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안목 있게 살아야 한다."
오래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늘 당부하시던 말씀입니다. 사실 젊었을 땐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살아가며 저의 귀중한 자산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체를 이끌어도 뭔가 품위 있고 달라! 같은 돈을 주고 사도 센스 있네! 집도 안목 있게 잘 지었네! 등 칭찬을 자주 들었는데요. 돌이켜 보니 방과후 학교를 하면서도 스며든 '안목'을 곳곳에서 발휘했단 생각이 듭니다.
보람과 갈등을 함께 느끼며....
학생이 꾸준히 늘고,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아 즐겁게 일을 하던 중, 어느 순간부터 감당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픽업해야 할 학교는 계속 늘어나 기사분도 더 구해야 하고, 선생님들도 추가로 필요했어요. 한 사람이라도 결근하면, 대타를 구하거나 직접 뛰어야 해서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좋은 학부모였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탁(시간 연장, 학교에 부모 대신 참석 등)도 별수 없이 해야 했어요.
미국학교가 긴 여름방학에 들어가면, 방과후학교에선 7주 동안 썸머스쿨을 합니다. 주 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요. 썸머를 잘 끝내야 일 년 내내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커리큘럼도 차별화했습니다. 오전엔 공부하고, 오후에는 음악, 미술, 트립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추가했는데요. 집에서도 해줄 수 없는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소문이 나서 6개월 전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반면, 60~70명이 되는 학생과 부모의 요구, 그리고 선생님들을 진두지휘해야 하니 점점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어요. 보람과 동시에 몸과 마음이 힘들어져 갈등도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서 엄마가 오셔도, 남편이 와도 편하게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어요. 바쁜 딸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안쓰러워하시던 엄마와 좋은 시간을 못 보낸 것이 아직까지 후회가 됩니다.
변화만이 살길이다.
7년 차가 되자,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몸이 견디질 못할 거 같았습니다.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어요. 그동안 방과후 학교를 하면서 만난 미국의 부모님들, 특히 이민 온 한인 부모님들은 교육에 아주 헌신적이었습니다. 자녀들이 미국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도록 초등학교부터 특수 중학교와 특목고를 보낼 준비를 하는데요. 뜨거운 교육열을 보면서 과감한 전환과 투자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뜨거운 입시시장에 뛰어든다고 비관적인 충고도 많았어요.
그러나 평소의 신념대로 저의 안목을 믿었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방과후학교는 최소화하고, 대신 OO Test Prep을 신설했습니다. 학생의 니즈에 맞춰서 매일 돌봄이 필요하면, 방과후학교에, 각종 테스트 준비를 하려면, Test Prep으로 이분화했어요.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셈이죠. 그리곤 뉴욕 제일의 수재들이 간다는 H 특수중학교 반과 특목고반에 집중했는데요. 사례비가 아무리 많아도 입시 경험이 많은 노련한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감사하게도 Test Prep은 학부모들이 신뢰하고, 좋은 입소문 덕에 순조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어렵기로 소문난 H 특수중학교에 입학하고, 특목고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자 다시 한번 비상합니다. 뉴욕 제일의 종합 교육센터를 꿈꾸며, 작은 건물도 매입했습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일까요? (다음 화에 계속)
소회
그동안 비즈니스를 하면서 자부심을 느낀 한 가지가 있는데요. 그건 저의 안목을 믿고, 과감하게 변화했단 점입니다. 처음 학생 없는 방과후학교를 시작했을 때도, Test Prep을 신설할 때도 늘 조마조마했습니다. 누구나 익숙함과 결별하는 것은 두렵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오랫동안 꾸준히 쌓아온 '안목의 힘'을 믿고, 결국은 입증했음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압화로 만든 소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