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고민하는 방법에 대해서
“나는 왜 약사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그 질문의 대상이 누구이냐에 따라서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만약 이 질문을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게 한다면 그건 창조주가 나를 약사로 만든 이유나 내가 지닌 사명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만약에 내가 같은 질문을 과거의 자신에게 한다면 그건 후회의 질문일 수도 있다. “대체 왜 약사가 된 거야?” 쯤 되는 뉘앙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궁금증은 있어도 믿음은 가지고 있지 않고, 가끔 순수 물리학자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은 하지만 약사가 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왜 약사가 되었을까?”는 현재의 나 자신과 미래의 여러분에게 하는 질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나는 약사가 될 거야.”라고 하지만 약사가 되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부끄럽게도 이것은 과거의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막 서른이 되어가는 꼰대로서 뒤이어오는 학생들이, 아니면 여전히 무언가가 되고 싶은 어른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진로를 고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희망 직업’에 대해서는 많이 물어보지만 그래서 운동선수가 되면, 교사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 지는 그렇게 물어보지 않는다.
내가 약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수능 점수를 받고 나서였다. 받은 점수로 먹고살 만한 진로를 고르면서 적당한 학교의 생명과학과에 들어간 다음 약학대학으로 편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수능을 봐서 약대에 들어갈 수 있지만 라떼는 바로 약대에 들어갈 수 없었고 최소 2년은 다른 전공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약대입문자격시험을 거쳐서 편입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언젠가 우연히 꿈이 ‘명사’가 아닌 ‘동사’ 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과학자가 될 거예요.”나 “나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가 아닌 과학자와 선생님이 되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담을 수 있는 동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 또한 고등학생 시절 약사가 되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집에서는 뭐가 됐든 ‘자격증’이 있어야 편하게 먹고살 수 있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를 했고 보건의료 계열의 직군에 계신 아버지의 영향도 받아서 나는 꽤 안정적이며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을 수 있는 약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대에 입학해 첫 학기 성적표를 받고 ‘이 정도면 유급 없이 무사히 졸업해 약사가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내 꿈은 수명을 다하고 사라졌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자기소개서에 ‘지원동기’와 ‘졸업 후의 계획’을 작성하면서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는 어떤 약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잠깐 고민해봤다. 마감일에 맞춰서 급하게 쓰려니 딱히 쓸 내용이 없어서 결과적으로는 다른 학생들처럼 학원에서 추천해주는 대로 졸업 후 대학원에 들어가 교수님의 충실한 연구원이 되겠다고 끄적였다. (물론 나는 대학원에 들어가지 않았다.) 중간에 직업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첫 직업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약사는 졸업 이후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평생 국가에서 인정한 약사로 살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대한 고민을 위해 조금은 더 시간을 들여서 내가 약사가 돼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직업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목표를 위해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목표를 위해서, 아니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목표를 위해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약대 삼 학년이 끝나갈 무렵이 돼서야 내가 어떤 약사가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옷을 구매할 때 내 몸에 맞는 못을 사야 했는데 일단 옷부터 사고 내 몸을 옷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것저것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찾아다녔다. 교내 활동도 재미있었지만 더 다양한 경험을 찾아서 학교 밖을 돌아다녔고 굴러다니다 보니 아프리카 르완다에도 가보고 어떨 때는 스위스에 있는 세계보건기구의 본부에 가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정책을 공부하는 것이 좋아 서초구에 있는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고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조금 더 많았을 때 내가 같은 고민과 노력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남는다. 내가 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왜 해야겠는지 모르겠는 공부를 하면서 점수를 올리겠다는 핑계로 의자에 엉덩이만 붙이고 있었을 시간에 같은 고민을 했다면, 나는 정말 물리학자가 돼 사람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세 얼간이’에 나오는 꽤 유명한 장면이다.
란초는 대충 아무 말이나 칠판에 써놓고 이게 무슨 뜻인지 맞혀보라고 한다. 학생들은 미친 듯이 책을 찾아보지만 애초에 뜻이 없는 아무 말이므로 학생들을 포함해 교수님까지 아무도 정답을 맞히지 못한다. 이후 란초가 이야기한다.
“1분만 돌려 생각해보죠. 제가 질문을 드렸을 때 설렜나요? 호기심이 생겼나요? 새로운 걸 배운다는 사실에 흥분됐나요?
아니죠. 모두들 미친 듯이 레이스만 펼쳤죠. 이런 방식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만약 제일 먼저 풀었다고 해도 그게 지식을 늘게 해 주나요? 아니요. 스트레스만 주죠.
여기는 학교입니다. 스트레스 공장이 아니죠.
서커스 사자도 채찍의 두려움으로 의자에 앉는 걸 배우지만,
그런 사자는 잘 훈련됐다고 하지 잘 교육됐다고는 안 합니다.”
어느 자기계발서에서나 흔히 할 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다. 그래서 내 약국을 차리고 나면? 돈을 많이 벌면? 그래서 유명해지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자기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계속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에 질척거리는 꼰대로서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더라도 그게 한 번에, 두 번에, 혹은 여러 번에 걸쳐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내가 바라던 것을 완벽하게 이루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굴러다니다 보면 결국엔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이거나 차악인 옷을 찾게 된다. 흔들리며 자라나 원하는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꽃이다.
다음은 카프카가 남긴 글의 일부다.
“네가 평지를 간다고 치고, 그렇게 가려는 소망을 가졌는데도 뒷걸음질을 친다면 그것은 절망적인 일일 터다. 그러나 너는 가파른, 너 자신이 발밑부터 보일 만큼 가파른 비탈길을 기어오르므로, 뒷걸음질은 오로지 지형 때문에 야기되었을 수도 있느니만큼, 너는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