었듯 눈에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나의 변화를 이끌었던 소소한 나만의 경험들이 수많은 변수들로 작용했으리라.
별 특별할 건 없지만 남들과는 또 다른 삶의 형태를 선택하기까지의 고민과 이후 과정들을 어떠한 형식으로든 남기고 싶었다.
나 또한 여전히 진행 중인 삶의 한 과정에 놓여있고 요즘 같은 100세 인생에선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또 다른 시작점에 선 인생 초보자에 불과했으므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도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글을 쓰게 된 또 다른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의 여정이 결코 이전과 같진 않으리라. 힘겹게 먼 길을 돌아 닿은 곳이 이전으로의 회귀라면 그 또한 의미야 있겠지만 지금 시작하는 입장에선 썩 염두에 두고 싶은 상황은 아니다.
708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부모님들의 가치를 그대로 따르며 자랐고 앞서 간 어른들이나 제도 교육권이 주지한 내용들을 충실히 실천하며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현실 때문에 외면해왔던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의 울림에는 늘 목말라 있었다.
아직 경제적인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내가 돌보아야 할 마지막 자식이 성년이 되자,한껏 억눌러져 켜켜이 쌓여만 가던 가슴속 울림이 내부의 온도를 못 이겨 마침내 화산이 되어 폭발하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나'를 갈망하는 소리였다.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숨기고 사회에 길들여진 채 쓰다가 버려지는 그런 소비재로써의 존재가 아닌, 부모나 배우자,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던진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고픈 인간 본연에 대한 갈망에 다름 아니었다.
오십에 들어선 어느 날, 우연히 장롱 깊숙이 숨겨 놓은 날개 옷을 찾은 선녀처럼, 무의식 속에서 항상 꿈꿔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애써 외면해 왔던 나만의 날갯짓을하고 싶어 졌다. 남들이 보기엔 이카로스의 비상처럼 무모해 보일지 몰라도, 설령 태양을 향하다 추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었다.
진정 나는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이미 존재의 근원인, 실존을 향해 물음표를 던진 순간, 더 이상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