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원 꽃을 이용한 소품을 만들면서 제일 염두에 두는 것이 뻔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리스하면 누구나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스타일은 가급적 피한다. 될 수 있으면 남이 하지 않은 소재나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고, 나만의 스타일로 창조해 보고 싶어 여러 꽃으로 실험을 해 보는 중이다.
해마다 4월이면 동네 가든 센터를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그해에 심을 꽃과 나무를 고르는데 은근 스트레스를 받는다. 종류가 너무 다양하고 (예를 들어 양지, 음지 식물인지, 일년생 아님 다년생인지, 언제까지 꽃을 볼 수 있는지?) 사전에 알아야 할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알리섬은 둥글고 자그마한 꽃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가 너무 좋아서 몇 년 전부터 관심을 두고 해마다 정원 한쪽에 심었는데 여름을 힘들어해서 8월을 못 넘겼다.
그래서 올봄에도 살까 말까 계속 고민하다가 이번이 마지막이다! 란 각오로 모종 한판을 사 왔다. 알리섬은 지피식물(땅에 가깝게 자라서 땅을 덮는 식물)이어서 정원 가장자리에, 양지가 아닌 약간 그늘진 곳에 심었다. 그리고 정원에 심은 알리섬이 여름을 못 나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화분에도 여유분으로 심었다.
화분과 병에 심어준 알리섬
봄을 무사히 보내고 여름이 되자 역시 알리섬은 힘들어한다. 축축 처지고 꽃이 하염없이 작아지고 시들한 게 또 안 좋은 조짐이 보인다. 이번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꽃의 생사를 확인했다. 많은 정원지기 들이 식물과 이야기하고 안부를 묻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라고 해서 나도아침이면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식물들과 눈 맞춤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알리섬은 다시없이 짱짱하고 풍성해졌다. 향기도 진하게 나서 알리섬 앞길을 지나면 기분이 좋아져 미소 지으며 다시 보게 된다. 역시 식물도 관심을 받아야 잘 큰다는 식물 전문가들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가을이 되자 다시 싱싱해지고 풍성해진 알리섬
11월 말이 되니 날씨가 추워져서 알리섬 정리를 하려고 정원으로 나갔는데 옹기종기 사이좋게 피어있는 것을 보니 그냥 버리기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알리섬으로 만든 리스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하얀 꽃들이 마치 눈 같은 느낌이 들어서 크리스마스 리스로 만들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꽃이 작고 아기자기해서 최대한 장식은 하지 않고 심플하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고 좀 화려한 느낌을 주기 위해 하얀 반짝이 리본과 작년에 리스 만들다 쓰고 남은 작은 방울을 준비했다.
알리섬리스를 만들 재료
알리섬은 ‘뛰어난 아름다움'(네이버 꽃말 사전 참고)란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영어로는 sweet alyssum 이다. 이름처럼 꽃향기가 너무 좋아 리스를 만드는 내내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잘라 온 꽃을 조금씩 묶어주고 작은 구슬을 달아 흰색 반짝이 리본으로 돌려주어서 완성했는데 마치 눈꽃 송이를 모아놓은 리스 같다.
완성된 알리섬리스
다 완성된 리스는 몇 년 전에 미술 하시는 학부모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예쁜 양초를 넣어서 초 센터 피스로 사용하려고 한다. 하얀색 알리섬리스에 같은 색의 초가 들어가니 고급스러워서 일단 만족이다. 사실 초만 켜놓아도 예쁘지만 센터 피스를 만들어 주면 양초가 더 빛나 보이고, 분위기가 있어서 좋다.
양초 센터피스로 장식한 알리섬리스
정원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냥 아침저녁으로 물 잘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식물들도 사람처럼 감정이 있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주면 예쁘게 잘 자라고 오래 핀다. 여름이면 더위에 시들해져 가을을 함께 보낸 적이 없는 알리섬이 올해엔 이렇게 풍성하게 피워주고 예쁜 리스까지 만들 수 있게 해 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죽어가는 꽃에 생명을 넣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것을 보면, 만드는 과정은 힘들고 귀찮아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작업임을 느낀다. 내 인생 또한 부단히 갈고 닦았을때 좀 더 빛나는 삶으로 재탄생될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