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에 2주간의 짧은 한국 여행 중 40년 절친과 속초 여행을 갔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 풀고 처음 간 곳이 속초해변 소나무 숲이었다. 우린 향긋한 솔 향기를 맡으며 끝도 없이 나오는 추억담을 이야기하며 걸었다. 오래된 친구여서인지 그녀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내가 "You are my sunshine" 란 노래를 자주 불렀다는 이야기, 하얀 옷을 자주 입었다는 말도,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연히 갔던 점집에서 흥미진진했던 경험담도 술술 풀어나갔다.
숲길을 걷다가 힘들면 해변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숲을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소나무가 무성하지는 않았다. 솔방울도 많이 떨어져 있지는 않았는데 걸어가다 뜨문뜨문 보이는 솔방울이 있어서 그중 하나를 주워 왔다. 나는 여행지를 가거나 새로운 곳을 방문하면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자연물 하나라고 가지고 오는 습관이 있다. 시시하고 볼품없을 수도 있는데 막상 집에 가지고 와서 보고 있으면 그곳에서의 추억이 생각나서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속초해변의 소나무숲
암튼 이 작은 속초 솔방울 하나를 소중하게 짐 속에 넣어 태평양을 건너 뉴욕으로 가지고 와서 요즘 시간을 제일 많이 보내는 책상 옆의 두 번째 선반에 올려 두었다. 글을 쓰거나 인스타 피드를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쳐다보다 보니 솔방울 모양이 둥근 나무 같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 솔방울 하나만 하기엔 너무 외로워 보여서 지하 창고로 내려가 작년 크리스마스용품 모아놓은 곳을 보니 커다란 뉴욕 솔방울이 보인다. 일단 솔방울과 바닥을 고정할 나뭇조각, 연한 핑크 아크릴 페인트와 반짝이도 같이 준비했다.
재료준비
식물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며 바깥을 보니 우중충하고 따뜻해 곧 첫눈이 내릴 듯한 날씨이다. 나이가 들어도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은 소녀 때처럼 설렌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경험했을 만한 첫눈 오는 날의 추억도 꺼내어 보고 그때 들었던 음악도 다시 소환해 본다. 딸이 1년 전에 사준 음질 좋은 bose 블루투스 헤드폰을 통해서 나오는 귀에 익은 프렌시스 레이의 Snow Frolic (love story 주제곡)을 듣다 보니 어느새 나는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센트럴파크에서 눈 속에서 뒹굴고 사랑하던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작업하고 있던 솔방울에 눈을 뿌려줘야겠단 생각이 떠올랐다. 속초 솔방울과 뉴욕 솔방울에 작년에 트리 장식용으로 쓰던 인공눈을 뿌려주고 준비해 놓았던 핑크 톤의 장식을 했다.
완성된 속초 솔방울과 뉴욕 솔방울
일단 완성된 속초와 뉴욕 솔방울을 보니 너무 사랑스럽다. 여기에 속초와 뉴욕을 연결해 보면 뭔가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서 여러 형태로 연습했다. 테이블 위에 인공눈을 뿌려놓고 뒷배경으로 장식용 집도 놔보고 포인세티아도 설정해 보며 비교해 봤다. 인스타 피드에 좀 더 완성된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시도했다.
배경을 달리한 두 솔방울
그러고 보니 뉴욕에서 생활한 지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서 아이들 키우고 비즈니스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느라 지난날을 잠시 잊고 지냈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비즈니스를 하면서는 경영자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친구와의 속초 여행에서 나는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담아두었던 그립고 사랑스러웠던 과거의 추억과 다시 만나서 행복했다. 젊은 시절의 나를 보니 눈물 나도록 반가웠다. "그래, 너에게도 이런 빛나고 예쁜 순간들이 있었단다. 단지 그는 모르고 지나갔을 뿐이야. 어디서든 열심히 살아온 너를 축복해. 하지만 이젠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당당히 너의 이름으로 멋지게 살아가길 바래" 속초 솔방울의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의 말에 나는 한결 든든해진 마음으로 두 솔방울을 작은 불빛으로 연결해 주며 콜라보 작품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