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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Feb 24. 2024

맨해튼에서 40년 절친을 만났다


작년 2월, 한국에 사는 40년 절친 K가 딸을 보기 위해 코네티컷을 처음 방문했다. 뉴욕과 가까워서 지난해에는 친구와 5박 6일 동안 '맨해튼 살기'를 했더랬다. 공동의 버킷리스트였던 센트럴파크에서 찬 공기를 마시며 아침 산책을 하고, 5번가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모마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니며, 꿈만 같았던 시간을 보냈었다.  


올해 다시 코네티컷을 찾은 친구와 이번에는 각자의 딸들과 맨해튼에서 만나 수다를 즐기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친자매처럼 지냈던 딸들이었는데, 멀리 떨어져 사느라 10년 이상을 못 봐서 궁금하던 차였다. 점심을 먹고, 랄프로렌 카페에서 핑크빛 리스를 만들어 친구 딸에게 선물했는데, 이게 뭐라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고마워했다. 친구와 친구 딸, 나와 내 딸.... 이렇게 4명이 각자가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k는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자, 비슷한 점이 많아 '또 다른 나' 같은 친구다. 지금 생각하면, 웃을 일이지만, 우리가 대학에 다닐 무렵엔 학교 뱃지를 옷에 달고 다녔었다. 대학 1학년 때, 아침 일찍,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학교를 가려고 7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같은 뱃지를 단 세련되고, 참하게 생긴 여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색한 첫 눈인사를 하고, 버스 타고 학교에 가는 동안 몇 마디를 나누는데, 벌써 마음이 통해 설렜다.   


그날 이후, 우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청춘이 겪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함께 기뻐하고, 아파했다. 아버지가 대학 4학년 졸업 연주회를 앞두고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녀는 매일 우리 집에 들러 나를 위로하고, 함께 슬퍼했다. 우연이지만, 각각 결혼 상대자의 직업도 같고, 결혼한 후, 사는 동네도 가까웠다. 아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출산해서 서로 의지하면서 키웠더랬다. 둘 다 딸이 혼자인 집안의 장녀라 평생 자매처럼 의지하고 지낼 줄 알았다.


그러던 중, 내가 미국으로 오면서 자연스레 가까웠던 친구와도 소원해졌다. 언뜻언뜻 생각은 났으나 사업을 하고, 아이들을 한참 키울 때라 가끔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친구 또한, 치열하게 사느라 '우정'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보냈다. 가끔 한국에 가도 집안 행사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잠깐 얼굴 보고, 서로 바빠 아쉽게 헤어지기 일쑤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고.... 한국에 있는 옛 친구와도 어색한 거리가 생기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며, 끝날 거 같지 않던 가정에서의 역활도 어느 정도 느슨해지고, 아이들도 자리를 잡아가자, 다시 옛 친구가 그리워졌다. 미국에서도 직장에서, 교회에서, 좋은 사람은 만나지만, 대부분은 흘러 지나갔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다가도, 아니면, 미련 없이 헤어지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라고 하긴 아쉬웠다. 외국이라 더 외롭다고 느낄 수도 있고, 나이 탓일 수도 있지만, 뭔가 한쪽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은 달래지지 않았다.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나이가 들어가며 서로를 찾기 시작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한국을 방문하면, 옛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도 이젠 대부분 은퇴하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만남이 예전보다 활발하고 수월해졌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 만나지만, 나이를 잊고 옛날로 돌아가니 즐겁다. 한국을 방문하고, 뉴욕에 돌아올 땐, 몸과 마음에 따뜻한 온기와 뭔지모를 충만함으로 가득하다. 잘 보이려고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허물을 말해도 무시당하지 않고,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벗들의 선물 덕이다. 


딸들과 함께한 보너스 같은 만남을 통해, 그간에 열심히 살아온 시간에 대해, 끊어질 듯 이어져 온 우정에, 새삼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특별한 거 없는 만남이고, 나눈 대화도 평범하다. 그럼에도 한국이 아닌, 내가 사는 뉴욕에서, 든든한 딸들의 보호를 받으며, 음식을 함께 나눈 시간이 무엇보다 값진 선물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살아가는 딸들이 대를 이어 우정을 나누는 모습도 뿌듯했다. 나이 듦은 우정도 성숙하게 하나 보다. 




PS: 사느라 바빠서, 소원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다시 옛 친구와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있어요.  

핑크빛 리스를 독자분들과 독자분들의 옛 친구들께 보내 드립니다. 

['서툰 인생, 응원합니다.' 연재 브런치북은 매주 만든 소품을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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