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솔 Oct 02. 2024

내 오랜 벗, 김범준.

#1


벗과 친구의 차이를 코파일럿*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 친구: 마음을 서로 나누는 사람입니다. 함께 즐기고, 웃고, 울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 벗: 뜻을 서로 나누는 사람입니다. 가치관이나 인생관, 학문 등의 견해를 공유하고 고민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즉, 친구는 감정적인 교류가 중심인 반면, 벗은 더 깊은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코파일럿: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코파일럿의 말이 맞다면, 벗은 친구보다 좀 더 깊이 있는 내면과 사상을 나누는 관계로 볼 수 있겠다.


누구나 친구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벗을 사귀긴 쉽지 않다. 친구가 벗이 되려면 '시간'이라는 재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젊음과 나이 듦의 과정을 함께하며 서로의 방향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과정, 싸우고 회복하는 일을 반복 또 반복하며 숙성해야 비로소 벗이라 부를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일이 어려워진다. 세월의 때가 묻어 서로 이런저런 경제적, 사회적 지표를 들이대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상처받기 싫거나 관계 유지에서 오는 피로함과 노고를 피하고 싶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친한 관계가 희소해지므로, 그만큼 벗이 소중하며 한 명쯤은 곁에 둬도 나쁘지 않다.


내겐 기꺼이 서로를 벗이자, 친구라 부를 존재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범준.



#2


범준이를 처음 만난 건 대학 새내기 때였다. 앞서 내가 쓴 <빈틈>에 등장하는 그 범준이가 맞다.

음악동아리 동기로 인연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영 못마땅했다. 정제된 말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툭툭 내뱉는 날카로운 어투가 적응하기 힘들었다, 왜 그런 사람 있잖은가. 속내는 안 그런데 괜히 툴툴대는. 무엇보다 노래 실력이 나와 비슷해서, 묘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이건 범준이도 마찬가지라고 고백했다 후후)


성향은 다르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이 비슷하다 보니 점점 친해지기 시작했다. 음악 공연을 할 때 듀엣곡곡을 부르기도 하고, 교내 창작 음악회에서 내가 만든 곡으로 입상하기도 했다.


스무 살, 기타 한대로 교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노래하던 그때.

멋모르게 사랑과 인생을 노래하던 그때.


우린 분명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지겹게 붙어 다니며 노래와 술에 미쳐 살던 우리의 인생행로가 갈리기 시작한 것은 1년쯤 지난 후였다.

범준이는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학업을 그만두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고

나는 재수를 선택해 원하던 대학에 갔다.


사실 그쯤 되면 보통은 인연이 끊어지는 게 일반적인데,

희한하게 우리를 엮어주는 운명의 끈이 있었는지 곧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이사 간 곳에서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에 범준이네 집이 있었던 것.

이사 다음날 사실을 알게 되어 뭐 이런 인연이 있나 서로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난 학생으로, 범준이는 직장인으로 살며 그가 쉬는 날마다 만나며 온갖 이야기를 펼쳐냈다.

각자의 애환부터 과거에 있었던 일들까지 끄집어 털어놓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다.

서로 가정사가 그리 좋진 않았기에 속내를 말할 친구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다투기도 많이 했다. 사소한 오해로 몇년씩 얼굴을 안 본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언제그랬냐는 듯 서로에게 손내밀었고, 그 손을 잡았다.


시간이 흘러 각자의 분야에서 점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가정도 꾸렸다.

범준이의 결혼식 때와 내 결혼식 모두, 둘이 같이 축가를 불렀다.

그리고, 같은 해에 똑같이 딸을 낳았다.


놀라운 사실 하나 더.

각자의 아내가 일란성 쌍둥인 데다 동생이다.

전생과 환생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쯤 되면 분명 남다른 인연이라 볼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다시 화살같이 지나 예전만큼 자주 보진 못해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잘되길 응원해주고 있다.

가끔 만나면 인생을 논하는 것 3 + 찌질의 역사를 꺼내며 놀리는 것 7로 대화를 채운다.

중년이 되었어도 둘이 만나면 스무 살, 그때 말투와 유치함 그대로다.


오랜만에 범준이를 만나고 돌아온 밤, 그와의 인연을 글로 정리해 본다.


이 글 보여주면 욕하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