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가 아내와 아이를 빼앗아갔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첫 문장이다.
소설 초반에 받은 인상은 러시아 작가 알렉세이 바를라모프의 “탄생”이 연상되는 기시감이 들었다.
이야기는 젊은 가장이 아이가 태어나자 의사의 권고대로 방에 습도 조절을 위해서 가습기를 사 왔다. 그리고 이틀 만에 아이는 죽었다.
아내도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아이의 죽음이 가습기의 살균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살균제를 만든 기업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세상과 싸우는 내용이다.
정치와 권력, 약자와 강자, 사회와 개인, 법과 정의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만들어져 적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의가 승리하는 순간을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내가 한 선의 행동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한 일을 법은 ‘과실’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민지 아빠는 자기가 아이를 죽였다고 절규한다.
“내가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민지를 죽인 거죠.”라고.
사회는 가정이라는 최소 단위에서 출발한다.
가정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사회가 모여서 국가가 된다.
가정은 부부로 이뤄진다.
아내와 남편 흔히 남편을 ‘가장’이라고 한다.
가장으로 가져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런데 그 책임감이 또 다른 가장을 죽이고 있다.
‘민지 아빠’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살균제를 만드는 기업에 근무하는 또 다른 가장은 가해자일까? 기업의 회장이 가해자일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살균제를 만드는 기업에 근무하는 또 다른 가장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출근해야 한다. 부정부패로 찌들어 썩어빠진 기업과 나라일지라도 가족을 지켜야 하는 이들로 하여금 오늘도 그들은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평범하고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착한 가장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건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웃긴 건 피해자를 사지로 내모는 역할은 높은 사람들이 아닌 억울하게 한통속으로 취급받는 착실한 가장들이라는 거예요” 피해자를 위해 무료 변론을 하는 인권변호사의 말이다.
든든한 가장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내 가족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가장으로 의당 가져야 하는 책임이었다.
그런데 그 책임감이 또 다른 가장을 죽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한다.
“세상에 어떤 애비도 스스로가 멋진 아빠였다고 여기는 애비는 없다. 부족한 존재로 늘 자식들에게 미안함 뿐인 삶이 애비의 삶이란다.
훌륭한 남편이었다. 훌륭한 아버지였다.라는 가족의 말에, 그 말 한마디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애비라는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반대 의견을 달면 잔소리가 따라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힘 있는 친구가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모습을 방관했다.
충고했다가는 괴롭힘이 자신을 향할 것이 뻔했다.
관례는 헌법보다 위에 있고 상식보다 강하다는 걸 이질감 없이 자연스레 배워나갔다.
사회에 나와서도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항변하지 않고 옳지 못한 일들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법과 상식보다 회사 안에서의 규정들을 따르며 양심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아버지들 밑에서 자라왔거든요. 볼품없고 나약한 아버지를 보며 살아왔거든요.
힘들고 고단하며 초라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들과 함께 살았거든요.
그래서 한 번쯤은 행복한 웃음으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보고 싶은 거예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없는 사람들의 말이다.
천생연분의 공생관계였다.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과 기업의 사과를 받아야만 하는 피해자, 언론에 노출되고 싶은 예술인들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싶은 대학생들, 정치적인 승기를 잡아야 하는 야당과 지원에 목마른 사회단체들은 찰떡궁합을 이루고 있었다.
이슈가 약해지지 않게 하려면 더 자극적인 퍼포먼스와 과격한 시위가 필요했다.
강력한 비난을 섞은 기자회견도 하루하루 이어가야 했다.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젊은이들의 얼굴이 박힌 집회 사진도 쉴 틈 없이 찍어야 했다.
그들은 이러한 부분들을 알아서 채워 나갔다.
무언의 침묵이 그들에겐 불문율이었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정의를 부르짖고 있었다.
결국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정의를 이뤄주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한겨울에 23도에 맞춰진 집에 들어가면 따뜻해, 하지만 한여름에 23도에 맞춰진 집에 들어가면 시원하지. 그 차이야 사람들의 입장 차이는.
양심이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물과 같았다.
내가 누구를 대변할 때 가족을 지킬 수 있는지에 따라서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는 뻔뻔한 철학이었다.
결국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선과 악이 결정 나지만, 법은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불완전한 잣대였다.
정치는 뻔뻔하게 하는 거다. 40대 이상 독서량이 일 년에 한 권도 안 된다.
나라를 팔아먹든 말아먹든 볶아먹든 그들에겐 투표용지에 적힌 1번이 무조건 옳다.
앞뒤 상황이나 정황은 전혀 따지지 않고, 1번이 만들어준 말도 안 되는 이유만을 가지고 철통같이 보호한다.
사람은 자기합리화로 살아간다.
결국 내가 산 물건이 하자가 많아도 내가 샀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다.
그런 모순으로 이뤄진 것이 사회다.
균-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 소재원 저. 2021.06.21. 프롤로그. 13,000원.
소재원-38살의 젊은 나이에 영화 [비스티 보이즈], [소원], [터널], [균]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의 원작 소설을 집필했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유럽에 소설 원작 영상화 판권 계약을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