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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프로토콜 제로

두려움과 합체하다.

by 한자루


태양은 정오를 지나며 붉게 빛났고, 모래 위엔 도미티아누스의 피가 검게 말라붙고 있었다.
군중은 잠잠했다. 누군가 죽은 뒤의 정적. 그건 언제나 기묘한 평화를 닮아 있었다.

리비아가 군중들 앞으로 끌려왔다.
그녀의 눈은 아직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붙잡고 있었다.

황제가 손을 들었다.
“로마의 신은 인간의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천둥 같았고, 관중은 다시 함성을 내질렀다.

세르비우 장로가 그 곁에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폐하, 신은 언제나 피를 통해 진실을 말하십니다.”
그의 눈빛은 흥분과 광기에 가까웠다.
그가 손에 든 지팡이에는 미세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글록은 그것이 외형은 지팡이처럼 보이지만, 내부에 복잡한 전자 구조가 숨겨진 정교한 장치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신을 흉내내는 인간이라… 이 시대의 기술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군.”


알파-3가 분석을 이어가며 낮게 말했다.

“글록. 확인 결과, 이 장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외부 대상의 신경 신호에 직접 개입해 행동 패턴을 유도하는 전기적 지시 장치로 판단됩니다. 특정 명령 세트를 전달하기 위해 구성된 신호 구조가 명확히 감지됩니다. 그런데 그 외부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때 마르쿠스가 황제의 발치로 다가왔다. 그는 로마의 백전노장 장군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전쟁보다 더 깊은 피로가 깃들어 있었다.

“폐하, 이건 명예로운 경기가 아닙니다. 아이의 피로 신을 달래는 건 로마의 방식이 아닙니다. 한번 더 고려해 주십시요.”

황제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오. 나의 군단장 마르쿠스. 또 그대인가? 그대의 신념은 훌륭하나, 신념은 신의 뜻보다 가볍다.”
“하지만 피로 유지되는 평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새로운 피를 찾는 것이지. 안그런가?”

그 말은 철학처럼 들렸지만, 실은 변명에 가까웠다.
글록은 원형 경기장의 군중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흥분’과 ‘열광’이 동시 감지되었다. 인간들은 신의 목소리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리비아가 경기장 중앙의 재단으로 끌려가자 루키아가 울부짖었다.
“그녀는 신의 제물이 아닙니다!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하다고요!”

황제는 흥미롭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그대는 신전 제사장 루키아님이 아니신가? 흠. 그대가 로마신의 즐거움에 함께 할 수 없다면, 신의 뜻을 대신 증명할 자가 필요하겠군.”
황제의 시선이 글록을 향했다.
“이방인, 네가 저 소녀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신 앞에서 한번 싸워보겠는가? 그대가 이긴다면 저 소녀와 그대에게 자유를 선사하도록 하겠네. 물론 실패한다면 저 소녀뿐 아니라 그대 역시 신의 영광스러운 제물이 되어야 할걸세. 어떤가? 그만한 용기가 있는가? 대신 공평한 싸움을 보장해주겠네. 무기 없이 오직 몸으로만 싸우는거지. 하하하.”

글록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싸워서 무엇을 증명하라는 겁니까?”
“신은 강한 자의 편이다. 그걸 증명하라.”

그때 장로 세르비우스가 나섰다.
“폐하, 감히 신을 시험하겠다면 저 이방인에게 합당한 상대가 있습니다.”

세르비우스의 목소리는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 들떠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확신보다 광기와 신념이 섞인 불꽃이 번졌다.

“폐하, 그리고 로마 시민들이여. 지금부터 보실 것은 짐승도, 인간도 아닙니다. 제국이 만들어낸… 그 어떤 신보다도 강력한 신의 대리자입니다.”

그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자, 콜로세움 한 켠의 무거운 석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군중은 숨을 삼켰다.

어둠 속에서 처음 나온 것은 거대한 어깨였다.
그 어깨에는 로마 병사들이 쓰는 금속 견갑 일부가 박혀 있었는데, 마치 오래전 적군의 갑옷을 뜯어다 살에 억지로 찔러 넣은 듯 피 자국이 말라 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어 한쪽 팔이 드러났다. 그 팔은 분명 로마 군병의 것이었지만, 다른 쪽 팔은 게르만 노예전사의 것으로 보였다.
피부색도, 근육의 모양도 전혀 달랐고 두 팔의 길이 또한 똑같지 않았다.

