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가 중3이었을 때, 반에 도티라는 아이가 있었다.
도티는 키로 보나 덩치로 보나 반에서 단연 1등이었다. 그래서 키 순서로 두 번째인 오드리와 짝이 되었다. 오드리도 한 덩치 했으나 압도적인 도티의 체구에는 미치지 못했다. 도티는 누가 말을 걸면 헤벌쭉 웃기만 했다. 입이 웃으면 눈매도 따라 처져서 웃는 하회탈 같았다. 자기가 할 일은 오직 그것뿐이라는 듯 도티는 하루 종일 책상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멍하니 웃으며 칠판만 바라보았다. 매 시간마다 교과서와 공책을 펼쳐놓고 필기는 안 하면서 볼펜은 꼭 쥐고 있었다. 간혹 교과서를 안 가져온 아이가 "넌 필요 없지?" 하며 도티의 책을 일방적으로 빌려가기도 했다. 도티에 대해서는 태어날 때부터 모자랐다는 둥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고도비만이 되었다는 둥 말들이 많았지만 진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당시 담임은 출산을 앞둔 시기여서 짝꿍인 오드리한테 도티를 일임했다.
오드리가 할 일은 도티랑 화장실 같이 가주기, 점심시간에 밥 같이 먹어주기, 이동수업 때 동행해 주기, 종례 후 도티의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함께 있어 주기 등이었다. 힘들 건 없었다. 도티는 말은 어눌했지만 말귀는 잘 알아들었고 오드리 말에도 고분고분했다. 다만 도티는 웃어도 너무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시도 때도 없는 도티의 웃음은 딱할 정도였다. 오드리는 보다 못해 도티한테 그만 좀 웃으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면 도티는 삼 초 정도 입을 다물었다가 금방 다시 히죽거렸다. 이유 없이 왜 웃냐고 욕을 하는 아이도 있었고 재수 없다고 수군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오드리는 도티한테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막아 주지는 않았다. 담임이 시킨 일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히 선의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오드리도 도티의 점심 도시락 앞에서만은 기가 죽었다.
도티가 도시락통 뚜껑을 열면 부잣집 딸이라는 소문에 걸맞게 색색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광채를 드러냈다. 도티는 그 맛있는 반찬을 한번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혼자서 쩝쩝거리며 먹었다. 오드리는 속으로 침을 삼키면서도 꾸역꾸역 자기 반찬만 먹었다. 오드리의 반찬은 한결같이 신김치였다. 그러다 한 번은 도티가 계란말이를 싸왔는데 그 노랗고 통통한 계란말이 앞에서 그동안 필사적으로 지켰던 오드리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오드리는 "나 이거 하나 먹어도 돼?" 하며 계란말이에 포크를 디밀었다. 사실 지금껏 자기가 참았을 뿐이지 언제든 말만 하면 도티가 먹으라고 할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런데 웬걸 도티는 "아니!" 하며 오드리의 포크를 손으로 내쳤다. 도티가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오드리로선 충격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저한테 해준 게 얼만데!'
빈정상한 오드리는 그다음부터 다른 자리로 옮겨 밥을 먹었다. 도티는 평소처럼 자기 도시락을 꺼내 천천히 밥을 먹었다. 혼자 밥 먹는 도티가 안 돼 보였지만 되돌리기엔 오드리의 기분이 너무 뒤틀려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미안한 마음조차 사라졌고 "쟤는 학교에 밥 먹으러 오나 봐!" 하며 도티 흉을 보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도티의 밥 친구가 새로 생겼다. 반장이었다. 반장은 그 사태를 한동안 지켜보다가 어느 날부터 도티 옆으로 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담임은 오드리를 나무라지 않았다. 반장도 점심만 도티와 같이 먹을 뿐 그 외의 일은 오드리한테 맡겼다. 오드리는 늘 하던 대로 도티와 화장실을 가고 음악실이나 미술실도 동행했다. 그러나 도티한테 마음을 열지는 않았다. 도티는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매일 종례가 끝날 때쯤이면 도티의 엄마가 교실 창문에 나타났다.
도티의 엄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딸의 등하교를 책임졌다. 엄마가 아프면 할머니나 이모가 오기도 했다. 그 덕분에 도티는 졸업식 때 개근상까지 받았다. 오드리는 화목한 가족들한테 사랑을 원 없이 받고 있는 도티가 부러웠다. 도티 엄마가 자기 엄마였으면 싶었다. 도티 엄마는 반 전체에 간식도 자주 쏘았지만 오드리한테는 수시로 과자나 학용품 같은 걸 쥐어주었다. 오드리는 도티 엄마한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도티야 잘 가, 내일 봐" 하고 친한 척을 했다. 도티 엄마는 활짝 웃으며 고마워했고 도티도 엄마 손을 잡고 헤헤 웃었다.
어느새 3학년 1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담임은 출산 때문에 휴직하고 새 담임이 왔다. 새 담임은 반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듯 자리 바꿈을 단행했다. 아침마다 선착순으로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문제는 도티였다. 새 담임은 도티한테 물었다. "도티야, 반장이랑 앉을래, 지금 그대로 있을래?" 하고. 순식간에 그동안 오드리가 해온 행동이 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돼 버렸다. 새 담임은 오드리가 2학기에도 도티를 맡으면 책임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에 반장을 추천하였던 것이다. 오드리의 내면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계란말이야 그렇다 치고 도티는 당연히 자신을 선택해야 했다. 반장이 뒤늦게 밥 친구가 돼 주긴 했지만 오드리가 여태 베푼 호의와 도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담당자로부터 수지 얘기를 들었을 때 오드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도티를 떠올렸다.
