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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편지: 자전거

암스테르담에서 걸음마 떼기

by 가을

_ 에게


좋은 저녁(-새벽?-아침?-점심?).

아직 나는 월요일에 머물러 있어.


자전거를 마련했다!

이제 네덜란드에서 걸음마를 뗐다는 의미기도 하지.

이것에 관하여 해줄 얘기가 이것저것 많아.


왜 암스테르담을 선택했는지 말한 적 있나? 없을 거야. 왜냐면 너에게 말한 모든 이유는 거짓이거든. 나는 우연처럼 이곳을 선택했고 도착해서 이유를 만드는 중에 있다. 아무튼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자전거를 말해보자.

일 년간 암스테르담에 머무르는 게 확정되고 이것저것 찾아보다 하나 깨달은 것은… 자전거를 타야만 한다는 사실이었어. 네덜란드 사람들은… 정말 자전거와 함께 나고 자라서 오토바이처럼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양손에 짐을 이느라 핸들을 잡지 않기도 하고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신경 않고 안장에 올라타더라.



우리 모두가 통과 의례처럼 자전거를 배우는 시절 이후로 그 바퀴 두 개짜리 교통수단과 연이 없던 나는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어. 물론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그러는 사람도 있지만, 걸으면 삼십 분 하지만 자전거로는 십 분이라는 그 매력적인 조건을 무시하기는 어렵거든. (게다가 비싼 대중교통만 내내 탄다면 재정난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기도 했어)

그리하여 나는 지난 학기에 자전거 교양 수업을 수강하기로 했어. 어릴 때의 감각을 되살리고, 운동신경을 다시 갖추고, 타다가 넘어지거나 사고를 내지만은 않을 정도의 실력을 탑재하는 것. 이 목표였지. 늘 그렇듯 상상과 현실은 아주 달랐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사람부터 개인 로드 바이크가 있다는 사람, 손을 놓고 타는 사람… 심지어 믿었던 나의 친구 H는 다년간 지각을 피해 자전거를 탔던 숨은 실력자였어. 끝으로 수업의 마지막 과제는 서울서부터 인천을 가로지르는 90km 자전거 로드트립이었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거기서 자전거에 익숙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나였고, 첫 수업 날 넘어진 단 하나도 나였으며, 주행을 마치고 캠퍼스로 돌아오는 마지막도 나였어.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혼자 공원에 나가 몇 번이고 뱅뱅 돌며 연습까지 했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20km를 주행하고, 평균 심장 박동수는 160 bpm을 웃돌고, 3시간 낮잠을 잔 날. 나는 수업을 그만두기로 했어. 아주 실패한 기분이었고 울적했다. 같이 듣자고 꼬드겼던 H에게도 미안하기도 했고. 한 학기 내내 원래 자전거를 탔어야 할 월요일마다 개운하지 않고 목 어딘가 살짝 삔 듯한 그 불편감이 들었어.


네덜란드에 오기 전부터 자전거에 대한 불평과 걱정을 늘어놓던 나는 여기서도 어김없이 불평했고 걱정했어. 그리고 자전거를 샀는지 대여했는지 언제부터 탈 건지 매사 묻고 빨리 좀 하라고 보채던 플랫메이트 E는 함께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공부하다 안되겠다며 자전거 대여 사이트에 접속해 당장 예약을 잡으라고 했어.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해 보라고. 그리고 대여 약속을 잡은 금요일, 나는 약속을 취소하고 뜬금없는 중고 거래의 여정을 나서게 된다….

첫째, 장장 일 년을 탈 것이므로 대여보단 구매가 경제적이었고, 둘째, 대여 업체 S의 자전거는 너무나 흔하고 많아서 나만의 것을 구하고 싶다는 자그마한 욕심이 들었기 때문. 우리나라의 ㄷ 마켓과 같은 웹 페이지에서 판매자들에 ‘안녕하세요, 네덜란드어를 하지 못해 영어로 보내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전거 구매가 가능할까요? 158cm인 저도 탈만 할까요? 가서 타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가을’이라고 일일이 연락을 보냈지. 그리고 짧게 네덜란드어로 ‘그러세요’, 하고 주소만 남긴 구매자에게 가게 됐지.



