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신조어라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주말과 방학을 힘들게 하는 게 돌밥이다. 주말 이틀 집에 있으면서 여섯 끼를 다 집에서 먹으면쉬는 것 같지 않다. 일어나자마자 아침 차려서 먹고 치우면 점심할 때고 점심 먹은 거 치우면 또 저녁 할 시간이다. 주말 한 끼는 무조건 나가서 먹어야 한다고 다짐까지 한다.
작은 주방에 식기세척기를 설치하러 오신 기사님이 신신당부를 하신다. '인덕션과 식기세척기를 한 콘센트에 연결했으니 절대 동시에 작동하면 안 된다. 화재 위험이 있다. 절대 안 된다.'
나는 전문가의 말을 잘 듣는다. 절대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다. 이 이유로 처음엔 밥을 먹으면 즉시 설거지를 했다. 조금 널브러져 있고 싶어도 이따 밥을 해야 하니 미리 식기세척기를 돌려놓아야 했다. 게으름을 미연에 방지하는구먼 했다.그런데 시간이 지나며최선을 다해 쉬기 시작하자, 같은 이유는 훌륭한 '돌밥 방지 시스템'으로 활용된다.
아침 먹고 느리작 거리다가 이제 막 설거지하고 세척기를 돌리는데 출출하단다. "지금 인덕션 못써~" 말하는데 내심 기쁘다.저녁 먹고 설거지를 돌리면 이제 오늘 하루 집안일을 마무리했다는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얼마 되지도 않아 야식이 먹고 싶단다. "세척기 아직 안 끝나서 지금 요리 못하는데~"하면서 야식도 넘긴다.
오 이거 좋은데?쾌재를 부른다.
먹을 것에 한이 맺힌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차려 내야 할 것 같았다. 먹을 것을 참고 넘긴다는 게 싫었던 나는 그러나, 한번 참고 넘김으로써 생기는 자유시간과 여유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그래, 간식 먹으면 또 이따 밥맛이 좋을 리 없고 야식이 몸에 좋은 것도 아니다. 출출할 때마다 무언가를 꼭 먹을 필요는 없었는데 왜 꼭 뭔가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해서 부엌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던가!
작은 주방의 한계 덕에 깨달음을 얻는다.
오늘 아침 설거지는 정말 오래 쌓아 두었다. 아침 먹고 나서 먹은 약기운에 잠깐 누워있었더니 시간이 훅 갔다.겨우 일어나서 설거지를 돌리자마자 또 출출함 타령이다.나는 또 돌밥 방지 시스템을 활용한다. "지금 안돼~"그랬더니 '그럼 사발면은 되지?' 하면서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 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