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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Apr 07. 2024

골계적滑稽的 작심作心

mayol@골계전 5.

노트에 펜을 대기도 전에 불쑥 떠 오르는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쓰던 글을 멈추고 메시지로 수기를 틀었다.


    지난주, 메신저를 통해 오란 장정심의 1934년 초판본 시집 <금선>을 구매하고 싶다는 연락이 있었다.

종이편지를 받아 본 건 아주 까마득한 일이고 ‘P선생님’으로부터 인편의 서한을 받은 게 가장 최근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 또한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메일을 접한 지도 꽤 된다. 그러다가 받은 메시지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더구나 내가 집필한 책을 보고 싶다는 독자의 편지라니. 마땅한 포장지도 없고 해서 해설집 <우숨울음>과 함께 책 두 권을 뽁뽁이에 잘 말아 일러준 주소로 보내드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금선>을 출판한 출판사는 폐업을 했다. 그렇다 보니 수백 권의 <금선>이 발이 묶인 채 홍보나 판매가 요연해진 상태이다.

    작가로서 오랜 시간과 사재를 투여해 만들어진 책이라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빗장을 걸어 잠가야 하는 출판사의 심정만 하겠나. 남아있는 재고를 인수하기로 해서 적당한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책을 쌓아놓을 장소도 필요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금선>을 찾아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 책장에 보관하고 있던 책은 보내드렸지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독자의 요구에는 선뜻 답을 드리지 못했다.

    세금발행도 하지 못하고 그 뒤처리도 무지한 상황이라 돈을 받기가 몹시 꺼려졌기 때문이다.

    이곳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 글 읽기 좋아하시면 복원 문학뿐 아니라 제 창작글도 한 번 읽어달랄 수밖에.

    감사하게도 책을 수령한 독자께서 상황을 이해하시고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답장이 있었다.


    상황이야 어쨌거나, 내 책을 찾는 독자가 있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책값을 청구할 방법이 없어서 씁쓸하기도 한 이런 상황에 떠 올려지는 단어가 있었다.


    [골계미… 우스꽝스러운 인간상을 구현하며 익살을 부리는 가운데 어떤 교훈을 주는 것…]


    문득 ‘페이소스pathos’가 바로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를 주장한 적이 있다.

    그중 첫째는 로고스logos 둘째는 파토스pathos 그리고 셋째는 에토스ethos다.

    로고스는 논리를 의미하고 에토스는 신뢰를 의미한다. 굳이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요소이다.

    그런데 파토스 즉, 페이소스는 좀 다른 문제다.

    페이소스는 감성, 연민 혹은 사랑 등을 의미하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늘 골계미를 떠 올린다.

    한마디로 ‘웃픈’ 현실이고 내가 글을 쓰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세일즈맨의 죽음> 등 여러 책을 번역했던 오화섭의 일화가 생각난다.

    오화섭이 글을 써서 출판사에 넘겼는데 한동안 아무 연락이 없더란다. 그런데 어느 해 겨울 책을 사려고 대형 서점에 들렀던 딸이 아빠의 책이 전시된 것을 보고 흥분을 해서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오화섭은 자신의 글이 출판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야 서점에 깔린 일을 알게 된 것이었다.

    출판사는 그 뒤로도 연락이 없다가 어느 날 오화섭의 집으로 사과궤짝을 보내왔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는 뜻으로.

    판권이 없었던 오화섭에게는 사과 한 궤짝도 분에 넘치는 선물이었던 것일까.

    책이 많이 팔리면 부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아내와 자식들이 호들갑스럽게 묻는데 오화섭은 등을 돌리고 앉아 마당 한구석에 버려진,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가 그득한, 사과궤짝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오화섭과 내 상황이 사뭇 다르지만 마음속에 골계미와 페이소스가 교차하면서 아무런 미소나 지어보는 새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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