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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편지: 무사착륙!

by 가을

_ 에게


안녕, 여기는 암스테르담.

지금 나는 도시 어딘가의 호텔방에 안착해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어떤 말로 입을 떼면 좋을까.

시시콜콜한 여정이라도 얘기해 볼게.


한국에서 29일 자정에 비행기에 올라선 나는 카타르에 잠깐 발을 붙였다가 비행기를 옮겨 타고 암스테르담에 29일 오후 1시에 착륙했어. 영공을 가르는 비행기는 정글에서 덩굴줄기를 마구잡이로 옮겨 다니는 원숭이처럼 시간을 오가. 창문이 닫힌 기체 안은 밤처럼 어두워서 식사할 때를 빼면 쥐 죽은 듯 고요했어. 좌석에서 가물가물 잠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한 터라 무척이나 졸리다.

어두컴컴한 밤 비행기를 탄 동안에 몇 번의 난기류를 만났어. 기체가 흔들리는 만큼 마음이 위태로워지기도 했어. 막막한 여정을 앞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기 한 시간이 남았을 때쯤에는 그 위태롭고 막막한 기분에도 질려서 글이라도 적어볼지 하고 수첩을 펼쳐 들었어. 어두워서 글자를 암만 써봐도 보이질 않아 그만 수첩을 덮었지. 그런데 갑자기 수첩 위로 빛이 쏟아지는 거야. 두리번대보니 창가에 앉은 여자가 슬쩍 열어준 거였어. 눈이 마주쳐 우리는 서로에게 설핏 웃었다. 그렇게 바깥이 다시 낮이라는 걸 알고는 잠에서 드디어 깨어나 눈부시게 새어 나오는 빛을 빌려 수첩 끝에 일기를 적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지.



공항에서 내렸더니 답지 않게 해가 쬐고 있었어. 이곳에 오기 한참 전부터 주시했던 네덜란드의 기상예보에는 늘 구름과 바람 기호만 가득했는데 말이야. 나쁘지 않은 시작이지?


타지에 있다고 실감하는 때가 있니. 나는 우연히 현지인의 일상에 비집고 들어가 버렸을 때에 그곳에 속하지 않음을 느끼곤 해. 아무 생각 없이 예약했던 호텔은 주거 단지의 한중간에 있었어. 물이라도 사야 할 것 같아 마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와중에 일상의 순간들을 보았지. 자전거 혼자 타기를 배우기 시작한 듯한 아이, 손을 잡고 걷는 두 모자, 강아지를 산책하는 할아버지, 1918년에 지어졌다가 허물어졌다는 어느 집, (나를 뺀) 모두가 무엇을 살지 아는 듯한 확신으로 물건을 보는 듯한 마트, ... 문득 내가 두고 온 일상이 그리웠어. 시간이 보장하는 그 당연함의 감각이 그립다고 해야겠지.



듣던 만큼 네덜란드의 땅은 참 평평했고, 사람들은 죄다 자전거를 탔어. 보행자보다 자전거 보도가 더 넓었고, 걷는 사람보단 자전거를 탄 사람이 더 많았거든. 게다가 정말 황당한 건 뭔 줄 아니. 횡단보도에서도 보행자는 완전 뒷방 신세였다는 거야. 자전거는 알아서 신호가 휙 바뀌는데 보행자는 잘 없어서인지 꼭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버튼을 눌러야만 건널 수 있더라.

그리고 암스테르담은 평평한 땅만큼이나 정갈한 건물로 가득해. 어쩐지 네모나고 매끈한 모양새랄까. 나무도 다듬어진 듯 수직으로 쭈욱 높이 뻗어 있었고 잔디도 누가 깎기라도 한 듯 드넓고 고르게 퍼져 있었어.


새로운 곳에 발을 들이니 마치 새 학교로 옮겨 온 전학생의 마음처럼 꽤나 움츠러들어 있어. 사실 오늘 한국은 얼마나 춥냐고 장난스레 건네 온 직원의 질문이나 길거리에서 카메라가 멋있다고 칭찬하고 지나가는 자전거를 탄 남자의 말에도 여유 있게 대답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요 며칠 간은 마음을 스트레칭하며 구겨진 옷과 함께 마음을 피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

온갖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파묻혀 있다가 이렇게 편지로 다시 만난 모국어의 감각은 몹시 생경하고 또 생생하다. 신나서 내 얘기를 주저리 늘어놨는데 이건 아직 너를 잘 알지 못해서라고 변명하기로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는 편지이기 때문에 어떤 얘기든 간에 서로에 호흡하는 일이 되는 것 아니겠니. 나는 모든 편지가 봉투가 뜯기는 순간에 이렇게 말한다고 믿거든. 여태껏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네게 해줄게. 편지에는 모든 이야기가 둘 사이에서만 맴돈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어. 우리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해보자.


다음 주에는 이제 기숙사에 들어가고 수업 듣기를 시작해. 얘기해 줄 만한 즐거운 일들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추운 날씨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기를.

답신 기다릴게.


추신.
답신의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 여태 받았던 편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 기억이 나는 최초의 편지는?
- 너만의 해외 생활 필승법은?


2024년 1월 29일 20시 39분

암스테르담에서

애정을 담아,

가을




일 년 전으로부터 불시착한 편지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답신은 언제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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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1 - 2024 Feb 1st

발행인 김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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