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몸이 약했다. 엄마가 잊을만하면 한번씩 얘기해주시던 의사와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내가 아주 갓난아기였던 시절 의사가 그랬다는 거다. "이 아이는 포기하셔야 할 것 같다". 정말로 의사가 아이 부모한테 저런 말을 한다고? 100% 리얼인지 MSG가 살짝 섞인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던 연약한 아기였다. 나의 한쪽 다리 골반에는 커다란 수술 자국이 남아 있는데, 정확히 어떤 수술이었는지는 엄마가 설명해주시지 않았다. (뭔가 엄청난 병을 앓고 있었던건가 싶었으나 그냥 엄마도 잘 기억이 안 나셨을 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커가면서 수술 자국은 점차 희미해졌지만 앨범 속 조그만 아기가 다리에 붕대를 칭칭감고 누워 있는 사진은 그 시절 엄마의 이야기가 허풍이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나는 나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간절기가 되면 어김없이 감기에 걸렸고 남들은 약 먹고 하루이틀 쉬면 낫는다던데 나는 몇날몇일을 끙끙 앓았다. 시험기간이면 배도 아팠다. 그 알 수 없는 복통은 시험기간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찾아와 안그래도 시험 때문에 괴로운 나를 더 괴롭혔다. 운동신경도 꽝이었다. 운동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내 몸은 머리 속에 그려지는 멋있는 동작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당당한 존재인 수험생이 되자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오밤중에 귀가하는 딸이 안쓰러우셨는지 엄마는 밤11시에 물만두, 고로케, 유부초밥 같은 간식을 챙겨주셨다. 홍삼도 꼬박꼬박 먹었다.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죽을 고비를 넘겼던 연약한 아기'였던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연약하지는 않았던 나는 점차 살이 쪘다. 그때는 탓할 데가 없어 홍삼 탓을 했으나 홍삼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렇게 난 신경 과민의 약간 통통한 고3 수험생이 됐다.
대학에 합격하고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시간보다 헬스장을 유유자적 산책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금방 뱃살이 빠졌다. 책상에 앉아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살이 빠지구나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고, 밤늦게 뭘 먹지 않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니 당연히 빠지는 것이었다. 수험생 시절 살이 찌는 날 보면서 엄마는 저렇게 자꾸 살이 쪄서 어떡하나 생각하셨다는데 아니 엄마가 그렇게 뭘 맥여놓고 이제와서?라고 원망하자니 나 역시 그 음식들을 진심으로 맛있게 먹었기에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그즈음 로망이었던 운동이 있었다. 바로 재즈댄스다. '재즈'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재즈음악과는 큰 상관이 없어보였다. 시내 어딘가에서 처음 배우기 시작한 재즈댄스는 커버댄스, 방송댄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무를 배우는 시간보다 다리를 찢고 복근을 만드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만 빼면. 고통스럽게 다리를 찢으면서 내 다리도 180도의 아름다운 각도를 그릴 날이 올까 생각하곤 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재즈댄스는 정말로 재즈음악과 함께 1920년대부터 발달한 춤이라고 한다.
나는 학교 안에 있는 스포츠센터로 거점을 옮겨 계속 재즈댄스(격렬한 다리찢기와 복근 운동 후 하는 방송댄스)를 배웠다. 2000년대 초반 이효리를 필두로 걸스힙합이 유행하면서 나의 목표는 '효리복근 만들기'가 됐다. 술을 너무 좋아해서 복근은 늘 생겼다가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그러면서도 정말 꾸준히 다녔다. 도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다녔는지 모르겠으나 다리에 피멍이 들고 발에 물집이 잡혀도 그게 훈장이라도 되는듯 즐겁기만 했다. 다리를 격하게 찢으면 실핏줄이 터진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나는 180도를 넘어 360로 돌아가는 다리찢기를 완성했고, 학교 스포츠센터 재즈댄스 수업의 역사(고인물)가 되어 갔다.
그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댄스'는 운동의 영역으로 생각되지 않는 듯 하다. 재즈댄스 그거 운동이 돼?라는 질문을 500번 정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완벽한 몸짓을 위해선 완벽한 몸이 필요하고, 완벽한 몸을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운동량이 소모된다. 내가 술을 그렇게 먹고도 그 정도의 몸매를 유지했던건 체질인줄 알았지만 실은 다 재즈댄스 덕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감기는 커녕 코로나에도 완전 면역인 튼실한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했던 재즈댄스도 10년 넘게 하자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난 재즈댄스를 무려 만으로 11년 정도 했다. 10년쯤 지나니 재즈댄스 수업의 풍토도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방송댄스는 없었다. 현대무용스럽고(?) 아방가르드한 안무를 선생님이 직접 짜오셨으며 즉흥적인 감정표현을 해야 하기도 했다. 물론 그게 재즈댄스에 대한 나의 열정이 사그라든 이유는 아니었다. 바닥을 굴러야 하는 동작을 할 때면 무릎 관절이 너무 아팠고, 다리를 찢으면서는 내가 이걸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고 있어야하지, 란 생각이 들었다. 강사 선생님을 포함해 수강생 모두가 나보다 최소 5살에서 10살은 어려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이제 재즈댄스를 그만할 때가 됐다는걸.
재즈댄스 은퇴(?)는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사됐다. 그와 동시에 또 나는 야금야금 살이 찌기 시작했다. 재즈댄스가 정말 나의 몸매와 건강 유지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재즈댄스를 대체할 운동을 찾아야 했지만 썩 마음이 가는 건 없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좀 생기면 꼭 플라멩코를 배우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는데 막상 그게 가능해지자 선뜻 결제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게 결코 수강료의 액수 때문이 아니라는건 후술할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의 단가가 증명해줄 것이다. 난 재즈댄스만이 아니라 '춤'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듯 했다. 음주 못지 않게 가무도 사랑했던 나는 20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이후로 필라테스를 시작했다가 거액의 등록비만 날리고 홈트에 정착을 했다. 돈도 안들고 효과도 좋았지만 운동만을 위한 운동은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운동을 재미로 하냐 싶겠지만 재미가 없기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거다. 그러던 넉달 전 어느날, 무료하게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던 나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게시글이 있었다. 그래, 이거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홀려 전화로 예약을 하고 새로운 운동의 첫 번째 강습을 받으러 갔다.
그건 바로 승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