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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김동식 단편 공상과학 소설집

by 안서조

이 책은 22편의 단편 공상과학 소설로 되어있다.

「웜홀의 선물」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웜홀이 생겨났다. 웜홀은 외계에 사는 학생이 만든 과학 실험 과제였다. 전 세계 포털 사이트에서는 웜홀과 ‘84그램’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지구에 선물을 주겠다는 말이 있었다. 방송카메라맨이 돌발적으로 ‘신은 있는가?’라는 질문지를 웜홀에 집어넣는다. 잠시 후 답변이 온다. ‘아주 많다, 하지만 담을 수 없다’라는 내용이다. 외계인은 ‘신’을 ‘신발’로 착각해서 보낸 답변이었다.


「나 대신 출근하는 공치열」 ‘나 대신 출근해 주는 로봇’을 구입 할 수 있는 시대, 회사원 공치열은 대신 출근할 로봇을 구입한다. 공치열과 꼭 같이 생긴 로봇이 출근한다. 업무처리도 빈틈없이 하고 마음에 드는 여직원과 데이트도 한다. 로봇 공치열은 퇴근하면 인간 공치열에게 그날 있었던 업무처리에 관해 보고한다. 인간 공치열은 로봇을 대신 출근시키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왠지 불안하다. 어느 날 로봇회사에서 법으로 로봇의 귀에 로봇이라는 표식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회사에 출근한 인간 공치열은 회사에 가서 놀란다. 부장, 동료 심지어 사랑하는 직장 여직원까지 로봇이 대신 출근한 것이다.


「신체 주식시장」 수백 년 전, 인류는 모든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인공지능과 기계들이 인류가 해온 모든 일을 완벽하게 대체했다. 인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소비자로서 매달 주어지는 기본 소득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것뿐이다. 인공지능의 효율은 어마어마하여 인간이 아무리 낭비해도 모든 게 무한하게 생산된다. 소비자라는 유일한 역할마저 빼앗긴 인간은 이제 돈을 쓸 곳조차 사라진, 아무런 역할이 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것이 인류에게 불행이었다. 그 불행을 타개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새로운 소비처를 만들어 주었다. 인간들 자신의 몸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게 무료에 가까웠지만, 그들의 몸만은 유료였다. 몸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었다. 인류가 비로소 소비자의 역할을 되찾게 된 것이다. 돈이 없으면 관리국 표준보다 낮은 신체 능력으로, 돈이 많으면 관리국 표준보다 높은 신체 능력으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인간은 다시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겼지만, 별다른 직업이 없었기에 기본 소득을 넘어서는 수입을 따로 창출하기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휴스피’란 게 생겼다. 휴스피 시장은 관리국이 정한 각 신체 부위의 표준이 실시간으로 낮아지거나 높아지며 등락을 거듭했다.


「평범한 사람도 훌륭해지는 행성」 김남우는 노래방 사장이다. 도우미를 두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깐또삐야라는 별에서 외계인이 찾아온다. 외계인은 김남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저희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지, 않은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훔치지 않으면 손해 보게 되었고, 꼼수를 이용하지 않으면 멍청이라 부릅니다. 양보와 배려는 철이 없는 것이고, 속임수와 사기는 현명한 것이 되었습니다. 제발 훌륭하신 선생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요! 저희 별에 방문하시어 정직함에 대해 가르침을 내려주시면 됩니다. 그 말씀은 모두 전 국민에게 강제로 주입될 것이고, 모든 국민이 따르게 될 겁니다.”

「추억과 현실」 오늘도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며, 김남우는 삶의 회의를 느꼈다. 월급 관리를 아내에게 맡긴 게 실수였나? 애초에 첫사랑인 아내와 결혼한 게 실수였나? 뭐가 실수인지는 몰라도, 김남우는 현재 너무나도 불행했다. 집에서 그는 그저 돈 벌어 오는 기계였고, 아내는 반대편이라 느껴졌다. 그가 하는 건 온갖 안 될 이유가 붙었고, 아내가 하는 건 온갖 정당한 이유가 붙었다. 그렇다고 불만을 표하고 반항하기에는 아내에게 너무 길들어 있었다. 한 번도 하지 못했던 큰소리는 속으로 쌓일 뿐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이번 생은 포기하자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밖에 없었다. 단 하루의 미래도 기대되지 않는 인생 그게 김남우의 현재였다. 평행 세계의 또 다른 지구, 그곳에 존재하는 자신의 몸을 바꿀 수 있는 알약을 먹는다.