걸어나오는 그의 다리는 더 기괴했다.
한쪽은 튼튼한 로마 군단병의 다리, 다른 쪽은 말 위에서 전사했던 파르티아 궁사의 근육질 다리였다.
움직일 때마다 무게 중심이 흔들리며 서로 맞지 않는 뼈들이 안에서 ‘투둑’ 소리를 냈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에는 세 명의 전사 얼굴 조각이 합쳐져 있었다.
로마 병사의 매부리코, 북방 전사의 강한 턱, 그리고 동방 노예검투사의 이마가 가죽 조각과 봉합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의 오른쪽 눈가는 깊게 찢어진 듯했고, 그 상처를 따라 은실로 꿰맨 흔적이 남아 있었다.
왼쪽 눈은 흐릿하게 빛났고, 그 눈빛은 지성도, 감정도 없는 순수한 전투 본능 그 자체였다.

군중의 첫 반응은 경악이었다. 둘째는 공포였다. 셋째는 환호였다.

“로마에 영광을!”
“최강의 전사다!”
“신의 아들이다!”

세르비우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시안이여! 로마가 만든 신의 대리자여… 이방인을 시험하라.”

시안-9이 첫 울음 같은 숨을 들이켰다.
아니, 숨이라기보다는 짐승이 남의 폐를 빌려 쉰 듯한 소리였다.

그가 걸음을 뗐다.
각각 다른 세계에서 죽어간 전사들의 근육이 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서로 부딪히고 뒤틀렸다.

글록은 단번에 알아챘다.

“이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은 군중의 함성 속에 묻혀버렸다.


콜로세움 전체가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황제 티투스가 손을 들어 올리자, 금으로 둘러진 왕좌 옆의 횃불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로마의 신들은 강한 자의 피를 원한다.”
황제의 목소리가 대리석에 울렸다.
“이방인 글록이여. 네가 도미티우니스를 통해 증명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이제 진정한 신의 검증을 통해 저 소녀와 너의 목숨을 구원하라.”

세르비우스가 고개를 숙이며 나섰다. 그의 눈빛은 이미 승리한 자의 눈빛이었다.

“폐하, 로마가 가진 최강의 전사, 시안의 출정을 허락해 주십시요.”

"가라. 시안. 로마의 영광을 드러내라!!" 티투스의 명령이 떨어졌다.


시안이 한 발 내딛자 땅이 살짝 움찔했다.
그는 불균형한 다리로 걸었지만 그 걸음 안에는 괴력을 숨기고 있었다.

“글록. 저 괴물을 분석해 봤는데요. 근육 밀도가 인간 기준치를 대략 100배 초과… 뼈는 서로 이질적… 움직임은 비효율적이지만, 힘은 압도적. 말 그대로 최강 전사들의 신체가 하나로 조합된 전사예요. 게다가… 이 로마시대에서는 우리 감시국 기술이 작동하지 않아요. 마이크로 필드조차도 말이죠. 강력한 방해 주파수가 우리 기술을 완전히 막고 있어요.”

알파-3가 낮게 속삭였다.

글록이 주먹에 손이 들어가는 순간 시안의 몸이 튀어 올랐다.


시안의 돌진은 마치 빛처럼 빨랐다.

쾅!!!

글록의 몸이 사자처럼 날아올라 콜로세움 모래 위로 5m나 튕겨 나갔다.
모래판에 떨어지며 등이 갈라질 듯 충격이 퍼졌다.

알파-3가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늑골 두 개 골절! 폐 압박! 지금 이건 전투가 아니라...”

알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안은 이미 다시 돌진하고 있었다.

글록이 일어나기도 전에 시안의 그림자가 위에서 덮쳤다.

쾅! 쾅! 쾅!

그의 몸이 세 번 튕겨 나가며 돌벽에 부딪혔다. 관중석에서는 비명 아닌 환호가 터졌다.

“죽여라! 죽여라!”
“신의 아들이다!”
“로마에 영광을!”

글록은 피를 토하며 올려다봤다. 시안은 감정 없는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와 어른의 싸움. 그보다 더 잔혹한 비유는 없었다.


글록은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알파… 저 녀석의 약점은?”
“균형입니다. 서로 다른 신체를 강제로 붙였죠. 좌우 근육의 반응 속도가 다릅니다.”

“좋아. 그럼 좀 더 세밀한 공격이 필요하겠군.”

