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수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 관리법」
이 책의 온전한 제목은 『당신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4,000주』, 부제목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 관리법」이다.
인간의 수명은 짧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의 수명은 겨우 4천 주 정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생산적인 일에 집착한다. 그러나 ‘생산성’은 인생의 덫이다. 효율성으로 포장된 이 함정은 당신의 삶을 더욱 바쁘게 만든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유한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효율성과 생산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법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현생 인류는 20만여 년 전 아프리카 평원에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점점 강렬해지는 태양열이 앞으로 15억 년 혹은 그 이상으로 지구에 영향을 미쳐 마지막 유기체가 사라질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생명을 이어갈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현대인의 수명을 100세 시대라고 해서 100세까지 산다면 5,200 주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도,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이 말했듯이 “모든 인간의 삶은 찰나일 뿐이다.”
서른이 넘은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듯이 점점 시간이 빨리 흐르기 시작해서 70~80대가 되면 한 달이 1분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4,000주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주씩 흘러갈 때마다 남아 있는 주는 더 빨리 지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제한된 시간을 잘관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두 개의 파트로 되어있다. 첫 번째, ‘시간을 지배하기 위한 노력들’, 두 번째, ‘시간의 지배를 뛰어넘어’ 이다. 에필로그 ‘희망을 포기할 때 싹트는 힘’, 부록으로 ‘시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방법 10’이 있다.
시계가 발명되기 전 시대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겐 우리가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일련의 개념이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계절에 따라 살아갔다. 시간은 인간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독립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수확해야 할 시기가 되면 수확했고, 모를 심어야 할 시기가 되면 심었다. 무언가를 ‘끝내야 한다’라는 심리적 압박이나 어떤 가상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삶의 리듬이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있는 삶을 역사학자들은 ‘과제지향적 삶’이라고 한다. 자신이 먼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 작은 일부임을 느꼈을 것이다.
중세 시대 수도사들은 해가 뜨기 전에 아침 기도를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에 모든 수련생을 깨워야 했다. 초기에 수도사들은 한 명씩 야간 당번을 맡아 밤새 별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수도사들을 깨웠다는데, 흐린 날에는 힘들었다. 이런 문제로 시간의 흐름을 규격화하고 시각화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시계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시간’은 시곗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사라지는 어떤 것이 되었다.
과거에 시간은 삶이 펼쳐지는 매개체이자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재료였다. 우리 마음속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삶과 완전히 분리되면서 시간은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이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우리가 시간과 씨름하는 현대의 삶을 살게 된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되는 자원으로서의 시간이라는 개념이 우리를 지배한 후, 내부 또는 외부로부터 시간을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력을 받게 되고,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끼는 순간 스스로 질책한다.
전근대 사회 사람들은 사후세계를 믿었다. 시간은 유한하지 않으며 이승에서의 삶은 사후세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세상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역사를 예측가능한 단계가 계속 반복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것은 익숙하고 검증된 삶을 사는 것과 같다. 역사의 특정 순간에 흥미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 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라는 드라마 속에서 자신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이 해왔고, 자신이 죽은 후에도 수많은 사람이 맡게 될 역할을 하는 데 만족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의 세속성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삶을 최대한 이용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믿게 되었다.
편리함은 일상생활을 쉽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어떤 상황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지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다. 흔히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노력, 말하자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다. 과정을 편리하게 만들면 의미는 사라진다. 불편함이 실제로 온전히 인간적인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편리함이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기 시작하며 행동 유형에 따라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더욱 편리한 삶을 추구하지만, 진심으로 정성을 쏟던 행동을 잊어가며 공허함을 느끼는 유형과 점점 더 편안한 삶을 추구하며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들에 대해 짜증을 내고 인내심을 잃어가는 유형이다.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가 지구라는 공간에서 주어진 시간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가장 깊이 연구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존재하는 데에 있어 당연하게 여기는 요소들, 다시 말해 너무나 익숙해서 주의 깊게 생각하지 못한 개념들을 오히려 부각시켜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날카롭게 관찰하게 만든다.
하이데거는 그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에서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존재자는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개념, 즉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유한한 시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존재와 시간은 동의어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결국 언제일지 모르는 죽음을 향한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바로 절대적 한계를 가진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존재를 파악하는 데 궁극적 지평이 되는 것이 시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은 리허설이 아니며, 우리의 선택에는 무수한 희생이 뒤따르고 시간은 오늘, 내일 그리고 다음 달이 지나가면서 계속 닳아서 없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핵심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치고 스트레스를 주는 것처럼 들린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하루하루를 삶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보내는 것이 한정된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가고, 온전한 인격체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세계와 사물을 본질적으로 신비롭게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 우리는 시간은 무한한 것이 당연하고, 죽음은 말도 안 되는 반칙이라고 여기는 걸까? 다르게 표현하자면 태어나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4,000주라는 시간을 길다고 여기기보다 무한한 시간과 비교하여 짧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시간이 무한하다는 환상에 속아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기적적인 일이다.
시간 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함으로써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미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있다. 한번 지나간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이전보다 줄어든다. 이 모든 순간을 단지 미래의 순간들을 위한 징검다리처럼 취급하는 것은, 그러지 않았다면 놀라운 순간들을 우리가 얼마나 무시하며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933년 12월 15일 칼 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에 관한 질문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사람은 살 수 있는 대로 사는 것이지, 살아가는 데 특별한 방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만약 원하는 답이, 명확한 방법이라면 교회에 가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곳에선 현세의 모든 처세에 대해 알려줄 것입니다. 인간의 길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결코 규정될 수 없으며, 미리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한발을 또 다른 발 앞으로 내딛으며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며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고 그마저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는 것을 조금 완화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뒤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일상을 새로운 경험으로 채우는 것이다.
신젠 영은 아무리 재미없고 평범한 일이라도 모든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거이 아니라 이미 누리고 있는 삶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서 새로움을 찾는 것이다. 인생을 4,000주로 표현한 책 제목에서 상당한 기대를 갖고 읽었지만, 특별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참고삼아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 소개
『4000주』 올리버 버크먼 지음. 이윤진 옮김. 2022.02.09. (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286쪽. 17,000원.
올리버 버크먼 Oliver Bukeman. 영국 논픽셔니스트. 2022년 외신기자협회가 주는 올해의 젊은 기자상 수상.
이윤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공부했다. 주요 국제무대에서 통번역사로 활동했다. 통번역회사 루츠앤윙즈 대표. 저서. 『오픽킹 이윤진의 OPIC BOX』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