「역행 인류」 인류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철없는 늙은이들은 매일 어려지는 거냐며 좋아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생물학적으로 몸이 어려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역행하는 것이었다. 오늘 태어난 아이가 내일은 다시 어머니의 배속으로 들어갔다. 오늘 죽은 이는 내일 다시 살아 돌아왔다. 인간의 모든 시간이 역행했다. 지금 인류는 바뀌어 버린 시간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수십 년 뒤, 대부분 있는 줄도 몰랐던 ‘인류 대책 위원회’가 드디어 역행 사태의 진실을 발표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뮬레이션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문명은 2020년까지였습니다. 2020년까지 문명을 발전시킨 우리는 지금, 데이터를 거슬러 ‘검토’ 당하는 중입니다.”


「인간은 규칙을 어겼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생물이 인간을 적대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애완동물들이 주인을 공격하고 밖에서는 날아다니는 짐승들이 인간을 습격했다. 세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도심 속 사람들은 들개와 길고양이, 비둘기, 어디 숨어있을지 모를 쥐 떼의 공격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다. 게다가 곤충들도 있었다. 개미도 인간을 보면 물기 위해 몰려들었고, 벌과 모기도 공격적으로 날아들었다. 모든 생물이 인간만 보면 철천지원수처럼 적대했다.


인류는 이 사태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추측만 난무할 뿐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도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인간을 적대하고 있었다. 인간이 재배하는 작물들이 일부러 성장을 거부하거나 심한 경우 병충해로 시들었다. 익어가며 독성이 사라져야 할 과실들은 오히려 더욱 독성을 강화했고 지독한 악취를 풍기기도 했다. 식량 문제는 인류에게 심각한 일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고릴라로 알려진 ‘쿠쿠’가 단어 카드의 조합으로 인류에게 내보인 경고는 “인간은 규칙을 어겼다.” 이 경고가 전 세계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되물었다. “도대체 인간이 뭘 어겼다는 거야?” 자연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 육식을 자제한다. 인위적으로 가두고 도축하고, 재배하는 게 자연의 규칙을 어긴 행동이다. 수렵채집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여야 한다. 인류는 사태 해결을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생물 복제와 유전자 변형, 생명공학 연구가 중단되었다. 우주 규칙을 벗어나는 우주 관련 사업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다시 ‘쿠쿠’에게 답변을 들었다. “인간은 규칙을 어겼다.” “인간이 동식물을 지배해도 상관없다. 자연을 파괴해도 상관없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그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유일한 규칙을 어겼다. 인간은 장례를 한다.”


“인간은 시체를 매장하고 불태운다. 살아있을 때야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없지만, 죽었을 땐 약육강식의 가장 밑바닥이 되어야 한다. 관에 담아 묻는 것도 모자라 화장까지 하는 건 죽어서도 생태계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공평하게 다른 생물들의 양분이 되어 순환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유일한 규칙이다. 인간은 그 규칙을 어기고 있다.”


인류는 장례를 그만둬야 한다는 답을 찾았지만, 실천을 쉽지 않았다. 전통, 종교, 도리 등등의 이유로. 초국적 법으로 규제해도 장례 문화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점차 인류의 이기적인 장례 문화가 사라졌다. 비로소 인간은 죽어서 짐승의 먹이가 되고 흙으로 돌아갔다. 세상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인간은 다시 규칙을 지켰다. 재미있다. 작가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책 소개

『문어』 김동식 지음. 2021.03.10. 요다. 295쪽. 13,000원.


김동식.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16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창작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7년 『회색 인간』 등을 출간하며 데뷔했다. 10권의 김동식 소설집과 『성공한 인생』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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