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기상태를 좋아하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점점 잠이 오기 시작하고 나른해서 빨리 할 수 없을 때는 천천히 하기 마련이었다.
왜 내려놓고 쉬지 않느냐면 정 안 되겠으면 쉬지만 잠이 와서 몸이 느려지는 정도로는 느리게라도 설렁설렁하면 되니까 딴짓이나도 하면서 하는 게 있다.
그럴 때 예전 같으면 번아웃 전조증상이라고 무조건 쉬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그냥 그것도 마음을 푹 내려놓듯이 꺼트려버리고 정신과 같이 전원 스위치를 내려놓고 의식의 흐름과 몸의 기본반응을 따라가는 게 있는 거 같다. 그때는 되게 단순해지고 솔직해지지만 그만큼 쉽게 웃고 행복해지기도 한다.
별 거 아니어도 헤벌쭉 웃으며 재밌다며 낄낄거리고 정말 아무거나 해도 기분이 좋아지면 행복이라고 느끼고 마는 모양이었다. 가끔은 그런 그로기상태가 좋다. 전원이 많이 꺼진 느낌이지만 불분명하고 멍해진 기분이 생각을 덜 하게 했다. 체력이 바닥이라 길고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건 가끔은 축복이다. 인간에게 망각이 축복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지. 가끔은 저주와 축복이 같은 단어처럼 들릴 때도 있었는데 어떻게 쓰이느냐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많은 것이 판가름 나기에 될 수 있으면 굳이 앞면만 보이는 카드를 뒤집어서 바닥에 가려진 이면과 안 좋은 의미로 받아가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게 안 좋은 의미로 놓인 뒷면이라도 손으로 뒤집어서 좋게 받아들이는 편이 나았다. 나에게 주어진 축복이 누군가에겐 축복이 아닐 수 있어서 그렇기에 겸손하고 너무 여기저기 자랑하지 않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씁쓸하고 가슴 아픈 일이 되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붙었다는 건 누군가는 떨어졌다는 이야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