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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Aug 24. 2024

고난 끝에 만난 선물

미국에서 비즈니스 한 이야기 4화


한 달 전이었습니다.

정원에서 물을 주는데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있는 더그우드(산딸나무)의 잎끝이 타들어 가는 게 보였습니다. 날씨가 더워 물이 부족한가 싶어,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특별관리를 했는데요. 과습 때문인지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더니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고상하고 동양적인 꽃나무라 SNS에 여러 번 자랑했는데 민망하고 속상했습니다.


그동안에도 꽃을 예쁘게 키우겠다는 의욕이 넘칠 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만 잘 주면 알아서 잘 자라는데, 그걸 못 참고 영양제와 가지치기에 욕심을 부리다 되레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경험 많은 정원지기는 "식물과 적당한 관심과 거리두기"를 당부 하나 봅니다.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성장하던 찰나에 욕심을 부리다 여지없이 낭패를 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입시를 준비하는 Test Prep을 신설하니 능력 있는 선생님을 찾고, 확보하는 게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인맥을 총동원하지만, 수시로 교사들이 모여있는 사이트를 점검하고, 구인 광고도 활용합니다. 비싼 돈을 들여 광고를 내면, Resume(이력서)가 이멜로 오는데요. 그중에 적합한 선생님이 있으면, Interview(면접)를 합니다.


면접에서는 '경력 여부, 그전에 근무한 곳은 어딘지? 얼마만큼 근무했고 원하는 강사료' 등을 자세히 물어봅니다. 때에 따라선 Demo Lesson을 하기도 해요. 협상을 잘하기 위해, 대범하고 순발력 있게 결정하고, 때론 눈치작전, 선수 치기도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능한 선생님을 결정했다 해도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를 하는 바람에 인연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학생들보다 선생님 구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하고 다녔다니까요.   


그때도 썸머스쿨을 앞두고 선생님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중이었어요. 구인 광고를 내자, 많은 분이 이멜을 보냈는데 그중 눈에 띄는 이력서가 있었습니다. 특목중. 고와 Ivy League를 졸업하고 입시 경험이 많은 A라는 분이었어요. 인터뷰하는데 모든 조건이 완벽했습니다. 다른 강사의 2배가 되는 고액 강사료를 요구했지만, 바로 고용했습니다.



위기를 맞다

A 선생님이 오면서 테스트프렙도 방과후 학교 근처의 작은 빌딩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후에 증축해서 종합 교육센터를 할 계획으로 무리하게 매입한 곳인데요. 말하자면 지점을 차린 셈이지요. 방과후학교와 함께 옮기기엔 규모가 작아 저는 본점(방과후 학교)을  A 선생님은 지점(테스트프렙)을 맡았습니다.


A는 기대대로 특목고 입시에 최적화된 분이었어요. 카리스마 있는 수업으로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기와 참여도가 높아 많은 강사료를 지급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내부도 북카페처럼 꾸며놓으니, 다들 좋아했습니다. 방과후 학교와 분리한 건 힘들긴 해도 잘한 결정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그렇게 썸머스쿨을 보내던 중,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학부모에게서 제보가 들어왔어요. A 선생님이 자기 아이를 밖에서 만나 음식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는데 좀 이상하다면서요. 물론 아이는 좋아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란 생각이 든다는 거였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라 신경이 쓰였습니다. 혹시나 하고 다른 학부모에게 물어봤더니 그 아이들 역시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A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예상대로 학생들을 독려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였다는 대답이었어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주의만 주고 일단 지켜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썸머스쿨이 끝날 무렵이 되자, 많은 학부모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A 선생님이 Tutoring 학원을 인근에 오픈해서 아이들이 따라간다고 하니 양해 해 달라는 말이었어요. 사춘기 아이들이라 타일러도 안된다며 미안해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우수한 학생 대부분이 A 선생님을 따라갔습니다. 


사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학생 수보다 튼튼하게 쌓아온 신뢰가 무너졌다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설마! 오랫동안 다져온 관계가 있는 데 따라가겠어?' 했는데 불과 7주 사이에 그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어요. A는 처음부터 우수한 학생들을 빼갈 목적으로 접근했고, 예전 학원에서도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디렉터까지 맡겨서 최고 대우를 해줬으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런 일을 겪으며 인간에 대한 배신감, 서운함으로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지자,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무참히 깨지자, 비즈니스고 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만 들었어요. 큰 꿈을 가지고, 어렵게 지점까지 마련한 Test Prep의 위기는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한참을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춘 줄만 알았는데, 또 다른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   






소회

우연히 시작한 방과후학교가 승승장구를 하자, 나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뉴욕 제일의 교육센터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이 인정하는 결과물이 중요하단 생각만 했어요. 선생님을 구할 때도 좋은 학교에 넣을 수 있는 능력만 보느라 인성을 보지 못했음에 혹독한 자기비판을 했습니다. 


그 후, 스펙과 재능에 앞서 '인성이 진정한 실력'임을 깨닫고, 선생님들을 고용할 때도 인성을 먼저 보고, 학생들에게도 이점을 강조했습니다. 메니지하는 방법도 터득해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고난 끝에 만난 선물입니다.    



정원산 천일홍으로 만든 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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