뜻밖에도 그곳은 썩 안전한 지역은 아니었어. 건물은 재건축 중이거나 공사 중이었고, 휑한 공터도 곳곳에 널려 있었거든. 하지만 그날 꼭 기필코 자전거를 구해야 한다는-실패하고 싶지 않은- 충동이 일었고 겁 없이 받은 주소로 향했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저씨는 이민자인 것 같았고, 영어를 하지 못했으며, 나의 짧은 독일어와 그의 짧은 영어로 대화를 겨우겨우 이어갔다. 자전거 안장이 너무 높은 탓에 그걸 조정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내가 보기엔 이미 최대치로 낮춰져서 더 이상 내려갈 길 없는 그 안장에 자꾸 온갖 렌치나 망치를 들이밀어 고치려 드는 아저씨를 보며 마음이 또 우그러졌다.

연신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요(nicht für mich)’라고 말하며 사지 않으려고 했어. 그걸 말하는 내내 또 마음은 구부러졌지. 그러자 갑자기 아저씨가 웨잇, 저스트 어 모멘트, 라고 하고 옆집 문을 두드렸어. 그 문에서 거구의 남자가 나오는 순간 아, 이렇게 조심성 없이 다니다 가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 남자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네덜란드 수리공 아저씨였고, 그는 나와 판매자 아저씨 사이 통역을 도맡으며 갑자기 안장을 바꿔줬고 브레이크를 고쳐줬고 자물쇠 사용법을 알려줬다. 이리저리 공구를 들고 자전거를 고치는 수리공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판매자 아저씨는 ‘이제 다 고쳐졌으니, 너도 탈 수 있을 거야(Alles gut)’라고 말했고, 나도 ‘아저씨도 애쓰셨어요. 감사합니다(Alles gut)’라 답했어. 그리고 홀연히 자전거를 타고 나의 방으로 돌아갔다. 지도는 35분이라 했는데 거진 50분이 걸렸긴 했지만…

어쨌든 학예회에서 내 자식만 보는 그 마음처럼 수십 대가 일렬로 선 주차장에서 나의 자전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됐고, 이렇게 편지를 쓰기 직전처럼 비를 뚫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게 됐다. 후련한 마음. 저 회색의 평범하고 무난한 자전거가 바로 나의 것. 이름을 붙일까도 싶다. 생각나는 게 있다면 말해줘.


있지, 어렸을 때는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마음이 그렇게 쓰리지 않았어. 너도 그랬지? 어떤 일을 시작하고 실패하기를 무수히 반복했을 텐데 마음에 멍은커녕 찰과상도 나지 않았다. 걸음마부터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다 일어난 사건이었을 테고, 고등학교 일 학년 때 거의 모든 대회에 지원했다가 하나 빼고 다 탈락했던 때마저도 저번 자전거 수업에서의 실패보다 쓰리지를 않았어.



대개 그냥 그랬구나, 하고 말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작은 오류에도 쉽게 졸아들기 시작했어.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나는 아주 조그만 티끌에도 예민해지는 미간을 갖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삶도 대학에서의 생활도 궤도에 안착한 덕분이겠지.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배로 눈에 띈다는 게 문제지만. 익숙하고 통제 가능한 것이 늘어날수록 낯섦과 통제 불가능의 영역을 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되나 봐. 안정감이 주는 안락하고 푹신한 그 감각을 알기 때문에 그걸 다시 잃을까 걱정하는 거지. 혹은 이제 가능성의 영역이 나를 둘레로 좁혀 오는 것 같아서일지도 몰라.



