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혼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 0.5%에 99.5%는 나쁜 기억 뿐이다.
매일 같이 술을 드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들어오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타박하는 어머니.
매일 밤 집은 전쟁터였다. 전장에서 제대로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을리가.
한없이 유약한 존재는 그들이 전적으로 의지하는 부모의 싸움과 서로를 향한 날선 공방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싸우지 말라고 말려도 보고, 애원도 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좋았던 시간도 보냈겠지만 부모님의 다툼 앞에 늘 잠식당하기 일쑤였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 시절의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결국 부모님은 내가 5살 때 이혼하셨고, 클 때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오가며 전학과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분들이라 돈벌이도 녹록치않아 늘 가난에 허덕여야했다.
준비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선생님들에게 맞기도 하고,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은 옷이 허름하다며 대놓고 아이들의 놀림감으로 나를 던져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교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실격인 사람이었다. 그래도 부모님께 말할 수 없었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과 불화는 이처럼 아이들을 눈치보게 하고, 주눅들게 하고, 결핍되게 한다.
그래도 공부에는 소질이 있어서 인지, 나쁘지 않은 성적을 유지했다.
고등학교 때는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전교 상위권에 들수 있었다.
사실 여러 과목의 사교육을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집안 사정을 알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넌 반드시 성공해서 엄마 한을 풀어줘야해."
어머니가 늘 내게 주문처럼 하던 말이다.
어머니의 내면은 남편과 시댁 식구들, 세상에 대한 한과 원망으로 가득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자신의 삶이 힘들었기에 어떻게든 원망의 대상을 삼으려는,
일종의 방어기재임을 안다.
그렇다고 해도 어린 자식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악감정을 심어주는 행동은 분명 옳지 못하다.
어릴 때는 친가쪽 사람들이 정말 어머니를 핍밥하고 괄시했다고 믿었고,
이혼의 책임이 온전히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 후에야 어머니의 말 중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음을 깨달았으며
어머니도 분명 문제가 많은 사람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습관을 들인 후였다.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어머니의 자기 본위적인 생각과 사고가 발목을 잡아,
결국 자신에 이어 나까지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