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거 신경 쓰지 않고온전히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쓰는 대범한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내가 최선을 다해 하지 않는 것이 바로 '후회'이다.
머리에 다시 떠오르지 않게, 떠올랐다면 어서 떨쳐버리기 위해 애를 쓴다. 계속 머리에 떠다닌다면 열심히 합리화를 한다. 분명히 잘못한 것도 요만큼의 연결고리를 찾아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사전단계였던 것처럼 포장을 한다. 과거의 실수를 차분히 돌아보며반성하고 그것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배울 점을 캐치하기,싫다. 그냥 안 돌아보고 싶다.
깨치고 뉘우친다는 '후회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건설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러나 나의 후회는regret에 좀 더 가까이 있다.
이미 벌어진, 이미 지나간, 이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곱씹어 생각하고,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를 돌이켜 생각하며 feel sorry 하는 것, 그것이다. 표현은 심플하게sorry지만 이불 킥부터 시작해서 심장이 뜯길 것 같은 고통도 포함이다. 내게 '후회'는 내 스스로 나의 심장을 공격하고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행동이다.
곤도 마리에도 버리기 힘들다고 인정한 추억의 물건을 고민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 왔던 일기장이었다. 지금은 아예 없어져버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 캐릭터가 그려진갱지로 만든 공책부터몇 년 전까지 쓰던 다이어리가 가득 찬 상자였는데, 하필 일기장을 열자마자잊고 싶었던 날의 기록이 나왔다. 읽자마자 생생하게 떠올랐다.그대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다.
신나게 하루를 보내고 차분히 앉아 일기를 쓴 날은 많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었던 날, 머리가 복잡해서 누워도 잠이 오지 않던 날 그런 날 주로 다시 일어나 앉아 일기를 썼다. 일기 안에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의 기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기장을 버리며 그 기억들을 같이 비웠다.
다시 생각해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마음 한 구석이 부들부들해지고, 심지어 안구에 촉촉이 물기가 찰 만큼 벅찬 기억만 되새기면 된다. 내가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신나게 보낼까에만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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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에게 치유의 글쓰기는, 단언컨대 글렀다.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하고, 아픔을 치유하고, 꼬인 감정의 실타래를 풀라는데, 못 하겠다. 뭔가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 싶으면 머릿속 어딘가에 늘 들어 있다. 그러니 지나간 아픔을 치유한다고 글을 쓰겠다 하면 그 기억을계속 넣고 있어야 할 테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마치 오늘 아침 일어난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를 때마다 기를 쓰고 다른 생각을 해 대고, 내몸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잡다하게 읽었던 책들에서 효과적이라 했던 방법들을 썼다. 원숭이 몇 마리를 데려와 셌다가, 떠오른 기억을 기차에 태워 보내봤다가, 숫자를 세며 심호흡을 해봤다가, 갑자기 미친 여자처럼 노래를 불러봤다 해가며 겨우 내보냈던 기억들을 다시 꺼내 차분하게 바라보려니,이건 내게는 무리다.
10년이 지나고20년이 지나면, 과거의 아팠던 기억들을 떠올려도 아무렇지도 않을까, 심지어 그때를 차분히 돌이키고 싶으려나.그렇다면 그때 해야겠다.
이제 겨우 딴딴하게 딱지가 굳어졌는데 그걸 또 하나하나 뜯을 수는 없다. 딱지가 저절로 사라지고, 새 살이 돋고, 옆에 살이랑 색깔이 비슷해져서 '아 여기 상처가 있었는데 티도 안 나네' 싶을 때, 그때 할란다.
사람마다 상처가 아무는속도는 다르지 않는가. 나는 살성이 좋지 않아서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다. 아물었다 싶으면 또 고름이 난다. 초등학교 때 예방 접종을 하고 나면 한 달이 넘어서까지 아물지 않았다. 내 안의 피부도겉과 같아 남들보다 느리게 아무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아픔을 글로 승화시키는 내공은 내게 없는 것으로 하고.치유의 글쓰기는 넘보지 않는다. 그냥 나는 회피하고 다 묻어두련다.내면의 아이도일단 내버려 둔다. 지금 오늘을 사는 나를 챙겨주고 보듬어 주기도 바쁘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더 큰 자아로 성장할 수있대도, 더 나은 내가 되겠다며 바둥거리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