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 수업』 고미숙 외 5인.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이다.

2015년 안양문화예술재단〈나이 듦 수업〉이라는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고미숙. 고전인문학자. 〈청춘으로부터의 해방, 몸으로부터의 자유〉 ‘어른’으로 늙어갈 용기.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늙고 병들어 죽는 일이 동시에 시작되는 셈이다. 어떤 사람도 피할 수 없고 온전히 겪어야 한다. 인간이 공부하는 이유도 스스로 생로병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모든 공부의 밑바탕에는 생로병사에 대한 질문이 있다.


철없는 상태로 대부분을 보낸 삶은 산 것이 아니다. 이 시간성이 중요하다. 나이 들고 오래 산다는 것은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핵심이다. 그저 객관적으로 양적으로 시간이 늘어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100년을 산다는 건 100년 동안 정확하게 생로병사의 스텝을 밟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100년 산다는 보람이 있는 거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거친 존재의 충만함이 있다. 이 계절을 모두 겪어야 비로소 인생에 대해 뭔가 아는 사람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남자는 여덟 살, 여자는 일곱 살이 기준이다. 남자는 8-16-24-32-40…, 여자는 7-14-21-28-35… 이렇게 주기가 돌아간다. 남자는 8*8=64세, 여자는 7*7=49세가 자연스러운 폐경기다. 폐경기 이후는 여성은 자기 안에 있는 양기, 남성적인 기운이 나오고, 남성은 자기 안에 있던 음기, 여성적인 기운이 나와서 음기와 양기가 섞인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이제 사랑이 아니라 우정의 시간이 시작된다. 여성과 남성 모두 음양이 적당히 섞인 ‘인간’이 되는 거다. 인간의 시간이 오는 거다.


노인, 즉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살아낸 세대가 있다는 것은 이 디지털 시대에 큰 은총이다. 동양 사상으로 보면 목↔화↔토↔금↔수↔목… 이 기운들이 계속 순환하고 상생한다. 각각 봄(목)-여름(화)-환절기(토)-가을(금)-겨울(수)에 해당한다.


동양에는 인간이 자유를 누리려면 81 난을 겪어야 한다. 《서유기》를 보면 손오공과 저팔계가 108 요괴를 만나고 81 난을 겪는 게 미션이다. 인간은 그래야 정신 차린다. 그렇지 않으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완전히 노예가 된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실패들이 나의 탐욕, 분노, 어리석음(탐,진,치.貪瞋癡)을 덜어준다. 그래서 실패가 자랑스러운 거다. ‘나는 이런 걸 경험했어’하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프고 병들며 겪는 81 난이 나의 ‘탐진치’를 조절해준다. 우리가 죽음을 비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이 애통한 거라는 전제가 왜 나올까? 삶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그 삶이 다 ‘탐진치’로 점철되어 있어서 가지고 있는 것을 못 놓겠다는 거다. 이런 사람에게는 죽음이 지옥이다.


노인의 역할은 지혜의 스승, 멘토가 되는 거다. 멘토가 되려면 인생 전체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청년들이 찾아와 “불안해요, 미치겠어요.” 할 때 “다 지나간다.”라는 말을 남다른 포스로 말해줄 수 있는 건 세월을 살아낸 노인뿐이다.


관계와 소통으로 구현이 된다. 노인이 되면 정말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사회적 통념을 다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조르바는 60대 노인인데 모든 것과 소통했다. 돈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한 청년과 정말 거침없이 산다.

인터넷에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젊은이들은 ‘지식’을 검색하지 않는다. 공자의 인생에 대해서도 불경에 대해서도 찾아보지 않는다. 결국 말로 알려줘야 한다. 지식은 소리를 타고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의 몸이 중요하다. 몸과 몸으로 전승되는 게 도이다.


20대에 결혼했다. 50대에는 서로 해혼解婚 하는 게 맞다. 결혼은 묶었던 것이니 해혼으로 혼인을 푸는 거다. 묶었으니 풀어야 한다. 죽기 전에 풀어줘야 한다. 이혼하지 말고 해혼하라.

내가 바꾸는 만큼 우주는 바뀐다. 그걸 안 믿기 때문에 집단 차원에서 뭔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대가 바꾸면 뭔가 하겠다고 하면서 정치인들이 바꿔주기를 기다린다. 그렇지 않다. 내가 바꾸는 만큼 이 우주는 전혀 다른 형상을 펼친다.


김태형. 심리학자. 〈너무 많이 아픈 한국의 노인들〉 ‘꼰대 말고 꽃대를 위한 심리학’

다른 사람한테 너그러워지려면 일단 자기가 기분이 좋아야 한다. 자기가 행복해야 한다. 사람이 점점 닫혀가고 고집불통이 되어 간다는 건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 노인 세대가 행복하다면 꼰대 소리는 안 들을 거다. 한국 노인들의 경우 우울증 환자가 33.1%나 된다. 10명 중 3~4명이 우울증을 앓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 노인 세대 전체가 우울하다는 말이다.


