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자연공원, 센트럴파크의 이른 봄을 만나고 왔습니다. 꽃샘추위로 봄이 온 것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모처럼 날이 따뜻하고 화창해서 동네 기차역으로 가서 무작정 맨해튼행 티켓을 샀어요. 꽃으로 직접 장식한 모자와 흰 운동화를 신고 5분 정도 걸리는 기차역까지 걸어가는데요. 어찌나 발걸음이 가볍던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 같았습니다.
센트럴파크에 도착하니 예쁘게 장식하고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경쾌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직 추운 날씨인데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는 사람을 보니 젊음의 에너지가 저에게까지 전해지는 거 같아 절로 힘이 났습니다. 갈 때마다 느끼지만, 오래전의 모습 그대로여서인지, 세계적인 공원답지 않게 들어가는 입구도 소박하고, 정겹습니다.
지난 늦가을, 이곳을 방문했을 땐 센트럴파크의 시그니처인 '늦가을의 단풍'을 보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는데요. 지금은 현지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만 다소 한적하게 도심 속 자연을 즐기고 있었어요. 꽃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노란 산수유가 멀찌감치 병풍처럼 피어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산수유의 향긋한 노란 물결을 보니, 보고 싶던 옛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고 세상에 알리는 것 같아, 얼마나 반갑던지요. 신기해서 마른 나뭇가지에 몽글몽글 핀 꽃을 만지니, 이제 막 태어난 아가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연했습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자그마한 노란 솜 같은 꽃은 맨해튼의 칙칙한 색의 고층 건물과 안 어울리듯 또 멋지게 어울렸습니다.
산수유를 지나, 마천루 사이의 호수 쪽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이곳은 재클린 오나시스 저수지(Jacqueline Kennedy Onassis Reservoir)로 센트럴파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죠. 호수, 공원, 맨해튼의 건물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지난가을에 왔을 때는 낙엽을 구경하느라, 마천루의 아름다움과 호수에서 노니는 청둥오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꽃이 피기 전이라, 눈길이 자연스럽게 호수를 향했습니다. 여백이 주는 여유랄까요? 호수에는 건물이 물에 잠긴 듯 누워있었고, 제각기 모양이 다르면서도 조화로운 건물도 자세히 보였습니다. 햇빛에 반사된 윤슬도, 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도 유난히 맑고, 파랬습니다.
호수의 다른 편에는 베데스다 분수가 있는데요. '물의 천사'(Angel of the Waters) 란 이름의 천사 동상이 분수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동상 아래에는 '건강, 순수, 평화, 절제'를 상징하는 작은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를 비롯해 많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여서인지 유독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분수를 바라볼 수 있는 유럽 스타일의 고풍스러운 테라스 또한 센팍의 인기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른 봄이어서 분수대의 물이 뿜어져 나오지 않아 아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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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를 지나, 센팍의 자연 숲길을 걷다 보니, 꽃과 식물들은 차례차례 그들의 시간에 맞춰 꽃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선화는 이미 꽃을 피웠고, 목련은 이제 도톰한 꽃봉오리가 곧 터질 듯했어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도 새 신부처럼 화사했습니다. 꽃들도 필 때, 질 때를 알고, 질서 있게 자연의 순리대로 사니, 저도 조급할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센트럴파크는 자연적으로 생긴 공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국 최초로 조경 건축술을 이용해서 인위적으로 개발한 공원이에요. "자연을 통해 사람의 심성을 정화하고, 일상 속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기본 정신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균형을 이루면서도 야생 숲 같은 자연의 풍경을 누구나 맛볼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하는데요. 공원 운영비 80%가 주변 고급 아파트 주민의 기부에서 나온다고 하니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좋은 예입니다. 자연과 공원으로부터 받은 혜택을 기부로 답례하는 것이라고 해요. 덕분에 반가운 초봄의 따스한 공기를 온몸으로 즐기며 발길 닿는 대로 걸었습니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꽃이 아직 없는 초봄이라 별 기대 않고 센트럴파크를 갔다가, 자연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왔습니다. 우거진 나무와 화려한 꽃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 잘 보였던 여백의 여유를, 자연의 질서를, 이른 봄의 설렘까지 함께 느끼고 왔습니다. 160년 전에도, 이 삭막한 자연의 공터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나누고 싶었던 이유도 "자연과 함께 사색하고 성찰하라"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듭니다. 이미 꽉 차 버려 들어갈 여유조차도 없는 머릿속도 다른 생각이 잘 들어 오도록 조금 비워둬야겠습니다.
센트럴파크의 봄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바쁜 일상으로 쉼이 필요하신 분들께 위로의 리스 보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