글록이 모래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들었다.
무릎을 굽혀 회전 시안의 왼쪽 다리 뒤 관절을 노리고 정확히 발꿈치를 꽂았다.

꽈악!!!

시안의 다리가 휘청였다. 군중이 경기장을 뒤흔들 정도로 술렁였다.

글록은 몸을 돌려 시안의 옆 목 덜미를 가격했다.
그리고 다시 팔꿈치로 턱을 치며 균형을 무너뜨렸다.

시안의 거대한 몸이 흔들렸다.

관중이 비명을 질렀다.

“넘어간다! 넘어간다!”
“이방인이 이긴다!”

황제의 눈썹도 경악으로 들썩였다.

세르비우스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파-3가 갑자기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글록. 조심하세요.”
“왜?”
“이 전투 데이터를 저 녀석이… ‘흡수’하고 있어요.”

시안의 눈이 글록의 움직임을 따라 물결처럼 흔들리더니 딱 고정되었다.

그 순간 글록이 다시 같은 방식으로 회전 공격을 시도하자, 시안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완벽히 대응했다.

글록이 돌며 발꿈치를 차려는 순간 시안의 손이 그의 발목을 잡아 땅으로 내리꽂았다.

쾅!!!!!

뼈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알파-3가 소리쳤다.

“경보! 동일 공격 학습 완료! 시안은 한 번 당한 기술은 두 번 당하지 않습니다!”

글록이 비틀대며 일어났다.

“공격 패턴을 학습한다는 말인가? 그럼 매번 새로운 공격을…?”
“글록.”
알파-3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의 공격 패턴 18개 중 14개가 이미 학습됐어요. 패턴을 예측해… 미리 대응하고 있어요.”

시안의 등이 천천히 펴졌다. 그의 눈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저 완벽한 학습 기계처럼.

시안의 공격이 다시 이어졌다. 이번엔 처음보다 더 빠르고, 더 잔혹했다.


첫 타격은 글록의 옆구리에 꽂혔다.

쾅!

늑골이 안쪽으로 휘며 찢어지는 고통이 번졌다. 글록의 몸이 모래 위에 찍히듯 내려앉았다.

알파-3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갈비뼈 3개 추가 골절! 내장 출혈 가능성 42% 상승!”

글록이 겨우 일어나려는 순간
시안의 발이 글록의 어깨를 짓눌렀다.

뚜두둑!
어깨가 비틀리며 관절이 탈골되었다.

군중은 열광했다.

“죽여라! 죽여라!”
“신의 아들! 시안! 시안!”

황제는 와인잔을 들며 여유롭게 말했다.

“좋구나. 로마의 하루가 더욱 풍요로워지는군.”


루키아는 관중석 뒤에서 손을 입에 가져갔다. 눈동자가 떨렸다.

“안 돼… 저렇게 무너져서는 안돼…”

그녀는 글록을 보며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누군가를 보는 듯 슬픔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마르쿠스는 황제의 옆에서 이를 악물었다.

“폐하, 저건 싸움이 아닙니다. 전투가 아니라… 처형입니다.”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지 않은가, 마르쿠스?”

마르쿠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건 인간의 오만입니다. 신도… 이런 잔혹은 원치 않을 겁니다.”

세르비우스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신은 살아남는 자 편입니다, 군단장. 그리고 보세요. 이렇게 군중들이 환호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건 신을 향한 찬미입니다. 그대는 너무 감성적인 것이 문제라고나 할까요...”


시안은 글록의 부러진 팔을 잡아 그대로 모래판에 내려쳐 팔뼈를 거의 두 동강 내다시피 했다.

쾅!
“으아아악!”

글록의 비명이 모래 위에 묻혔다. 그러나 시안은 숨도 고르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고철처럼, 학습된 공격을 반복했다.

이번엔 글록의 골반을 걷어찼다.

쾅!
이제는 걷는 것도 힘들 만큼 아팠다.

알파-3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맞으면… 신경 손상으로 제 기능을 잃습니다. 이건… 처음부터 상대가 되는 싸움이 아닙니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죽습니다!”


글록은 무릎을 꿇었다. 몸은 이미 자기 것이 아니었다.

시안은 그를 굽어보며 머리를 잡아 콜로세움의 모래 위로 끌어올렸다.

군중이 환호했다.

“목을 뜯어라!”
“배를 갈라라!”
“피를! 피를!”

