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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pr 09. 2023

황하처럼 살아가겠다

중드 <인생지로 人生之路>를 보다


드라마 포스터만 보면 가운데 선 남주를 둘러싼 시골 캔디녀(오)와 부잣집 야심녀(왼) 간의 전원일기풍 삼각신파극일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그렇듯 이 드라마는 그렇게 뻔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악녀도 음모도 없고, 통쾌한 복수나 권선징악도 없다. 그저 각자의 분투하는 인생이 황하처럼 굽이굽이 돌며 바다로 흘러갈 뿐이다.  



1980년대 산시성(陕西省) 황토 고원, 휘둘러 흐르는 황하가 내려다보이는 고씨집성촌, 고자촌(高家村). 이 궁벽한 마을에서는 마을이 생긴 이래, 한 명의  대학생도 배출한 적이 없다.


이 마을 최고의 수재 고가림(高加林). 그에게 대학 진학은, 평생을 이 작마을에 갇혀 아버지 같은 무지렁이 농부로 살아갈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그러기에 그는 어느 누구보다 전력을 다해 대입 준비한다.  


대입시험 전 궐기대회에서 학생 대표로 선서하는 가림


 모의고사에서 현(县) 1등을 차지하고 선생님과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 그였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대학합격통지서를 받지 못한다. 대신 성적이 한참 아래이던, 마을 촌장의 아들이자 그의 절친 쌍성(高双星)만이 대학진학에 성공하는데 이는 촌장인 그의 아버지가 우편으로 배달되던 가림의 합격통지서를 가로채 그의 아들을 고가 이름으로 대학에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고쌍성에게 다가온 뜻밖의 행운까 아니면  불행의 시작까.


친구의 대학합격을 축하하며 아끼던 만년필을 선물하는 고가림. 입은 달싹거리지만, 결국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는 고쌍성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재수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농민으로 살아가는 고가림. 죄책감과 열등감 속에서 고가림으로 불리며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대학 생활을 하게 된 고쌍성. 이렇게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뀐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등등이 쭉 그래온것처럼 나도 땅에 머리를 박고 한 평생 살아가야하는 운명인 걸까, 절망에 빠진 고가림


마침, 마을 소학 임시교사 자리가 나 림은 교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무너져가던 교사를 수리하고, 수업결손이 심각하던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과목을 알차 가르치고, 농촌 교육의 실태를 르포 형식으로 쓴 글이 신문에 실리고, 우수교사상을 받기도 한다. 정교사가 되어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림은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정저지와'를 가르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데려간 읍내 체험학습 도중, 한 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 책을 지고 해직되면서 은 다시 무너진. 익숙한 '방구석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 . 아버지는 이제 그만 너의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땅 파먹고 사는 게 뭐가 그리 나쁘냐며 그를 설득해 보지만 림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날고만 싶다.


군관었던 작은 아버지의 귀향으로 다시 찾아온 기회, 현청 홍보실의 관보 기자가 된다. 문필력을 인정받고 기자 연수도 받고, 점차 날아오르려는 찰나, 그에게 악의 품은 지인투서로 가림은 다시 직업을 잃는다.


참담한 심정으로 황톳길을 터벅터벅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림이 가장 힘든 순간 늘 곁에 있어 주었던 순박한 그녀, 잘 나가는  기자가 된 후에는,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 그녀와문화차이가 더욱 벌어져 결국 헤어지고 말았던 그녀, 교진의 결혼행렬과 마주친다.




그리고 이제 어리석음과 절망 외에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계속 쓰고 또 쓰는 가림. 마침내 문학상 수상자가 되어 난생처음, 꿈에 그리던 도시 상해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유명 신문사 기자 채용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찾아온다.


뛰어난 문필력으로 2등으로 합격한 가림. 그러나 고졸학력에 상해 호적 없는 깡촌 출신 림을 두고 신문사에서는 채용을 꺼린다. 이를 일갈하는 편집장의 결론.

 

"채용공고에 우리가 '고졸이상 학력'이라고 내걸었으니 문제 될 건 없지. 시골 소학교 선생도 하고 현청 관보기자경험도 있으니 지원자 그 누구보다 다양하고 탄탄한 현장 경력을 갖췄군. 게다가 얼마 전엔 신인소설 대상도 받았어. 여기, 이 지원자가 쓴 소설 읽어 본 사람 있나? 나 밖에 없으니 이 사람 채용에 관해선 내게 발언권이 있겠구먼. 농촌의 현실을 르포 형태로 쓴 논픽션 소설이었어. 아주 인상적이었지. 뭘 망설여!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찾던 인재잖아!"


그렇게 유명 신문사 기자로 상해에 입성하게 된 가림. 이렇게 멀고 먼 길을 돌아, 야간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쌍성과 다시 만난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 가정도 꾸리고 석사 학위에 어느덧 번듯한 교육국 공무원이 된 쌍성. 두 사람이 업무 한 사건을 맡아 같이 처리하게 되는데, 바로 담임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의 대학합격통지서를 가로채 자신의 딸을 대신 대학에 보낸 사건이었다. 피해자 여성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인생을 직접 지켜보는 쌍성의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예전 그 일 이후,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간 적 없는 쌍성, 가족,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불면과 불안, 죄책감 속에 평생을 전전긍긍 살아온 쌍성. 그럼에도 예전악행은 더 큰 대가를 요구하며 더욱 그를 조여 온다. 악행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닐까. 꼭 사법적 심판이나 지옥 유황불이 아니더라도, 평안 존엄을 잃은 자신의 삶으로 그 갑절의 대가를 치르는 듯하다. 


인생길에서 누구나 힘든 일을 겪는다. 고쌍성처럼 자신의 욕심이나 어리석음으로 화를 자초할 때도 있, 고가림처럼 이유도 모른채 억울하게 당하는 고통도 있다. 가림의 말처럼 정해진 운명은 없다. 신이 대신 구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일시적 기만이나 얕은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통쾌한 한방, 극적인 반전도 없다. 미움이나 원망도 자신을 상하게만 할 뿐이다. 그저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수 밖에 없다.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선의로 대하고 스승으로 삼 배우며 정직하 성실하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대지에 단단히 배를 대고 아흔아홉 굽이로 의연하고 담담하게 흐르는 황하처럼, 그저 천천히 앞으로 나가는 수 밖에 없다. 


, 인간사의 법칙이 자연의 법칙을 이기지 못한다.


아흔아홉 굽이로 돌고 돌며 흐르는 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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