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기억에서 살아남기
_ 에게
일러준 노래는 잘 들었어.
충격적이게도 지난 월요일에 개강을 했어. 첫 수업이 이렇게나 이르다니... 만나는 사람마다 살림 차리기에도 바쁜데 학교까지 가려니 버겁다고들 하더라. 네덜란드 대학은 희한하게 한 학기를 2달-2달-1달 총 3개의 기간으로 나눠놨어. 앞으로 두 달간은 월요일과 금요일에만 수업을 듣는다는 아주 즐거운 자랑을 해야겠다.
금요일 수업은 전시와 수집의 역사에 관한 것이야. 매주 네덜란드 각지의 미술관과 박물관, 혹은 수집품 컬렉션을 다니는 식으로 꾸려진대. 꽤나 재밌겠지. 첫 수업부터 한 아름 읽을거리를 안겨주신 교수님 덕에 목요일엔 종일 읽기만 했어. 노트북엔 영어사전을 켜두었고, 시선은 지문과 화면을 오가기를 반복했어. 박물관과 그 안에 담긴 지식의 변동성 혹은 현재성에 관한 이야기여서 흥미롭게 읽었지만서도, 머리가 지끈 아파지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사실 이렇게 읽는 것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었어. 첫 수업이 있는 날, 미래의 박물관 관람자에게 내보이고 싶은 자신의 사물 하나를 가져올 것! 그리고 찾아온 금요일. 강의실 책상과 의자는 둥글게 둘러앉는 식으로 놓여 있었고, 교수님은 각자 가져온 사물을 가운데 책상에 올려놓고 모이자고 하셨지. 한 명씩 사물을 소개하며 그것에 얽힌 역사나 의미를 풀이했어. 나는 백석의 <사슴> 축소 본을 들고 갔고, 내가 왜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말했으며, 나에게 이 시집이 어떤 위안을 주는지 설명하려 애썼다. 너라면 어떤 사물을 가져갔으려나.
그리고 생각했어. 기억과 기록에 관하여. 시간이 흘러 31세기에 나의 이 조그마한 시집이 암스테르담 운하 어디선가에서 발견된다면 어떤 증거로 읽힐까? 대한민국과 네덜란드 두 나라가 있었고 그 둘은 문학을 서로의 언어로 읽을 만큼 가까웠다고 오독하면 어쩌지. 혹은 현존하던 모든 알파벳이 순식간에 증발하는 바람에 고고학자가 어느 국가의 문자인지를 알아내려 애쓸지도 몰라. 안쓰러운 마음에 미래의 학자에게 조금의 힌트가 될 일기를 끄적여 봤어.
이런저런 주석을 달았어. 내겐 성경이나 다름없는 시집,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튤립, 아주 꽉 들어 찬 캐리어에 굳이 끼워 넣었던 구제 데님 셔츠와 재킷, 아주 귀한 햇빛이 담긴 강물, 흐리고 앙상한 나무... 디지털이지만 마치 패치워크처럼, 혹은 잡지 속 글자를 잘라 붙이는 콜라주 작업처럼 조각조각을 기워 봤어.
편지를 쓰다가 졸려서 자 버렸어. 하루가 꼬박 지나고 다시 의자에 앉아 문장을 잇는다. 문장 사이에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는 것을 알릴게.
어제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더라. 그래, 기억과 기록. 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나는 너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너와 나는 편지로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까.
한동안 삶에 속기사를 하나 고용하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있어. 과거와 기억은 분명 다른 것이어서, 기억은 우리의 무의식과 의식의 어떤 작용에 의해 선택돼 남은 과거의 잔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며 기억이며 하는 그런 과거의 산물은 늘 파편적일 수밖에 없잖아. 나는 그 파편이 두려운 게 아니라, 파편마저 되지 못하고 증발해 버린 (언어화조차 하지 못하겠는) 무언가가 두려웠어. 모든 순간을 내 옆에서 또박또박 타자로 기입해 줄... 그런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어.
편지가 좋은 돌파구가 될지 몰라. 데카르트 명제처럼 아주 간단하고 선명한 명제가 편지에 담겨 있거든. 내가 너에게 쓴다. 편지를 쓰는 동안에 나는 너를 각인하듯이 글자를 새겨. 너로부터 주렁주렁 매달린 단어의 열매를 몇 개 따다가 이런저런 문장으로 그것을 엮어내지. 무엇을 쓰는지는 늘 빈 괄호의 상태야. 아주 사소한 해프닝, 나르시시즘이라 할 만큼 오직 자신에 관한 말, 하다못해 실없는 거짓말이나 행운의 편지까지도 내가 너에게 쓴다는 명제 아래에서는 늘 유효한 셈이지.