그리고 암스테르담. 아무것도 모르고 그래서 모든 것이 새로운 곳. 지난주 나는 비자 카드를 길거리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찾느라 빗속에서 한참 헤맸어. 비가 너무 내리는 바람에 들고 있던 종이 쇼핑백이 녹아 안에 있던 식료품이 우르르 떨어질 뻔하기도 했지. 밤이라 어두워 빛은 번져 보이고 애꿎은 거리를 배회하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어.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친애하는 G는 영화 이름을 비틀어 Rainy Day in Amsterdam을 찍은 셈 치라고 했고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

그건 아마 요즘 일상의 대부분이 시행착오여서일 거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프랑스의 어느 작가는 쓰기 위해서는 늘 어린이의 마음으로 있어야 한다고 말했어. 사진도 찍어 두었는데 실종돼서 출처는 남기지 못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감했고 아직도 그 말을 삶의 지향으로 삼고 있어. 어린아이의 마음, 세상을 낯설게 보는 시선, 무엇이 불운이고 행운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어리숙함, 내리는 비처럼 평등하고 고르게 느끼는 모든 경험. 그렇게 모든 순간은 시행착오가 돼. 미흡하고 연약한 마음이 주는 주저하지 않고 비 아래로 뛰어들 덤덤한 용기를 거머쥐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삶은 한결 가벼워져. 어떤 물방울이 나를 적시고 갔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비를 맞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의미 없는 동시에 비를 맞는 사실로 의미가 있게 된다. 어쩌면 불운도 비처럼 내리는지 몰라. 어떤 때는 우박처럼. 눈처럼. 우리의 눈 아래로 흐를지도 혹은 옷을 흠뻑 적실지도 모르지. 오늘도 암스테르담은 갑작스러운 예보와 함께 비가 내렸고 난 그 아래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옷은 아주 축축했지만, 마음은 촉촉했어. 다 씻겨 내려간 거지.


아주 장장 기나긴 자전거 일대기를 늘어놨네. 내 글쓰기 버릇이야. 조각조각 문장을 꿰맬 때도 있지만 딱 하나의 단추를 여러 번 실과 바늘로 단단하게 꿸 때도 있거든. 오늘은 후자인가 보다.

이번 편지는 여러 장소에 걸쳐 벌어졌어. 낮에 강의실에서 네덜란드의 역사 수업을 듣는 체 마는 체하며 조금, 영화관 안에 대뜸 테이블이 있길래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차이 라떼 티를 마시면서 조금, 그리고 밤이 돼 정돈된 마음으로 조금.



내일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이 년 만에 돌아간다(오만하지만 이렇게 말할게). 아주 들떠 있어. 지도에서 가고 싶은 곳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사이사이 뜨는 이미지가 눈에 선하고 익숙할 때가 있더라고. 이 년 전에 고작 한 달을 머무르고 난 이렇게 썼다.


비행기를 타고 밥을 두 끼나 먹어야 도착할 거리에 돌아가고 싶은 도시가 생겼다는 게 기분 좋습니다. 가는 게 아니라 돌아갈 곳! 모두 그곳에서 재회할 수 있기를 바라요.


재회할 사람은 없지만 재회할 도시는 그대로 있어. 그 별난 도시로 돌아가려니 발길이 가볍다. 아마 다음엔 사진을 한가득 쌓아 보낼 거야.



월요일은 실을 바늘에 꿰는 날. 어떤 색의 실을 골랐니. 바늘구멍의 모양새는 어떻니. 저녁은 잘 먹었니. 잠에 들었으려나.

이 년 전 베를린 어느 늦은 저녁 길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내게 노년의 신사는 대뜸 독일어로 인사를 건네고 지나갔다. 외국인을 향한 작은 친절이었겠지. 그리고 나는 서툰 독일어로 인사를 건넸어! 신사분은 떨떠름해 했지. 왜냐면 내가 한 말은 저녁 인사가 아니라 정말 잘 자라는 의미의 단어였거든. 그 저녁에 생판 모르는 행인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들은 신사는 웃고 지나갔어. 그렇지만 너에게는 좋은 밤의 인사를 보내도 전혀 황당한 일은 아니겠지. 이만 줄일게.


Gute Nacht!


2024년 2월 19일 늦은 저녁

암스텔빈에서

페달을 밟는 마음으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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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1 - 2024 Feb 19th

발행인 김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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