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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Mar 09. 2024

꽃이 화해를 청했다


한 주 동안 해야 할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차를 마시며, 토요일 오후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초인종소리에, 아마존에서 택배가 왔나? 하고 문을 열었더니, 낯선 외국 남자가 예쁜 꽃이 든 꽃병을 들고 있었다. 집에 들어와, 함께 동봉된 카드를 펴자 "중략.... 저의 불찰로, 마음을 상하게 해 드려, 작은 선물 보내드립니다."이라고 쓰여 있었다. 


벌써 마음의 정리를 다 했는데, '이건 또 뭐람!! 부담스럽게!!!' 란 생각이 들어 가족실 한구석에 꽃병을 밀어놨다. 한편으론, 싱싱하고 예쁜 꽃을 보니 '꽃이 무슨 죄가 있나!' 싶어, 일단 포장을 벗기고, 햇빛 잘 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얼마 전, 기관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P라는 분이, 많은 사람 앞에서 나에게 말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살짝 당황했지만, 분위기가 어색해질 거 같아 별말 않고 지나갔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나만 아니면 되는 거야!'라는 넓은 마음마저 가졌더랬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집에 와서 일기를 쓰는데, 갑자기 그 일이 세세히 생각나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난 왜 맨날 뒷북이야!'라며 남편에게 겪은 일을 말했더니 나보다 더 화를 낸다. 평소의 모습답지 않게 "그 사람이 고의로 장난했구먼!" 하니,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그때의 상황과 현재의 심정을 간단하게 글로 정리했다.


글을 쓰며, '그냥 참고, 넘어갈까?' 아님 '왜 그랬는지 따져 물을까?''란 두 가지 메시지로 마음이 뒤숭숭했다. 결정하기가 어려워, 엄마의 해결사인 딸에게 쓴 글을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다. 상황 파악을 한 딸이 "엄마가 속상할 만하네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직접 물어봐야 할 거 같아요."란 답이 왔다. 바로, 글을 조금 수정해서 P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조금 있자, P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의 의도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라며, 긴 설명을 하는데, 마음이 풀리기는커녕 더욱 꼬이는 듯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침착하게 그 말이 왜 잘못됐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결국 P는 작은 실수가 아님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잘 몰라서 실수하고 무례했다고.... 그럼에도 P와 예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것 같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라며 애쓰는 중에, '화해의 꽃'을 보고, 진심으로 위로하고 사과하려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조금 남아있던 감정의 찌꺼기까지도 개운하게 풀었다. '예쁜 꽃과 카드에 감사하다'는 답례의 글을 보내고, P와 조심스럽게 화해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상대방의 오해나 실수로 마음이 불편해진 일이 있다면, 무조건 참는 게 능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상이 높은 지위나 위치에 있을 엔 더욱 그렇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로, 참고 넘어갔다면, 상대방은 똑같은 실수를 또 할 수도 있고, 말 못 해 남아 있는 찝찝함은 내 몫이 될 뻔했다. 불편하더라도, 진심 어린 대화로 풀어가는 편이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방법'이며, 상대방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단 생각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빛을 갚는다"라는데, 서운했던 말 한마디로 좋았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말린 봄꽃으로 만든 '위로의 리스' 보내 드려요. 

['서툰 인생, 응원합니다.' 연재 브런치 북은 매주 만든 소품을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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