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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솔 Oct 09. 2024

을(乙)의 연애

#1


보통 돈과 권력, 지위는 많이 가진 사람이 갑이 되어 떵떵거리는데
사랑은 정반대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쪽이 약자, 을(乙)이 되니 말이다.


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더 얻어 내려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때로는 눈물겹게 구걸하기도 한다. 생전 관심 없던 옷이나 향수에 눈이 가고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혼자 머릿속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쓴다.


SNS 답장 텀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덩달아 내 심장도 쿵쾅대고, 안읽씹 당하면 세상 오만 걱정을 짊어진다.


그뿐일까? 한 번이라도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면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헤헤거린다.


'그놈의 사랑이 뭐라고, 저 사람이 뭐라고 내가 끌려다니지? 안 되겠다, 정신 차려야지'라고 생각해도

이미 넘치는 사랑으로 점령된 뇌가 이성을 되찾기는 어려울 터.



#2


생각해 보면 나도 그동안 갑과 을의 연애를 반복해 왔다.

희한하게도 갑일 때는 상대방의 소중함을 70%도 느끼지 못해 늘 아쉬웠는데

을일 때는 실제 10%만 받아도 100% 이상의 기쁨이 쏟아졌다.

물론, 심적으로는 훨씬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말이다.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을의 연애는 항상 상처와 흉터만 남았다.


상대방이 나를 더 사랑한다고 느끼면 왜 행동과 말의 조심성이 풀어질까.

더 아껴주지 않고 비교하게 될까. 심지어 내가 더 아깝게 느껴질까.

난 아무것도 아닌데.


그래서 인간의 마음이 참, 간사하고도 복잡하다.



#3


나이를 먹을수록, '관계의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방적 관계는 언젠가 벽에 부딪혀 깨지거나 바스러진다.

사람의 감정과 관계에 완전한 균형점은 없겠지만, 과하게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누군가 상처를 받는다.


내가 을이 되든,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주든 둘 다 썩 달갑지 않은 흐름이기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도, 우정도, 동료애도, 친밀감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오늘도 을의 연애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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