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계속 속여와서... 속일 거라서.
"퇴근했니? 별 일 없지? 건강해."
내가 먼저 안부를 물었어야 했는데,
무심한 딸에게 결국 엄마가 먼저 전화를 했다.
대충 얼버무리곤, 나는 괜찮으니 당신이나 챙기시라 했다.
괜찮지가 않은데도.
사실은 올해 연초부터 일을 나가지 않고 있다.
난임휴직 중이기에.
진상을 아는 건 친구들, 남편, 친동생 뿐.
양가 부모님은 내가 일을 쉬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다.
구태여 알릴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서.
작년에 양가의 큰 어르신 두 분의 장례를 치렀다.
결혼한 이래 자식 키우고, 일까지 하느라
우리 엄마는 매양 고생만 하고 사셨는데,
어쩜 이리 우실 날들만 많은지.
외조부가 돌아가신 후 치매 증세가 더욱 심해진 외할머니,
하나뿐인 그녀의 남편이자, 나의 아비는
반신불수의 중증 뇌병변 장애인.
입을 열수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어 가족도 이름도 부르지 못하는,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그런 사람.
당신께서도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연세인지라
누군가를 돌보기보단, 여생을 편히 살면서
놀러다닐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언젠가부터 돌봐야 할 사람들만 늘었다.
여기에 나까지 보탬이 되면 쓰겠나.
걱정거리를 늘려서 무엇하누.
그래서 거짓으로 일관하기로 했다.
조금 긍정적으로 보자면 나는 상대적으로 덜 아픈 사람 아닌가.
그저 아이 하나, 인연이 없는 상태일 뿐인 것을.
정히 안 생기면 안 낳으면 그만인 것을.
기대고 싶었던 순간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다.
엄마를 만날 때면
목구멍까지 차오를 뻔한 것을 몇 번이고 참았으니.
지금도 내가 강원도에서 열심히 근무 중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계실 그 분은 오늘도 나의 안부를 물었다.
이사간 집은 잘 정리되었는지, 당신 걱정보단 딸자식 걱정 일색이다.
'잘 지내니? 거긴 춥지 않니?' 라고 물어올 때면
죄책감과 부채감이 동시에 몰려온다.
나는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 있노라고
버스 타고 20분이면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가도 꾹 참는다.
어느새 4개월이 덧없이 지났는데,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나날이 거짓말만 늘어간다.
아마도 성과가 정히 없어 포기해야 할 때까지 나는 거짓으로 일관하겠지.
나까지 엄마 속을 썩일 수는 없잖아.
나까지 아프다고 하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
난임치료를 받고 있는 건 난데,
외려 당신이 잘해주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면 어떡해.
엄마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어버이날에 엄마 줄 선물을 하나 샀다.
비록 만날 수는 없다해도,
치료비와 생활비에 휴직급여를 털어넣고 있는 중이라
여기에 추가로 용돈을 드리기는 무리겠지만
딸을 걱정하는 어미를 위해 작은 무언가를 샀다.
거짓말 중이라서 결국 오늘 만나뵐 수는 없지만.
언젠가 이 거짓을 끝낼 수 있기를.
바라고 바라건대, 좋은 결과가 있어서
그 때는 이러저러해서, 이럴 수 밖에 없었노라고
엄마에게 고해성사를 할 수 있기를.
내년 어버이날에는 거짓이 아닌,
진실된 모습으로 당신 앞에 당당히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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