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는 심술공주예요

by 오드리

수지는 오드리와 만난 다음날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전날은 린다와 함께 셋이서 예행연습을 하고 그다음 날은 학교에서 수지를 만나 둘이서 학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수지는 오드리한테 가방을 건네준 뒤 목줄에 매달린 폰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걷기 시작했다. 수지는 폰도 있고 통화, 문자, 사진, 영상 등 몇 가지 기능을 다룰 줄도 알았는데, 연락할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수지는 엄마랑 통화한 후에도 딱히 용건은 없으면서 쉴 새 없이 폰 화면을 터치했다.


오드리는 수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눈치를 줬지만 수지는 마냥 거북이걸음이었다. 그날은 미술 학원에 가는 날이었는데 교문에서 불과 삼분 거리임에도 하염없이 시간이 늘어지고 있었다. 암튼 보다 못한 오드리가 "수지야, 걸으면서 폰 하면 위험해. 하지 말자."라고, 단지 그 말을 했을 뿐이다. 활보로서 의무감으로 한 마디 던졌을 뿐이란 말이다. 단언컨대 후폭풍이 그리 클 줄 알았다면 오드리는 입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두 주먹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드리의 간 큰 지적질은 수지의 귀에 날아가 꽂혀버린 뒤였다.


수지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순간만 해도 오드리는 자신의 말이 먹히는 줄 알았다. 수지는 일그러진 얼굴로 오드리를 째려보았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했다. 차도 다니고 사람도 다니는 길 한가운데서 말이다. "여기는 차가 오니까 일단 저쪽으로 가자"고 오드리가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다급해진 오드리는 수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때까지 마네킹처럼 굳어있던 수지는 경기하듯 오드리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곤 양손을 마구 펄럭이면서 싫어, 싫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점차 어린아이의 울부짖음으로 변해갔다.


행인들은 별 관심 없이 지나갔지만 오드리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신이 무슨 아동학대범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만큼 수지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분노와 거부의 열기는 강력했다. 첫날은 엄마 린다와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무사히 지나갔을 뿐, 수지의 심술은 일상 다반사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오드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린다한테 전화하는 것 말고는 바늘구멍만큼의 대안도 없었다.


오드리의 급박한 목소리와 달리 린다의 반응은 맥이 풀릴 만큼 차분했다.

"차만 좀 피하게 해 주시고 그냥 두세요. 알아서 진정될 거예요."

린다는 별일 아닌 듯 말했다. 길 가면서 폰을 해도 그냥 두라고 했다. 린다 말대로 일정한 시간이 흐르자 수지의 울음은 잦아들었고, 좀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미술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뒤로 오드리는 수지에게 말을 걸 때 긴장하지 않을 재주가 없었다. 수지가 어떤 대목에서 터질지를 모르니 말을 안 하는 게 상책이랄까. 꼭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는 미리 침부터 삼켰다. 그러자니 수지 눈치만 보는 쫄보가 따로 없었다. 더구나 조심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폭탄 심지가 어디서 불이 붙을지는 수지 본인도 모를 터였다. 오드리의 긴장감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작은 여자아이 하나 상대하면서 이중 삼중으로 갑옷을 두른 꼴이라니.


수지가 심술을 부릴 때는, 일단 표정이 굳어지고 웅얼거리듯 싫어, 싫어, 하다가 점점 옥타브가 올라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바뀐다. 수지 입에서 싫어,라는 말이 첫 테이프를 끊는 순간, 뒷일은 누가 와도 수습이 안 된다. 실제 린다가 있는 자리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녀 역시 딸을 어쩌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오드리는 바로 사과도 해보고, 단호하게 야단도 쳐보고, 좋은 말로 달래도 봤지만 그럴수록 수지의 심술 폭탄은 기세를 더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수지 입에서 ㅅ자만 흘러나와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수지의 심술 폭탄에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첫 번째는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다. 폰을 하지 말라거나 넘어지니까 뛰지 말라는 등 행동을 제한할 때 수지는 폭발한다. 두 번째는 오드리가 도와주거나 친절을 베풀려고 할 때이다. 화장실 급하지 않냐고 묻거나 문자 할 때 맞춤법 고쳐 주려다 당하기도 했다. 세 번째는 자기 몸에 남의 손이 닿을 때이다. 미용실에 가려면 한 달 전부터 예고해야 한다. 그렇게 세뇌를 시켜도 머리 자르는 당일의 한바탕 난리를 피할 수는 없다. 한 번은 오드리가 혼자 미용실에 데리고 갔다가 결국 편의점에서 일하던 린다를 불러야만 했다.

처음에 호되게 당한 뒤로 오드리는 절대 수지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래도 수지의 옷차림을 바로잡아 주거나 하려면 다가갈 수밖에 없는데 수지는 오드리가 손만 내밀어도 자지러졌다. 말도 행동도 허용이 안 되니 수지를 보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로 수지 뒤만 따라다녀야 하는 풍선 인형이 된 것 같았다.