도티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근거로 수지와 도티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두 사람은 스타일이 완전 달랐다. 도티는 종일 웃었지만 수지는 웃지 않았다. 오드리가 잘해주면 도티도 호응해 주었는데, 수지는 심술이 폭발할 때 외에는 무반응, 무관심, 무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수지의 냉랭한 태도는 하루를 보든 일 년을 보든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오드리는 자신이 있었다. 자기만 잘하면 수지와 잘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도티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기에 오드리의 영향력이나 존재감이 컸지만, 수지는 할 게 너무 많아서 오드리는 수지의 관심 서열 100위권 저 너머로 밀려났다.
통합교육 덕분에 수지는 일반 교실과 특수 교실을 오가며 다양한 수업을 받는다. 도티 때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수지는 방과 후에도 미술, 체육, 피아노, 수영, 공부방 등 요일마다 골고루 학원을 다닌다. 나라에서 지원이 되는 경우도 있고 사비로 낼 때도 있다. 린다는 편의점에서 일해 버는 돈을 대부분 수지의 교육에 투자한다. 교육만이 수지의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믿는다. 수지는 출산 때 저산소증으로 장애를 입었다. 린다는 딸의 장애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남편의 배신부터 감당해야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수지의 가정환경이 도티보다 못한 것 같지만, 엄마의 집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수지도 밀리지 않는다. 중학생 오드리가 따뜻한 도티 엄마를 동경했던 것처럼 50대에 접어든 오드리는 이제 린다의 강인한 모성에 압도된다. 그런 엄마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수지가 세상 무서울 게 없다는 듯 도도하게 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면접 때 오드리가 수지 같은 학생은 처음이라고 몸을 사리자, 린다도 담당자도 힘들 거 하나도 없다고, 그냥 수지의 스케줄 따라 동행만 해 주면 된다고 했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건 실제 현장을 뛰어본 사람만 안다. 말을 못 하는 와상 환자도 같이 지내다 보면 둘만의 교감이라는 게 생긴다. 그 정서적 유대를 바탕으로 시간을 채워나가는 게 활보의 일이다. 그건 보호자인 린다도 모르고 일을 연결해 준 센터 담당자도 모른다. 오직 당사자들만 아는 감정이다. 이제 오드리는 수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진심으로 수지한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티한테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일단 너무 어렸고 뭘 몰랐다. 도티의 세계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선을 그어버렸다. 그러면서도 담임과 반 아이들, 도티 엄마 앞에선 친한 척, 착한 척 연기를 했다. 그런 이중적인 자신을 도티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고려하지않았다. 도티의 감정은 가뿐하게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오드리의 생각이 맞다는 듯 도티는 그저 히죽히죽 웃기만 했으니까.
그런 도티도 자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바로 짝꿍 사건이었다.
도티는 짝을 고르라는 새 담임의 말에 입을 헤 벌린 채 가방을 챙겨 반장 옆자리로 갔다. 도티의 자리 선택 이후 나머지 자리 바꿈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오드리와 새로 짝이 된 아이가 도티 쪽을 가리키며 "이제 쟤랑 떨어져서 속이 시원하겠네"하고 속삭여줬다. 오드리는 말없이 웃었지만 가슴속은 대포알이 지나간 것처럼 휑하게 뚫린 뒤였다. 도티가 자기를 거부하다니, 그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도티가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충격을 받았다. 반장이랑 짝이 된 뒤에도 도티는 오드리를 보면 헤벌쭉 웃었다. 그 점이 또 오드리를 약올렸다. 배신감에 도티 쪽은 눈길도 안 준 자신의 행동은 하수 같고 도티한테선 고수의 품격이 느껴졌다.
수지한테 자신의 진심을 다하면 알아줄 거라 믿은 것은 오만이었다.
그 진심조차 수지와 잘 지내야 일이 편하다는 계산에서 우러난 마음일 뿐이면서 말이다. 그래놓고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수지한테 서운한 마음을 가졌다. 왜 수지가 당연히 자기를 좋아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자기가 웃으면 수지도 당연히 웃음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무슨 큰 선심이라도 쓴 양 수지가 자기한테 심술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어째서 두 사람 사이의 주도권이 오드리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했을까.
수지도 자신의 감정이 있고 그걸 마음대로 표현할 자유가 있는 한 인격체인데 말이다.
오드리는 활보를 하면서 탈탈 털어냈다고 생각했던 자의식이 여전히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수지의 심술과 무표정과 무관심이 서운하고 이해가 안 되고 바로잡아야 할 무엇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수지는 자기 의사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다. 활보가 좋으면 다가올 것이고 싫으면 틱틱거릴 수 있다. 한 팀이 되었으니 사이좋게 지내야 된다는 건 오드리의 이상일 뿐이다. 수지가 이용인이니까 오드리가 되도록이면 맞춰주고 더는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냥 하루하루 아무 탈없이 잘 넘어가면 된다. 그게 기본값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드리는 수지와 친해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