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비즈니스 한 이야기 5화
지난 화에 이어....
Test Prep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황당하게 뺏긴 경험을 통해 그만큼의 배움도 얻었습니다. 그동안 쉽게 성장한 덕에 안이하게 생각했고, 의심 없이 남을 믿었고, 자만했습니다. 그 후, 선생님들을 고용할 때도 Reference Letter (추천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세심하게 읽었습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고용계약서에도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에 관한 조항을 추가하고, 선생님들과도 수시로 소통했습니다.
차별화된 프로그램만이 살길이다
한편, 타 입시학원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스킬도 중요하지만, 좀 더 길게 보고,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고나 할까요?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학생들이 단기간에 점수가 잘 오르지 않는 과목이 Writing/Essay였습니다. 어려워하는 글쓰기를 좀 더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지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학부모들의 상담 중 많은 부분도 Writing 이어서, 이 부분을 특화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스태프분들과 많은 연구 끝에 '고전'을 통해 글쓰기를 하는 'Novel & Writing Class'를 개설하기로 했습니다. 고전을 읽고, 책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창의적인 글쓰기 훈련을 하는 프로그램인데요. 글쓰기뿐 아니라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힘'도 기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대상 학생도 4학년부터 대입시 부담이 덜한 8학년까지로 정했어요. 기획은 착착 진행됐고, 좋은 선생님을 모시기 위한 노력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시작됐습니다.
일단, 부딪혀 보자
오랫동안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유독 OO 학교 출신이 글을 잘 쓰고, 품성이 좋은 학생들이 많았어요. 이유를 살피던 중, 재학 중인 학교에서 지도하는 C 선생님의 영향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해박한 지식과 경험으로 30년 이상 학교 내 Gifted and Talented Class (영재반)에서 가르치고 계신 분인데요. 학생들의 성향 파악을 정확하게 하고, 긍정적이고 꿈을 갖게 하는 교육으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모신다면, 학생들에게 분명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학교 외엔 어디서도 수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배신감과 그에 따른 위기로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여선지 오기가 생겼습니다. 최선을 다해 부딪혀 보기로 했어요.
마침, 딸이 컬럼비아 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터라 C 선생님 섭외를 부탁했습니다. 영어가 능통하고, 설득력이 있어 잘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딸은 학교 홈피에 나와 있는 C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로 진심을 담아 편지를 보냈습니다. 본인 소개와 함께, 뵙고 싶다는 내용까지 적어서요.
고맙게도 다음날, 답이 왔습니다. 학교 외의 수업은 하지 않지만, 도서관이나 Barnes & Novel 책방에서는 가끔 봉사를 하니, 와도 된다는 내용이었어요. 알려준 시간에 딸과 함께 찾아갔습니다. 170cm 정도 되는 키에 긴 금발 머리의 호탕하고 멋진 분이셨어요. 젊었을 때 연극배우의 전력이 있어선지 미국영화에서 본 듯한 친근하고 포근한 인상이었습니다. 권위적이지도 않고, 겸손하고 긍정 에너지가 넘치셨어요.
다행히도 선생님 제자 중에 우리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많아 수월하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Test Prep을 소개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할 예정인데, 모시고 싶단 제의를 대뜸 했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였지만, 위기감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나 봐요. 수업의 취지를 듣더니 공감을 많이 하셨어요. 보통은 학원에서 점수 올리는 스킬만 가르치는데 "창의력 향상"에 좋은 프로그램이 될 거 같다고 덕담도 해주시고요.
저와 딸의 모습을 보며 갈급한 마음을 읽으신 걸까요?
지금까지 학교 밖에선 수업하지 않았지만, 모녀와 대화를 해보니 함께 일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 번에 OK!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흥분된 마음으로 구두계약을 하고, 선생님이 놀랄 정도로 많은 사례비를 제시했습니다. 비슷한 조건의 선생님보다 3배를 말씀드렸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봐도 베팅을 참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 정도의 실력과 인성을 갖춘 분이라면, 그만큼의 사례가 맞단 생각을 했어요. 그리곤 C 선생님의 'Novel Study & Writing'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선생님의 소문을 들었지만, 배울 곳이 없어 아쉬워하던 학생들이 대거 등록했어요. 첫해에 4개의 Class를 개설했는데, 일찌감치 마감하고 다음 학기 대기자까지 줄을 섰습니다. 선생님께 최고의 사례비를 드린 만큼 비싼 수업료를 책정했음에도 말이에요. 위기 덕분에 다시 한번 탄탄한 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인들까지 감동한 수업 이야기는 다음 화에 계속....)
소회
열심히 교육사업을 하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교육에 대해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숙고하던 중, Writing임을 깨닫고 이에 집중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수 있었어요. 만약, 편안한 상황이었다면, 다른 곳과 차별화할 노력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위기를 만나면서, 극복하기 위한 틈새를 연구하고, 과감한 투자도 하면서 Writing에 특화된 Test Prep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지속적인 성장을 하며 여성 CEO로도 인정받았으니 '위기는 기회다'를 넘어, '위기만이 기회다'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