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아파'
몹시 추웠던 지난 1월, 늦은 점심을 먹고 정원으로 나가는 곳에 있는 작업실에서 글루건으로 소품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수로 순식간에 뜨거운 액체(글루)가 왼쪽 검지손가락 손톱과 둘째 마디사이로 흘러내렸어요. 글루에 손이 붙어 버린 거 같이 따갑고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은 잠시! 나이 들어가며 늘어가는 남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하던 일을 급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이튿날이 되니 데인 곳에 물집이 크게 부풀어 올랐어요. 누가 봐도 손가락에 길고 커다란 혹하나를 붙이고 있는 모양새라 할 수 없이 남편에게 이실직고했습니다. 웬일로 "날씨가 추워서 마음이 급해져서 그랬나 보다"라고 잔소리 대신 위로를 해주었어요. 물 닿으면 안 된다고 설거지도 해 주고, 집안에서 작업하라고 간이책상까지 만들어 주니,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제가 한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소품이 뭐길래 이렇게 손을 데어 가면서까지 만들고 있는 걸까? ‘자문했습니다.
'내가 요사이 정신줄을 놓고 사는 게 분명해!'
'글루건을 이렇게 강력한 전문가용으로 사는 게 아니었어!'
'근데 난 도대체? 왜? 끝없이 만들고 있는 거야?'
스스로 자책하며 여러 물음을 해보니, 마지막 질문에 답이 바로 나오질 않고 머뭇거려졌다.
'소품이 뭐길래' 이렇게 손을 데어 가면서까지 만들고 있는 걸까?
처음에는 인스타에도 정원 기록을 하며 간간히 소품을 보여주다 언젠가부터 ‘이야기를 담은 소품’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었어요. 열심히 하는 와중에 작은 사고도 자주 일어나고요. 한참을 생각해 보니, 두 해 전, 소품으로 만든 '한국과 뉴욕의 솔방울 이야기'가 시작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한국을 방문했을 때, 40년 절친의 선물로 속초 바닷가를 갔었는데요. 뉴욕에 오니 친구와 함께 걸었던 소나무 숲이 생각났어요. 작가가 글로,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하듯이, 저도 친구와의 추억을 소품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생각 끝에 속초 솔방울과 뉴욕 솔방울을 조명 줄로 이어서, 떨어져 있는 친구와 연결을 나타낸 적이 있었는데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200여 개의 소품에도 이야기를 담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0개가 넘는 다양한 소품 중 많은 부분이 과거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완성했는데요.
핑크빛 안개꽃과 함께 만든 소품은, 자전거를 자주 탔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40년 전에는 여의도광장에 운동하는 사람이 가득하고, 주말이면 여러 운동 클래스도 열렸었어요. 운동신경이 둔한 저를 보고 자전거를 배워서 탄다고 친구들이 깔깔댔는데, 그때의 용기조차도 귀엽고 즐거운 추억입니다.
긴 겨울 지나 초봄에 프리지어를 보면, 피아노가 생각납니다. 대학 졸업하고 첫 자선 연주회에서 Chopin의 곡들을 연주하고, 받은 몇 개의 꽃다발 중 작은 프리지어 꽃다발이 있었는데요. 누구에게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꽃 향기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첫 연주의 설레고 떨렸던 기억이라, 프리지어만 보면, 그 시간이 떠오릅니다.
사실 요즈음, 꾸준히 하던 소품 작업이 조금 따분해지고, 그게 그거인 거 같아 싫증이 나려던 찰나였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아닌데 뭘 이렇게 열심히 하나? 싶어 여러 차례 갈등도 했어요. 흔히 겪는 '취미 권태기'라고나 할까요?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자부심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꽃이라는 소재로, 새로운 것을 계속 창조해야 하는 압박감과 따분함에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던 거 같아요
글을 쓰며 되돌아보니, 그동안 소품을 만들면서 내 방식대로 위로받고 힐링하고 있었습니다. 작업할 때마다, 함께 했던 따뜻했던 인연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행복하고 즐거웠거든요. 잠시 지겨워,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한다면, 그 안에 있는 기억까지 놓치고 후회할 거 같았습니다. 지루함을 이기고 얻어낸 결과물도 삶의 가치일 수도 있으니까요. 비록 손가락에 깊은 상처가 생겼지만,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 또한 '상처가 준 선물'입니다.
PS:
작은 상처를 통해, 아프지만, 다시 다짐하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여러 상처를 극복하고 계신 독자분께 드립니다. '서툰 인생,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