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연(因緣)은 국어사전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정도로 간략히 정의하는 데 반해,
불교에서는 철학적으로 다룬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因)은 원인이고, 연(緣)은 조건을 뜻한다.
간단히 말해, 어떤 결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원인과 이를 돕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것. 씨앗을 인이라 하면, 씨앗만으로는 발아할 수 없다. 물과 햇빛, 영양분, 토양 등이 필요한데 이게 연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이 인과 연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본다. 원인과 조건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과가 발생하며 인과 연의 종류, 때, 상황에 따라 결과의 모양이 달라진다.
우리는 인연에 둘러싸여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삶은 인연과 인연이 얽혀 만든 실타래로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 형제, 자식, 친구부터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실수로 내 발을 밟아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한 중년 여성까지. 모두 인연의 작용이다. 나라는 존재가 인이라면 행동과 생각이 연을 만들어 특정한 사람들을 당기고 또 멀어지게 한다. 또,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인연에도 종류가 있다.
선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힌트를 제공하기도 하고, 힘들 때 큰 위로가 된다.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혹은 변곡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면, 악연으로 엮인 사람은 우리를 가라앉히려 하고 부정적인 길로 끌어당긴다. 악연에 반응하는 것도 내 업식에 따른 것이기에, 부지런히 수행하고 성찰하며 더 나은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선한 인연을 더 많이 만들고, 악연을 끊어내는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한다.
특히 연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 큰 인연의 힘이다. 그동안 각자 쌓은 이성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만남이라는 연을 만나 완성되기 때문이다. 연인이 서로에게 주는 영향은 내면을 색깔을 바꾸고, 때로 삶의 흐름을 꺾을 정도로 지대하다. 물론 사랑과 쾌락, 기쁨만을 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지독하게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며 화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감정의 큰 진폭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내면의 깊이를 키운다. 그렇기에 지금 내 옆에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수백 번의 전생에서 맺은 인연의 발로일지 모른다.
#2
그런 생각을 했어. 너와 난 대체 무슨 인연으로 여기까지 온 걸까.
만일 그때 내가 출장에 자원하지 않았더라면,
너와 우연히 동행해 많은 대화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우린 일적으로 만난 사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흩어질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겠지.
처음 만난 지 두 달쯤 지난 늦은 저녁.
갑자기 밀려든 네 생각에 주저하다 보낸 메시지에 힘든 너의 상황을 털어놓았을 때,
난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어.
왠지 그때, 그날, 연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거든.
하루 종일 심장이 아프고 불안한 기분이 너의 아픔에서 전이되었음을 알았으니,
우리 인연이 일시적이 아니라 느꼈어.
그렇게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었지.
너를 만나고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거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내면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아픔과 상처가 현재에 어떻게 발현되는지
차분히 관찰하며 하나하나 깨달아갔어.
대신 난 너를 웃게 하고, 즐겁게 하고, 사랑해 주었으니 서로에게 귀한 인연이라고 해도 좋을 법해.
앞으로도, 속도가 달라질지언정 방향은 같았으면 좋겠어.
오랫동안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인연으로 말야.
고마워. 내 소중한 인연이 되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