수지가 토라지고 심술을 부리는 것은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한다.

말만 잘 통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수지와는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우선 수지의 말을 알아듣기가 어렵다. 발음이 불분명한 데다 말도 엄청 급하게 해서 절반은 놓치고 만다. 오드리가 못 알아듣고 "응? 뭐라고?" 하는 순간 수지의 표정은 굳어진다. "미안, 다시 한번 말해 줄래?" 하면 "싫어 싫어!" 하면서 폭발 시동을 건다. 몇 번 그렇게 당한 뒤로 오드리는 일단 무조건 알아들은 척한다. 얘기를 끌어가다 보면 앞에 한 말이 짐작될 때도 있고, 끝내 엉뚱한 말을 해서 수지가 화를 내기도 하지만 즉시 되물었을 때의 폭발만은 피할 수 있다.


단순히 자기 말을 한 번에 못 알아들어서 화가 난 건지, 자기가 말하는 게 남들과 다르다는 걸 들켜서 화가 난 건지, 그건 모르겠다. 오드리는 몇 가지 대화 원칙을 세웠다. 일단 길게 말하지 않는다. 쉽고 간단한 단어만 쓰고 한 문장이 세 마디를 넘지 않는다. 수지를 가르치려고 설득이나 논리를 끌어오지 않는다. 추상적인 말은 피하고 구체적인 말만 한다. 감정을 무시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부정적인 말은 거른다. 내가 어른인데 하는 생각은 애초에 버린다. 작은 거라도 찾아서 칭찬의 말만 한다. 그렇게 한다고 폭발을 안 한 건 아니지만 횟수와 강도는 줄어드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길거리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만은 피할 수 있었다.


오드리는 점차 린다가 말한 대로 '그냥 두는' 방법도 터득했다. 일단 수지가 폭발하면 무반응으로 대응한다. 쩔쩔매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서 조용히 기다려준다. 시선 처리도 중요하다. 수지를 압박하지는 않되 관심을 거두지는 않았다는 느낌의 눈빛을 보여야 한다. 그러자면 오드리가 먼저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닥치는 사안들을 헤쳐나갔다.


횟수와 강도가 줄었지만 그게 수지와 친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전날 오드리와 아무리 재밌게 놀았어도 수지는 다음날이면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 점이 돌발적인 심술 폭발에 이어 두 번째로 당황한 수지의 특징이었다. 수지는 경계와 친밀 사이 어딘가의 방어벽에 기대어 오드리를 대하고 있었다. 이제 좀 친해졌으니 내일은 날 보고 웃지 않을까, 인사를 잘하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다가 여러 번 실망한 후로 오드리는 매일 아침 자신의 마음을 초기화했다.


수지의 감정상태는 크게 보아 세 가지 패턴이 있다.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그저 그렇거나. 오드리가 대처하기 애매한 때는 기분이 나쁠 때가 아니라 의외로 수지의 기분이 그저 그럴 때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 마음 나도 몰라' 상태랄까. 수지는 어쩌다 한 번씩 일상적인 표정과 행동에서 벗어날 때가 있다. 폰에서 눈을 떼고 멀뚱하니 허공을 응시하거나,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거나 할 때 오드리는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 지금 수지의 감정에 뭔가가 덮쳤구나, 싶어서다.


하굣길에 그런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다른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웃고 떠들며 가는데 수지 옆에는 나이 든 활보아줌마가 있을 뿐이다. 수지는 엄마한테 통화부터 누른다. 그런데 엄마 말고 더는 연락할 데가 없다. 문자를 확인하지만 아무것도 와 있지 않다. 카톡을 보내고 싶어도 엄마 아니면 보낼 데가 없다. 다른 아이들처럼 바쁜 척 폰을 만지지만 실은 아무 용건도 없는 것이다. 오드리는 뒤에 떨어져 걸으며 조용히 눈치를 볼 뿐 개입할 수 없다. 현재 수지가 허락한 자신의 지위는 하교 도우미에 불과해서 수지의 친구도 될 수 없고 엄마는 더더욱 대신할 수 없다.


수지는 교문을 나서기 전에 괜히 한번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눈을 맞춰주지 않는데도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지나가면 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린다. 누가 나를 불러주지 않나, 누구 나랑 놀아줄 친구가 없나, 그런 심정으로 서성이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수지는 당황하는 듯한 표정이 된다. 오드리는 수지의 행동을 주시하면서도 딴청을 한다. 수지가 그 순간 자신의 마음상태를 정확히 인지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쩐지 그 기분의 정체가 뭔지 모른 채 당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드리도 더 열심히 모른 척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수지는 마음을 정리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면 오드리도 따라간다. 잠시 스쳤던 혼란에 대해서는 둘 다 티 내지 않는다. 오드리는 수지가 화를 내고 심술을 부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그것은 감정이 살아있다는 뜻이고 맘껏 표출한다는 의미니까. 암만 견줘봐도 우울한 공주보다는 씩씩한 심술공주가 안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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