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남의 소설 "국화 밑에서"

“국화 밑에서”외 여섯 편의 단편소설

by 안서조

이 책은 대한민국의 원로 소설가 최일남의 단편 모음집이다.

“국화 밑에서”외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있다.


작가는 일제 침략기에 초등학교를 나오고 일본어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제 나이 들어 그 시절을 회상하며 국어 사랑에 더 애틋함을 보이는 소설이다.

작가의 나이가 친구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연령대다.

이야기의 사이사이 장례식에 관한 내용이 많다.


‘국화 밑에서’는 하루에 두 군데 문상 가야 하는 화자의 이야기다.

이야기 끝 무렵에 윤재철 시인이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를 소개한다.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쟤들이 낼 거야

옆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는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화장실 가서 안 오는 것처럼 슬그머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빗돌을 세우지 말라고 할 것도 없이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


술집에서 먼저 빠져나오듯 저세상으로 가는 것도 조용히 모르게 가는 수도 있다고 한다.


‘물수제비’ 지금은 이런 놀이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장난감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사람과 사람이 놀이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놀이의 대상이었다.

제기차기, 자치기, 널뛰기... 물가에 가면 평평한 조약돌을 주워서 물 위로 날리는 놀이가 있었다.

‘물수제비’라고도 하고 지방마다 명칭은 달라도 물에 돌을 던지는 놀이가 있었다.


아내를 먼저 보낸 ‘박교장’은 라면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한다.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큰 이유다.

이야기의 시작이 미국에서 일어난 뉴스를 전하는 내용이다. 탄광 폭발사고로 숨진 광부의 사연을 전한다.

쉰 하나의 나이로 동료 32명과 함께 숨진 그가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모두에게 다른 세상에서 만나자고 전해달라.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잠들고 있는 것일 뿐... 사랑한다.” 작가는 ‘다른 세상에서 만나자’라는 말이 좋다.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라는 소박한 달관이 듣는 자의 마음을 도리어 얼얼하게 흔든다.

절체절명의 시간에 직면하면 웬만큼 그만한 경지에 다다라 속俗과 성聖의 담장 위를 걷는 경계인이 되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한 사람이 죽었을 뿐인데도 주부는 이렇게 엄청난 것들을 남기는가, 겁도 안 났다.

남편이 죽으면 간단하다. 옷가지와 책 무더기 등속을 치우면 그만인데, 집을 형성하는 오만 가지 물건을 온몸으로 떠메고 살던 안사람이 세상을 뜨면 그녀에게 딸린 유물이 이토록 굉장한가 싶다.

둘이 살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느 한쪽이 숟가락을 놓는 건 정한 이치다.

그러나 남는 홀앗이가 남자일 때와 여자일 경우의 생활 편차는 천양지판이다.

여노인은 모든 면에서 자연스럽다. 남 노인의 멋대가리 없이 뻣뻣한 행태는 낱낱이 열거하기 띨띨하다.

나이가 들면 TV를 켜놓고 깜빡 잠이 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잠이 깨면 잠을 청해봐도 오지 않아 한밤중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청승을 떨게 된다.


나이 듦에 대하여 누구는 아름다운 황혼이 더 멋있다.

화려한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도 하지만, 노인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늙으면 외롭고 서러운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수용하고 타협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작가의 젊은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 소설이다.


국화 밑에서. 최일남 저. 2017.09.15. ㈜문학과 지성사. 271쪽. 13,000원.


최일남. 193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졸업. 월탄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등 다수 수상. 동아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 경향신문 문화부장을 지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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