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도무지 어떤 마음으로 편지로 주고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짧아도 몇 주 길면 몇 년에 걸쳐서 어느 날 갑자기 내리는 눈으로 찾아든 겨울처럼 우편함에 느닷없이 편지가 날아들 어느 날을 차분히 기다림으로 소망하면서?
작년 한 해를 암스테르담에서 보냈다. 떠날 채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데 이렇게나 땅으로부터 내 몸이 멀어지면 또 무엇으로부터 내가 멀어지게 될까? 알 수 없는 무엇이 나로부터 멀어진다는 상상은 마음을 섬뜩하게 했다.
이런 내면의 무서움에서인지, 출국 직전 가족이나 친구를 만날 때면 새해 연하장을 핑계로 편지를 쓰곤 했다. 시간이 지나 내가 돌아왔을 때 다시 그대로 있어 주길-멀어지지 않아 있길- 바라는 약간의 이기심을 담았다.
여기서 이어져 서울로부터 8,553km 먼 도시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__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익명의 수신자로부터 약간의 우푯값을 받기도 하고 커피값을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 답신을 받기도 했다. 다수의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전하지 못할 마음을 띄워 보내는 것처럼 막막했지만, 종래에는 이름 모를 얼굴의 문체가 오래 알아 온 사람의 것처럼 낯익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은 먼 곳에서 생활을 일구는데 동력이 됐다.
옛날 옛적 진심으로 안부를 묻기 위해 편지를 쓰던 시절, 지금은 그 시절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주고받음 사이에 필연적으로 끼어드는 기다림은 봉투에 붙은 접착제처럼 서로를 연결하고 만다. 편지로 체스를 두든 연애를 하든 건강을 빌든 상관없다. 그 안에서 둘은 멀어지는 모든 것 속에서도 가까워진다는 믿음으로 묶인다.
그래서 여태 써 온 편지를 여태 그래왔듯이 매주 월요일에 꼬박 올리기로 했다. 또 무언가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도리어 가까워지기 위해- __에게 편지를 부친다. 그리고 기다리기 시작한다. 언제든 편지가 날아들 우편함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