어쨌든 그러니까 우리는 편지를 썼기 때문에 서로의 기억에서 살아남을 거야.
그나저나 명절은 잘 지냈니?
다분히 아시아적인 음력 새해를 보냈어. 우리 플랫에는 나를 포함해 아시아인이 넷 있어. 중국에서 온 K는 방문 앞에 빨간 새해 부적을 붙여뒀고, 베트남과 태국에서 온 C와 E는 각자의 전통 음식을 해 먹었어.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는 핀란드에서 온 M에겐 새해 복을 강요했고, 캐나다에서 온 E에겐 떡국과 한 살 먹기 사이의 상관성을 설명했고, 보스니아에서 온 J에겐 떡국 한 숟갈을 떠먹였어. E는 떡국이 맵지 않아서 좋다는 황당한 칭찬을 했고 J는 덕분에 한 살 지혜로워졌다고 농담을 했어. 퀘벡에 있는 J는 새해 복 많이 받으란 문자를 꼬박 한글로써 보냈다. 글로 쓰는데 마음이 복작복작하다. 어설프지만 웃긴 명절이었다.
그리고 명절 음식이 그립기도 했지만, 부쩍 잘 먹는 중이라 슬프지는 않았어. 살면서 가장 자주 요리를 하는 요즘이거든.
물론 어디서 사 온 음식도 좀 있지만 만든 것들도 모양새가 제법 나쁘지 않지. 맛도 썩 괜찮다. 한국에 돌아가면 근사한 아마추어 요리사가 되어 있을지 몰라.
혼자 요리를 하며 깨달은 것은 한식에 꽤나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는 점. 유럽에도 어느 전통 음식은 하루 이상 숙성하고 재워가며 공들여 만들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가족과 늘 먹는 음식은 마당에 놓인 백 년 묵은 간장독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툭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잖아. 누군가 항아리에 분명 그 간장을 재운 것일 텐데 그걸 까먹고 모두가 백 년 간 야금야금 먹지. 독을 다 비우고 나면 그때야 그 백 년의 수고와 정성이 그리워지겠지!
한식이 얼마나 레시피도 변칙적이고 재료도 조금씩 많이 필요한지 몰라. 자르고 굽다가 찌다가 삶고 끓이고. 어슷 썬 대파와 다진 마늘에 소금, 설탕, 고추장, 진간장, 멸치액젓 한 스푼씩. 뭔가 만들까 하다가도 대충 굽고 얹고 하면 끝나는 음식을 자꾸만 만들게 돼. 맛도 나쁘지 않아. 차차 어려운 요리도 해보려고는 해. 따라 하기 쉬운 레시피가 있다면 일러줘.
이제 여행 채비를 하고 있어. 외곽 도시에 나가서 친구를 보기로 했고, 돌아오고 싶던 도시에 방문하기로 했고, 꿈같은 풍경을 보러 떠나기로 했어. 무얼 하고 무얼 입고 무얼 먹을지 감도 안 잡힌다.
그리고 여기, 암스테르담에서 딱 이주를 체류한 나는 이제 내일 무엇을 하고 입고 먹을지 대충은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 갈 곳이 도처에 널렸으니 베이스캠프를 막 설치한 탐험가의 심정이랄까. 혹은 도굴꾼일지도 몰라. 이번 주 내내 빈티지 가게가 보이면 고민 없이 들어가 가방이고 옷이고 죄다 헤집어 가며 구경했거든. 먼지를 덮어써서 그런가 목이 쾌쾌하다. 다음엔 뭘 샀는지도 보여줄게.
일상의 궤도에 슬슬 올라서서 이번엔 그런 시시콜콜한 순간들을 말해봤어. 또 여행으로 발길을 올린다면은 이리저리 정신없는 사건이 쏟아질까? 편지를 마치려 할 때면 잡담이 자꾸 새어 나오려 그래. 줄여야겠다. 달콤한 밸런타인 데이를 보내길!
2024년 2월 12일
암스테르담에서
새해의 염원을 담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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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1 - 2024 Feb 12th
발행인 김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