사람이 자기 삶이 가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결국 삶을 회고하게 되어 있다. 노년기의 중요한 심리적 특징이다. 삶을 돌아보며 판단한다. 결국 두 가지로 판단된다. 내 인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내가 잘 살아왔다. 최선을 다해서 잘 살아왔다’라고 평가하면 삶을 만족스럽고 보람있게 느끼면서 자기를 다시 한번 수용한다. 그러면서 자아에 통합된다. 이런 노년기를 맞으면 원숙한 심리상태가 되어 초연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인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되면 안타까움과 허무함에 휩싸인다. 60세가 넘어가면서 잘못된 삶을 살았다, 내 인생에 큰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되면 자기를 거부하게 된다. 현실을 거부하는 거다. 노년에 자기가 잘못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인정하기 힘든다.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대체로 거부한다. 죽음도 무서워하게 된다. 잘못 살았기 때문에 죽으면 허무하다.


자기를 수용하고 잘난 점이든 못난 점이든 다 자기의 내면에 통합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기반성도 포함된다. 사람이 자기의 모든 것을 통합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점도 통합하는 거다. 합리화하면서 통합하는 게 아니고 반성하면서 ‘그래, 그건 내가 잘못했어.’ 하면서 통합하는 것, 그래야 내가 성숙해진다. 미성숙한 사람들은 좋은 것만 통합하고 나쁜 것은 다 치운다. 자기는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나쁜 점은 왜곡한다. 이러면 자기 개명이 객관성을 잃고 나중에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장회익. 물리학자. 〈노년이라는 기적의 ‘블랭크’〉 근원적 질문에 답하는 자혜의 시간.

귀한 노년을 뜻있게, 보람되게, 진정한 ‘내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첫째, 마지막 날까지 더 보람된 하루를 보낸다. 둘째, 마지막 날까지 건강을 유지한다. 셋째 마지막 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제 떠나는 것이다. 니어링 부부가 쓴 책 《조화로운 삶》에서 “이제 어떤 사회의 구속도 받지 않고 살겠다”라며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다가 100세 생일이 되자 ‘이제는 내가 사는 것보다 생을 끝내는 게 좋겠다.’라고 그날부터 곡기를 끊고 조용히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노년이 되면 더 좋아지는 것이 있다. 바로 ‘지혜’다. 식물에 비유해보면 꽃과 잎은 경쟁한다. 하지만 단풍과 나목은 경쟁하지 않는다. 노년의 좋은 점 한 가지는 남하고 견줄 필요가 없다. 사람이 맺는 열매는 지혜를 통해서 열린다. 지혜를 쌓고 지혜를 널리 주는 것이다. 그 결정체를 우리 동양에서는 ‘도’라고 부른다. 정제된 바른 지식이다. 지식의 반대말은 부지가 아니고 반지식이다.


남경아.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 〈100세 싣, 일과 삶의 재구성〉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

일자리라는 개념에 대해서, 일자리라기보다는 ‘일거리’, ‘일감’을 찾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퇴직을 한 후에 갖는 일은 전반기 일의 개념과 달리 하나의 직업에 올인하지 말고 다양한 일거리, 일감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마흔에서 아흔까지, 내 곁에 이 사람〉 노년의 관계 맺기와 인생 지도 그리기.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고 주변의 사람도 달라진다. 하는 일도 달라진다.

이렇게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하므로 인생 구조를 바꿔야 한다.

첫째, 노년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주변에 잘 늙어가는 사람을 보고 닮아가려고 노력한다.

둘째,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야 한다.

셋째,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사회 활동, 종교 활동, 자원봉사, 학습, 사교 등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돈, 경제활동에 필요한 대비를 해야 한다.

다섯째, 사람이 중요하다. 돈 있고 할 일 있는데 사람이 없다면 곤란하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여섯째,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나와 소중한 관계들을 정비하고 인생 지도를 새로 그려보는 것이다.

죽음 준비는 연명치료에 대한 자기 의사결정을 미리 하는 게 좋다. 마음의 준비,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느냐, 아니면 끝까지 거부하고 가느냐 하는 것. 법적인 준비, 유언과 상속에 관한 처리도 해두어야 한다. 장묘와 장례, 화장할 것인지, 시신을 기증할 것인지, 방식은 어떤 형태를 취할지 등. 마지막을 사별의 아픔을 나누는 것. 이다.


나이를 든다는 것, 노년이 된다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꼰대’가 된다. 나이 들면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 소개.

『나이 듦 수업』 고미숙 외 5인. 2016.01.20. 서해문집. 240쪽 13,500원.

고미숙. 고전인문학자. 1960년생. 고려대학교 고전 문학 공부 국문학 박사. 동양 사상을 연구하고 강의한다. 저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등.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1967년생.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사회학 공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여성학, 평화학, 심리학 등을 연구한다. 저서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등이 있다.

김태형. 심리학자. 1965년생.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 임상심리학 공부. 저서 『트라우마 한국사회』 등.


장회익. 물리학자. 1938년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졸엄.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퇴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저서. 『삶과 온생명』 등.

남경아. 서울50플러스재단/서북50플러스캠퍼스 관장. 1969년생. 2006년부터 희망제작소에서 ‘4060세대’의 새로운 인생을 지원하는 해피시니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회공헌 일자리 모델을 발굴, 육성하였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1960년생. 이화여자대학교 시청각교육과 졸업. 같은 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수료. CBS 아나운서로 근무. 노년과 중년을 위한 사회교육 프로그램 강사.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저서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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