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욜 MaYol Mar 31. 2024

이런 젓갈

mayol@골계전 4.

    게요리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아,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코를 박고 먹는 데 남들은 피하는 그런 음식이라면 행복이 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만 골라 초대해서 밥상에 게요리만 잔뜩 올려놓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이런 나의 상상력과는 정반대의 일이 있었다. 그것도 게요리집에서.



 

    여수를 방문한 날이었다.

    몇몇 남도에서 만난 일행과 함께 포장마차에서 한 잔 술도 마시고 '여수 밤바아~다'하는 노래도 들려오고 나름 분위기가 있었다.

    이튿날 일행은 나를 끌고 여수에서 제일 잘한다는 게요리 집엘 갔다.

    앞서 말했듯이, 게요리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내가 아니겠나.

    번호표를 뽑고 2층 계단 중간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종업원들은 중국 상하이의 객잔에서 손님을 맞는 듯했다. 밀어닥치는 손님에게 인사하랴 받은 주문을 주방에 알리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여간 소란스러운 게 아니었다.

    드디어 확성기를 통해 되뇌이던 번호가 들려왔다.

    일행 중 한 명은 무릎이 시원치 않은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따라 올라왔다.

    그냥 1층 대기실에서 우리가 다 먹고 내려올 때까지 편하게 기다려도 될 걸 굳이 왜 아픈 다리를 혹사시키며 따라 올라오는 건지 이해가 안됐다. 그분의 아픈 다리가 염려되어서 하는 말이다. 어쨋거나,

    일행 모두가 착석하자 주문한 게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잘 익힌 게다리가 타원형의 커다란 접시에 가득 담겨 나왔다.

    일종의 애피타이저인 셈인데 내 마음으로는 처음부터 메인 요리가 나온 게 아닌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이런 걸 즐거운 비명이라고 안 하면 뭘 즐거운 비명이라고 하겠나.

    일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2층으로 올라오는 난간을 꾹꾹 눌러 잡은 손가락을 쪽쪽 빨아가면서 게살을 빼먹었다. 커다란 접시에 담겼던 잘 쪄진 게다리들이 게 눈 감추듯이 사라져 버렸고 잔반용기에는 게 껍데기가 수북이 쌓였다.

    그 뒤로도 게찜이며 양념게장 그리고 간장게장 등이 상을 가득히 채웠고 잘 버무려진 콩나물에 밑반찬까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그런데 그 맛있는 요리들 가운데에 영 손이 가지 않은 반찬이 작은 종지에 담겨 있었다.

   고양이가 소화를 못 시키고 게워 낸 듯한 짙은 황토색 빛깔의 묽은 양념장 같은 거였다.

   분명히 못 먹을 음식이 나온 거 아닐 테고, 고양이가 다리를 핥듯이 열 손가락을 깨끗이 핥고 난 뒤에 가지런히 깍지를 끼고는 짐짓 젊잖은 목소리로 옆 사람에게 물었다.


    "이게 뭐예요?"


    게요리에 눈이 팔려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깍지를 풀고 작은 종지를 가리키며 다시 한번 목소리에 힘을 주어 물었다.


    "이게 뭔지 아세요?"


    그랬더니, 하필이면, 그다지 친절하지 않던 여자분이 나를 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자의 입은 양념게장을 물고 있었고 빨간 양념장이 입술 주변을 무섭게 분장한 상황이었다.


    "개좆!"

여자는 목소리까지 컸다. 지금도 그녀가 내게 설명을 한 건지 욕을 한 건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뭐라고요?"

    "개에~좆!"


    너무 놀라 딸꾹질이 나왔다.

    목소리까지 커서 주변 테이블의 사람들까지 여자에게 욕을 먹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식당에서 제대로 내게 한 방을 먹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자리에 붙어 있을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자존심이 몹시 상한 나는 손가락을 꼼꼼히 핥으며 1층 밖 주차장까지 뛰어내려와 버렸다.


    '여수까지 와서 내가 왜 이런 봉변을...'


    얼굴이 얼마나 닳아 오르던지, 홧김에 흙을 걷어찼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차창 밖으로 이유 없이 쓰러지며 지나치는 나무들만 째려보고 있을 때였다.

    내 눈치를 슬슬 보던 일행 한 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마욜선생. 왜 그 맛있는 게젓을 안 드셨어요?"

    "네? 뭘요?'

    "게젓이요. 그게 얼마나 맛있는 건데요. 양도 많이 안 나오는 거거든요. 서울 가면 먹을 수도 없는 거예요."

    "네~에?!!"


    그때 그녀의 설명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개좆, 개젓, 게좆, 게젓, 젓좆좆젓좆젓젓젓젖젓...'


    얼마나 더 살아야 욕과 설명을 잘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참 낯 뜨겁고 안타까운 일이다. 【】

이전 03화 P선생님, 전상서前上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