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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소울 Jun 26. 2024

비선대 단풍처럼 아름답다, 내 얼굴

부제: 조금 멀리해야 알 수 있는 것

“언니, 밥 먹지 말고 나와. 일단 가서 먹자.”

“내일 날이 구름 많이 끼고, 흐릴 것 같다는데? 괜찮을까?”

“응, 왠지 괜찮을 것 같아.”

무슨 촉인지, 나는 내일 날이 맑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다음날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속초 일 년 살이 중 수영장에서 친해진 언니와 함께 설악산국립공원 권금성으로 향했다. 단풍철이면 사람 반 단풍 반이라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하던 나로서는 실제로 한창 시즌에 설악산 산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설악 케이블카


출발할 때는 날이 좀 흐린 듯했지만, 막상 케이블카를 타러 줄을 섰을 때는 맑게 개였다. 설악산 케이블카 이용요금은 성수기에 해당되어 속초시민이라 해도 할인가 적용이 안되었다. 하지만, 권금성에 편안하게 케이블카 타고 오른다는 설렘이 더 컸던 까닭에 그까짓 거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설악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근데 어째 외국인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꽤 커다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서, 멋짐을 뽐내고 있는 울산바위도 더 가까이 보고, 신흥사 거대한 청동불상이 작아 보이는 경험도 하고, 설악산 전경을 미리 보기 하듯이 감상했다. 금강산 가던 울산바위가 왜 이곳에 정착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만 오르다 보면 거대하고 웅장한 권금성이 나왔다. 권금성이 이렇게 매력 있는 곳이었어? 실제로 한눈에 보자마자 반해서, 나도 모르게 비스듬히 경사진 바위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기념사진도 찍었는데, 나보다 겁을 상실한 언니는 인생샷 찍어달라며 자꾸 낭떠러지 가까이로 가서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속초 설악산 권금성


바위들 가운데 조금은 평평한 자리에 앉아 언니에게 삶은 고구마와 달걀을 건넸다. 그러자 언니는 주섬주섬 챙겨 온 과일을 내게 내밀었다. 우리는 설악산의 아름다운 전경을 파노라마로 조망하면서 진수성찬처럼 맛있게 먹고는, 준비해 온 비닐봉지에 껍질을 넣어 배낭에 넣었다.


한동안 말없이 멍 때리며 각자만의 힐링 시간을 가졌다. 권금성에 올라온 지 약 두 시간쯤 되었나?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단풍객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언니, 이쯤에서 우리도 저 사람들이 즐기도록 양보하고 내려갈까?”

“그래, 그럼 비선대 단풍구경 가자. 난 비선대 안 가봤어” 

그 말에 동의하며, 나는 아름다운 풍광을 아낌없이 선물해 준 권금성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하산하는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속초 설악산 비선대 단풍 놀이


여름에 푸르름을 자랑했던 설악산 비선대는 가을에 오니까 빨간 단풍으로 단장하고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두타산 무릉계곡의 축소판 같은 느낌도 여전했지만, 옛 신선들과 선인들 취향이니 존중해 줘야지 어쩌겠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바위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귀들과 기암절벽 등 너무나 신묘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봐도 감탄할 따름이었다.


가는 도중에 다리 아프다고 잠시 쉬자는 언니에게 “언니, 요즘엔 사진 요렇게도 찍는 게 유행이래. 한 번 해봐.” 하는데, 화면을 가리며 잘 못 알아듣는 탓에 “아니 그렇게 말고” 하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야!” 하고 아는 척을 했다. 응? 그런데 또 다른 수영장 동갑내기 친구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지나가다 봤더니, 나랑 언니였단다.


“여기도 예쁘지만, 천불동 계곡으로 가는 길의 단풍이 더 예뻐.”

평소 산을 좋아하는 그 친구의 말에 우리는 셋이서 비선대를 지나 천불동 계곡으로 향했다. 가을 단풍이 흐드러진 주변 경치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느라 발을 헛디딜 뻔하기도 했다. 


속초 설악산 천불동 가는 길 빨간 단풍


빨갛게 빛이 나는 아름다운 단풍잎을 더 감상하려고 가까이 렌즈를 들이댔더니 갈색 점들과 반점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특정 이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단풍잎들이 그러했다. 약간은 떨어져서 봐야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더욱 느낄 수가 있었다. 문득 ‘우리도 그러하다’라는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중간에 다리가 아프다고 계곡물에 발 담그고 쉬겠다는 언니를 잠시 버려두고, 친구랑 둘이서 천불동 계곡을 더 오르며 단풍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내려올 때 친구가 “언니를 너무 혼자 둔 거 아닐까?”하고 뒤늦은 염려를 하기에, 나는 “괜찮아. 아마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 나누며 놀고 있을 거야.”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새 극 E성향의 언니는 다른 단풍객들과 간식을 나눠 먹으며 놀고 있었다.




딸과 약속이 있다는 친구를 먼저 보내고, 언니의 발목 상태를 고려하여 우리는 산행의 여독도 풀 겸 척산족욕공원으로 향했다. 속초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입장료가 무료인 척산족욕공원에 기꺼이 소정의 수건과 방석대여비를 내고, 따듯한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데 아까 그 동갑내기 친구가 약속이 취소되었다며 나타났다.


속초 척산족욕공원


하루에 두 번이나 만나네? 세 친구로 다시 동반자를 늘려 온천족욕을 실컷 즐겼다. 온탕에 담갔던 발을 자갈이 깔린 냉탕 쪽으로 이끌며, 에고 데고, 아야 아야 하는 친구들의 비명을 배경음악 삼아 놀았다. 나는 어땠냐고? 평소 맥반석 발판 위로 다니며 지압하던 나는 오히려 발바닥이 시원하고 좋았다.


가벼워진 발을 닦고 나오다가 발견했다. 나중에 합류한 친구가 우연히 벗어둔 신발이 언니와 내 신발 사이에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하고 크게 웃었다.



집으로 돌아와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다가, 거울과 눈이 딱 마주치고는 웃으며 생각했다.

“비선대 단풍처럼 아름답다,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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