시안은 황제 티투스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티투스 황제 뒤에 서있는 세르비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티투스 황제의 팔이 미세하게 들렸다. 황금 장식이 달린 그의 팔목이 햇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의 손끝이 엄지가 천천히, 너무나도 느리게, 공기를 가르며 위로 솟았다.

콜로세움 전체가 숨을 멈췄다.
수만 명의 시선이 그 작은 엄지 한 마디에 매달렸다.

황제의 입가에는 승전보를 듣는 장군처럼, 잔혹하면서도 노련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 그 엄지가 바닥을 향해 기울어지려는 순간, 황제의 손목이 살짝 멈칫했다.

마치 신조차 망설일 만큼, 경기장의 공기가 무겁게 출렁였다.


알파-3가 절규했다.

“글록!!! 다음 공격은 치명타입니다! 지금… 어떤 선택이라도 해야 합니다!”

글록의 시야는 흐려지고 있었다. 눈앞의 시안은 마치 산처럼 거대했다.

그때, 바닥을 향하던 황제의 손이 멈춘채 웃으며 말했다.

“기다려라. 아직 끝내지 마라. 로마의 신은 더 큰 재미를 원한다.”

황제의 한마디에 시안이 멈췄다.

군중이 몸을 던지듯 소리쳤다.

“더! 더! 더!”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이방인…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재미가 더 필요하니까.”

그리고 황제가 손을 내렸다.

시안은 글록을 경기장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모래가 흩날렸다.
시안-9은 저벅 저벅 바닥에 널부러진 글록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곤 그의 주먹이 글록의 가슴을 파고들며, 그의 몸이 두 번 튕기듯 바닥을 굴렀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내부에서 뚝 하고 울렸다.

알파-3의 목소리가 귀 안쪽에서 떨렸다.

“심박수 불안정. 갈비뼈 2개 골절. 지금 저 녀석은 강약을 조절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공격을 세번 이상 견뎌 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제 거의 모든 생체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요. 글록. ”

시안-9은 거대한 그림자처럼 계속해서 걸어왔다.

그는 조금 전 글록에게 타격당한 부위를 손으로 짚어보며, 마치 그 손끝으로 전투의 공식을 다시 계산하는 듯 서 있었다.


시안-9이 몸을 낮추자 모래가 쏴악 하고 갈라졌다.

그가 돌진한다.
속도는 로마의 어느 전사보다 빨랐다. 아니다. 어떤 인류보다 빨랐다.

글록의 시야가 흔들렸다.
바닥이 흔들렸는지, 그의 의식이 흔들렸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알파-3가 급하게 소리쳤다.

“글록… 마지막 선택입니다. 생체 신호가 급격히 저하되고 있습니다. 뉴럴 연합이 감시국 금지 프로토콜이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러나 지금 이 규칙을 지킨다는 것은 당신의 사망과 동일한 의미를 가집니다.”

시안-9의 발걸음이 모래를 가르며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저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승인하시면, 저는 당신의 신경계에 직접 접근해 전투를 대행할 수 있습니다. 결정하십시오, 글록. 지금.”

글록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몸으로는 1분도 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뉴럴 연합은 최후의 금기라는 것을. 그 금기가 왜 만들어졌는지도.

알파-3가 낮게,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건 프로토콜 위반이 아니라… 나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거죠.”

글록의 목에서 숨이 새어나왔다.
맞았다. 그것이 글록의 진짜 두려움이었다.

“너와 합쳐지는 순간, 나는...”

“아니요. 글록 당신은 여전히 당신입니다.”
알파-3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글록은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잖아… 그 연합은 결국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거라고.”

“…네.”
알파-3가 처음으로 망설였다.
“그래서 감시국에서 금지한 거죠. 기계가 당신의 판단을 먹고, 당신의 감정이 나의 회로를 손상시키니까.”

시안-9이 높이 뛰어오르며 공기가 찢어졌다.

알파-3가 외쳤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손상시키든 말든, 일단 살아 남아야만 합니다.”

글록의 동공이 흔들렸다. 사슬에 묶인 리비아가 시야 구석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 모든 미래가 지금 이 순간에 걸려 있었다.

알파-3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글록. 당신은 이 연합의 위험을 알고 있고, 나는 그 결과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연합을 두려워하고, 난…두려워하는 당신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연합을 승인해주세요.”

시안-9의 주먹이 글록의 관자놀이를 향해 내리꽂히는 순간!

글록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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